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문제는 맹목적인 일부 팬의 스타 사랑이 도를 넘는다는 점이다. 마치 스타가 필요로 하는 선물을 미리 알아서 챙겨줘야 하는 게 진정한 팬의 도리인 양 여기고, 심지어 명품 하나쯤은 선물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고가의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무리한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이들도 상당수라는 부분이다. 행여 이 과정에서 탈선에 빠지지나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20대 초반의 인기가수 A는 최근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케이블 방송에서 별 생각 없이 내뱉은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아직까지 세간살이 장만을 못해 집이 썰렁한 공터 같아요”라는 말이 화근이었다. 방송이 나가기가 무섭게 새 집으로 각종 살림살이들이 몰려들었다. 포크, 수저세트, 국자 등 가벼운 세간에서부터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의 가전 제품까지 도착하기 시작한 것.
A의 매니저는 “감당하기 버거워 물건들을 모두 돌려보냈다”고 털어놓으며 “학생들이 용돈을 쪼개서 장만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A가 팬 카페에 “정성만 고맙게 받겠다”는 메시지를 남겨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매니저는 이를 계기로 A에게 ‘입 조심’을 부탁했을 정도란다.
이미 오래전부터 스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선물 공세였다. 그러나 실태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엔 팬레터나 종이학 같은 손수 만든 선물이 주류였다면 지금은 스타가 선호하는 필요 물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트북이나 가전제품은 기본, 고가의 명품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팬들이 최첨단 음악 장비를 구입해 연습실을 만들어주고 스타가 숙소와 소속사 사무실을 오갈 때 타도록 최고급 오토바이까지 선물해 준다.
고가의 선물도 서슴지 않는 팬들은 평소 스타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파악해 신제품이 나오면 제일 먼저 선물하는 ‘센스’(?)까지 발휘하고 있다. 그래야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인기 아이돌 그룹 팬클럽 회원인 양 아무개 양(16·중3)은 “오빠(좋아하는 인기 가수)가 기억만 해준다면야 선물 사는 데 얼마가 들던 상관없다”면서 “오빠가 내가 선물한 물건을 걸치고 나오면 동질감, 친근감, 희열감 등이 느껴진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인기 아이돌 그룹 팬 카페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네티즌의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팬클럽 회원인 한 네티즌은 “두 달 동안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했다”며 “그래도 오빠가 갖고 싶다던 게임기를 선물하고 나니 세상을 얻은 것처럼 뿌듯했다”고 털어놨다.
가수 아카데미 회사에서 근무 중인 김 아무개 실장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선물을 걸치고 등장하면 마치 자신이 코디네이터가 된 양 뿌듯해 한다”면서 “그런 일을 경험한 뒤 가문의 영광이라고 자랑하는 팬도 봤다”고 얘기한다.
팬클럽 차원의 기념일 선물은 그 규모가 더욱 커진다. 각종 팬 카페마다 스타의 각종 기념일에 맞춰 ‘모금’을 알리는 글이 넘쳐난다. 회원 1인당 1000원씩 걷는다고 가정할 때 회원이 1만 명이면 1000만 원이 걷힌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돌 스타 팬클럽은 25만 명 이상의 회원 수를 자랑한다. 그러면 2억 5000만 원가량의 거금이 형성되는 것.
가요 관계자들은 일부 스타들이 방송에서 특정 선물을 요구하는 것 같은 뉘앙스의 발언을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런 발언이 팬들에겐 곧장 지상 명령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료 연예인이 선물을 받거나 받았다고 얘기하며 부러움을 드러내면 팬들은 가만있지 않는다.
인기 아이돌 그룹인 SS501의 매니저는 “세탁기가 없다는 소문이 난 뒤 모두 4대의 세탁기가 도착했는데 선물로 받았던 에어컨도 3대나 된다”면서 “10대보다 20대 팬이 더 많아서 그런 거 같은데 대부분 택배로 오기 때문에 수신란에 사인을 안 하는 방식으로 수취를 거부해 모두 돌려보냈다”고 밝힌다. 또 다른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는 “요즘 팬들은 연예인의 집 주소에 부모 휴대폰 번호까지 꿰차고 있다. 뒤로 들어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팬을 움직이는 것은 스타다. 그만큼 스타가 먼저 나서 팬들의 왜곡된 스타 사랑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연예기획사의 자정 노력도 요구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팬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가장 절실하다.
문지연 뉴시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