▲ 지난 12일 자정께 양평 주유소 CCTV에 찍힌 이지현의 모습. 당시 그는 작은 사진에서 보이듯 몸 뒤로 손에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으며 직원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 ||
이지현은 지난 11일 밤 자신의 승용차와 함께 납치됐었다. 사건이 벌어진 압구정동 소재의 한 주차장부터 양평군 일대를 둘러보며 이지현 납치 사건을 입체 조명한다.
영화배우 이지현이 필사의 탈출에 성공한 곳은 양평군 양서면 복포리의 한 주유소. 지난 14일 오후 4시 경 이 주유소에선 긴급 수사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지현이 납치된 압구정동 관할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들과 이지현이 탈출한 양평군 관할 양평경찰서 형사들이 공조 수사를 위해 회의를 시작한 것. 네티즌들이 근거 없는 자작극 논란을 제기하고 있는 동안 두 경찰서 형사들은 범인 검거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필 긴급 수사 회의가 열린 장소가 이 주유소인 까닭은 당시 정황이 그대로 담긴 CCTV를 함께 보기 위해서였다.
주유소 CCTV는 외부와 내부에 각각 달려있다. 사무실 내부 CCTV에 이지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2일 새벽 0시 6분경이다. 이지현이 급박하게 사무실로 들어오자 놀란 직원이 이지현을 돕는다. 이지현은 검정색 상의를 입고 있었고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 납치범의 손길을 피해 차에서 몸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그랬는지 상의 한 쪽 어깨 부분이 약간 흘러내려 있었다. 이에 직원이 주유소 직원용 점퍼를 가져다 덮어주고 112에 신고 전화를 건다. 이지현은 두 손이 뒤로 묶여 있는 상황. 수갑이 채워져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신고 접수 뒤 7분가량의 시간이 흐른 뒤 두 명의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먼저 두 손을 묶은 수갑을 풀어준 경찰은 이지현을 진정시키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듣기 시작한다.
이지현의 탈출 과정을 두고 네티즌들은 여러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납치범은 두 명의 20대 남성으로 한 명이 차를 몰았고 다른 한 명은 뒷좌석에 앉아 이지현과 함께 있었다. 이렇게 바로 옆에 납치범이 앉아 있고 두 손이 뒤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주유소에서 주유도중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추측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이지현은 “주유구를 열면 차량 잠김 장치가 풀리는 것을 알고 있어 주유소에서 탈출을 시도했다”면서 “손을 뒤로 해 문을 열려고 몸을 문에 기댄 상황이라 문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차 밖으로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차량에서 이지현이 떨어지는 것을 본 납치범이 이지현을 붙잡으려 했지만 옷자락을 잡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 불에 탄 채 발견된 아우디 차량.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두 번째는 이지현이 몸을 완전히 틀어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바로 옆에 있는 납치범이 몰랐을 리 없다는 사실이다. 잠금장치를 열고 손잡이로 문을 여는 과정과 달리 장금장치가 풀려 손잡이만 당기면 문이 열리는 과정은 순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결국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 여러 차례 손잡이의 위치를 반복 확인한 뒤 순간적으로 탈출을 감행해 이 같은 탈출이 가능했다는 얘기가 된다.
한편 납치범들이 이지현을 일부러 문제의 주유소에 던져 놓고 도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지현이 범인들에게 이미 폭행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최악의 가정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주유소 외부에서 촬영된 CCTV에 해답이 담겨 있다. 이지현의 순간적인 탈출에 놀란 납치범들이 주유 도중에 도주하는 장면이 담겨있는 것. 주유소 관계자는 “2만 원어치를 주유해 달라고 했는데 1만 7000원어치가 주유된 상황에서 주유지가 꼽힌 채 차가 도주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의문은 도대체 범인이 누구냐 하는 부분이다. 이는 양평경찰서와 강남경찰서의 공조 수사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그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유사한 사건이 다른 지역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양평경찰서 강력수사팀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납치 강도 사건이 있어 동일범인지 여부를 수사 중”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들이 왜 이지현을 납치해 양평으로 왔는지의 여부도 궁금하다. 게다가 이지현이 탈출한 주유소 역시 양평 방향이 아닌 서울 방향이다. 어디를 가고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양평경찰서 강력수사팀 관계자는 “서울에서 양평 방향으로 가다 유턴해서 어딘가를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면서 “어딘가를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어본 뒤 유턴했다고 말했다”고 귀띔한다.
이지현이 납치된 것은 밤 10시 30분경으로 양평까지는 한 시간 정도면 올 수 있는 거리. 그런데 길을 헤매다 30여 분을 더 소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그들이 가려 했던 어딘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지만 이 부분에 수사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한편 범인들이 갖고 도주한 이지현의 아우디 차량은 주유소에서 8㎞가량 떨어진 한 폐식당 주차장에서 전소된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납치범이 이지현이 연예인임을 알고 의도적으로 저지른 범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그보다는 부유층 여성을 노린 범행이었을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고급 외제 승용차를 이용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유사 범죄가 재발할 가능성도 높아 경찰의 발 빠른 수사가 절실한 상황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