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정다빈의 유족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 ||
“자살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경찰이 한 시간여 만에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는 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정다빈이 죽은 이 씨의 집에 가 직접 확인하려 했지만 경찰이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의혹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으면 현장공개까지 요청할 계획이다.”
지난 10일 저녁 무렵 서울 아산병원 빈소 앞에서 만난 정다빈의 소속사 세도나미디어 소용환 본부장은 격분해 있었다. 이렇게 소속사가 타살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정다빈의 죽음은 곧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다빈은 9일 저녁 6시부터 10일 새벽 3시 경까지 청담동의 한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셨다. 가라오케 종업원 박 아무개 씨는 “새벽 1시경 남자친구가 와서 합석했는데 차를 가지고 정다빈을 데리러 온 것이라 술은 마시진 않았다”면서 “이 씨는 술자리 내내 거의 말이 없었고 그가 온 뒤 정다빈도 말수가 줄어들었다”고 얘기했다. 두 사람 사이에 냉기류가 흘렀다는 뜻일까. 경찰 역시 이웃 주민에게 “한밤중에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박 씨는 “정다빈이 다른 일행에게 이 씨를 ‘남편’이라 소개하며 ‘형부라고 불러’라고 얘기했다”며 “말수만 줄었을 뿐 표정을 밝았고 술자리 내내 손을 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정다빈이 부쩍 힘들어했다는데 이날 술자리에선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고. 박 씨는 “술자리 내내 밝고 명랑했는데 그러고 들어가 자살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술자리가 끝난 뒤 일행과 헤어진 두 사람은 이 씨의 집으로 향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씨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목을 맨 정다빈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술을 전혀 안 마신 이 씨 혼자 자는 동안 술취한 정다빈만 홀로 깨어있다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소속사 측은 “술 마시고 잠든 것도 아닌데 정다빈의 자살 시도를 어떻게 몰랐을 수 있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 정다빈이 숨지기 전날 술을 마셨던 술집에 남긴 사인. 종업원은 번창하라는 말이 아니라 ‘행복하세요’라는 글을 적어줘 의아했다고 한다. 아래는 정다빈 자살 당시 함께 있었던 남자친구 이 아무개 씨. | ||
정다빈이 만취 상태였다는 이 씨의 진술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들이 술자리를 가진 가라오케 관계자는 “술을 새벽까지 마셔서 조금 취하긴 했지만 몸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만취 상태는 아니었다”며 “조금 비틀거리긴 했지만 심하게 취해 보이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정다빈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 폭력2팀은 “시체 상태를 검안의와 법의학교수가 살펴봤는데 타살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며 타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자살을 뒷받침하는 정황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건 하루 전인 9일 오전 5시 경 미니홈피에 올린 ‘마침’이라는 글에서 정다빈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날 술자리에서도 표정은 밝았지만 유독 담배를 많이 피웠다고. 또한 가라오케 주방장은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주며 사인을 부탁했는데 대부분의 연예인이 사인에 ‘번창하세요’같은 문구를 남기는 데 반해 정다빈은 ‘행복하세요’라고 적어 의아했었다”고 얘기했다.
상황은 11일 오전에 급변했다. 이 씨가 경찰 조사에서 “정다빈이 지난 해 10월에도 한차례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진술했음이 알려진 것. 이를 통해 타살 보다는 자살로 급격히 무게의 추가 기울었으나 소속사와 유가족이 이를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우선 소속사는 “손목이 긁힌 상처는 주저흔(치명상 주위에 깊이가 얕고 미세한 손상. 혹은 자해할 때 머뭇거린 흔적)이 아닌 고 1때 다친 상처의 흉터”이라며 “이는 코디네이터 등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며 이 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한 “이 씨가 계속 진술을 번복하고 있고 이번에는 거짓 진술까지 했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유가족 역시 가족회의를 거듭해 시신을 부검하기로 뜻을 모아 경찰에 재조사를 요구했다. 애초 유가족은 정다빈의 죽음을 자살로 판단하고 그를 잘 관리하지 못한 소속사를 탓하는 분위기였다. 소속사의 타살 주장에 반발하며 의견 대립의 양상까지 보였었다. 그러나 꾸준히 이 씨의 진술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하는 소속사의 주장에 따라 부검까지 결정하게 된 것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