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조금이라도 세금을 적게 내려는 일부 연예인과 이들의 세금 탈루를 방지하려는 국세청의 세금 전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여전히 앞서가는 이는 더욱 치밀하고 교묘한 절세·탈세기법을 개발해내는 연예인이고 국세청이 힘겹게 그 뒤를 쫓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98년 가요계 최고의 스타는 단연 김건모와 신승훈이었다. 그런데 98년 7월 이 두 톱스타가 나란히 검찰에 고발당하는 대형 사건이 벌어졌다. 국세청이 이들을 음성탈루소득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이들은 실제 사지도 않은 의상을 산 것처럼 백화점 영수증을 모아 허위 증빙 서류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이 매니저와 회계사가 꾸민 사안일 뿐 두 사람은 전혀 몰랐다며 무혐의 처리해 사태는 진정됐지만 연예인의 세금 탈루 실태는 세인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는 국세청과 연예인의 본격적인 세금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한 달 뒤인 98년 8월 국세청은 연예인, 프로스포츠 선수와 같은 자유 직업인들의 가짜 영수증을 이용한 세금 탈루가 관행화되어 있다며 대대적인 탈세 비리 조사에 착수했다. 심지어 99년 2월에는 연수입 1억 원 이상인 연예인에게 소득세 신고를 다시 하라고 통보했다.
국세청이 갑자기 연예계의 탈세 비리 관련 조사에 총력을 집중한 이유는 김건모와 신승훈 사례가 난제였던 ‘필요 경비’ 관련 사안에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과세의 기준은 소득인데 여기서 소득은 전체 매출에서 필요 경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그런데 연예인의 필요 경비는 일반적인 필요 경비와 전혀 다른 개념이라 국세청 역시 접근이 쉽지 않았었다. 예를 들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의상 구입 비용, 최고급 승용차 구입 비용, 심지어 골프장 회원권 구입 비용 등도 연예인에겐 필요 경비가 된다. ‘방송 출연’과 같은 연예계 활동을 위해 필요한 경비라는 논리가 가능하기 때문. 필요 경비가 올라가면 소득이 줄고 이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세금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요 경비’는 연예인들이 가장 손쉽게 활용한 세금 탈루 방법이었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소비한 내역을 ‘필요 경비’에 포함하는 것은 기본이요 세무사와 짜고 허위 증빙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까지 급증했다.
이에 국세청은 2000년 5월 또 다시 필요 경비를 부풀려 소득을 신고한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정밀 조사에 나섰고 2002년 4월에는 아예 연예인 418명을 중점 관리 대상으로 선정, 특별 관리에 들어갔다. 2003년에도 연예인 109명이 관리 대상에 이름을 올렸고 올해도 114명의 연예인이 국세청 중점 관리 대상자가 됐다.
국세청의 박순호 소득세과장은 “몇몇 연예인을 중점 대상으로 선정해 그들에게 성실 신고를 안내·지도한 뒤 신고 내용을 조기 검증하고 있다”면서 “불성실 신고 혐의를 받는 연예인은 세무 조사 대상자로 선정해 관리할 방침”이라 밝힌다.
2002년 8월엔 감사원이 연예인들이 수입 금액을 명확히 분류하지 않는 미묘한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해왔음을 적발했다. 이는 감사원의 국세청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국세청까지 속여 온 연예인의 미묘한 꼼수가 적발된 것이다. 연예인의 수입은 가수나 연기자로서 활동하며 벌어들인 본연의 수입과 각종 CF 모델 수입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2002년 당시에는 본연의 수입에 대한 기준경비율(증빙서류 없이 기본 필요경비로 인정되는 비율)이 CF모델 수입에 대한 기준경비율보다 7~8%가량 더 낮았다. 따라서 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본연의 수입인 양 신고하면 소득세가 줄어든다. 지금은 본연의 수입이나 CF 모델 수입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기준경비율을 조정했다. 미묘한 꼼수를 제도적으로 근절한 셈이다.
국세청 주도로 바뀐 연예인의 CF모델 수입 관련 세금 적용 방식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세법에 따르면 각종 전속 계약금은 기타 소득에 속한다. 따라서 연예인이 광고주와 CF 모델 전속 계약을 해서 받는 수입은 기타 소득으로 구분돼 왔다. 기타 소득의 경우 매출 수입의 70~80%가 필요 경비로 인정되는 데 반해 사업 소득은 30~40%의 필요 경비만 인정된다.
국세청은 지난 98년부터 CF 모델 수입을 기타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전속 계약금이 기타 소득이 아닌 사업 소득으로 구분되면 연예인은 최소 20%의 세금 인상 효과를 감수해야 한다. 이에 반발해 당시 절정의 인기스타이던 이승연, 채시라, 유동근 전인화 부부, 최수종 하희라 부부 등이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연예인의 전속 계약금은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사업성이 있다’며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예인들이 항소했으나 2001년 4월 대법원 판결 역시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면서 연예인의 CF 모델 수입은 사업 소득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2001년 국세청은 최불암이 문화방송에서 받은 전속 계약금 역시 사업 소득으로 구분해 CF뿐만 아니라 연예계 전반의 전속 계약금이 모두 사업 소득으로 구분됐고 법원은 국세청의 주장이 옳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렇게 국세청을 중심으로 연예인의 세금 탈루를 집중 단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연예인은 한발 더 앞서 달리고 있다. 아직도 가장 큰 구멍은 필요 경비다. 현재 연소득 3600만 원 이하인 연예인의 경우 배우는 58.2%, 가수는 62.8%가 기본 필요 경비로 고정돼 있다. 반면 연소득 3600만 원 이상인 경우 배우는 31.1%, 가수는 33%가 기본 필요 경비로 처리되고 인건비 임차료 매입비용 등 세 개 항목은 증빙 서류를 제출하면 필요 경비로 추가된다. 예를 들어 68.9%에 해당되는 필요 경비 관련 증빙 서류를 제출하면 소득 전액이 필요 경비로 처리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가장 모호한 부분은 인건비다. 특히 가족을 매니저로 등재하는 방식이 그렇다. 자신이 소속된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 가운데 한두 명을 매니저로 등재해 별도의 인건비를 지출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현재 국세청은 일정 부분 가족 매니저를 인정하고 있다. 최진실은 지난 2000년 5월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며 수입 17억 원 가운데 2억 4000만 원을 어머니에게 매니저비로 지급한 뒤 이를 ‘필요 경비’인 인건비로 처리했으나 강남세무서는 이 가운데 1억 3000만 원은 세금을 줄이기 위한 부당 계산이라며 세금을 추가 부과했다. 이에 최진실은 1심에서 승소했다. ‘어머니가 연예계 활동 전반의 주요 결정 및 협의 과정을 대리해 실질적인 매니저 역할을 수행해왔음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2003년 2심에선 패소했다. ‘전문 매니저와 어머니가 매니저로 중복되는 데다 그동안 소득의 3.1~8.9%를 어머니에게 주다 99년에 갑자기 14.5%를 준 부분은 정상적인 거래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법원의 판결이었다. 결국 1억 1000만 원만 매니저로서 어머니에게 지불한 정당한 인건비로 인정받았고 나머지 1억 3000만 원은 인정받지 못했다.
각종 매입 비용 역시 추세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연예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고급 의상, 액세서리 등을 매입하는 데 상당한 금액을 지출하고 있는데 그 주체만 법인인 연예기획사로 바뀐 것. 연예인 개인이 아닌 법인인 회사가 구입한 물품이라 의심의 눈길을 다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예인이 고급 의상과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방송에 자주 노출되지만 상당 부분이 협찬받은 물품임을 감안할 때 여전히 커다란 구멍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국세청 소득세과 이상언 씨는 “연예인의 필요 경비를 최대한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매년 필요 경비 비율을 조정해주고 있다”면서 “이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허위 증빙 서류 등을 이용해 세금을 탈루하려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치를 할 것”이라 말한다.
무자료 거래 역시 문제다. 일정 수입이 발생하는 연예계 활동을 벌였지만 세금계산서를 비롯한 관련 자료가 없는 경우가 무자료 거래다. 특히 밤무대나 각종 행사들이 열리면서 출연할 수 있는 인기 연예인 쟁탈전을 벌이는 와중에 무자료 거래가 급증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행사는 중간에 행사 전문 업체가 끼어 있는데 그들은 입찰 과정에서 행사를 따내려면 최대한 예산을 줄여야 한다”면서 “예산 절감을 위해 연예인 출연료를 조금 낮게 책정한 뒤 연예인에게 무자료 거래를 제안한다. 주최 측에 정해진 예산에 대한 영수증만 제출하면 돼 연예인 출연료를 다른 영수증으로 대체해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연예인 입장에선 출연료가 다소 줄지만 세금을 전혀 떼지 않는 비밀스런 수익이 돼 실질적으론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 세무회계사의 도움이다. 비정상적인 매입 비용 증대나 무자료 거래 등 다양한 불법 세금 탈루 방법을 세무회계사 사무실에서 해결해주기 때문.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요즘엔 안 해주는 곳이 더 많지만 여전히 몇몇 세무회계사 사무실이 그런 방법들로 도와줘 그런 세무회계사 사무실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고수입 자유 직업인에 해당되는 연예인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하는 데 대해 연예 관계자들은 “연예인은 정년이나 노후 보장이 전혀 없이 인기에 따라 활동 기간이 조정되는 이들인 만큼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