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정다빈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도 모르게 갑자기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아닌 듯하다. 이미 주변에서는 그의 자살 징후를 미리 감지했거나 최소한 그가 무척 힘들어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급작스럽게 자살한 의문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정다빈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 온 것은 언제부터일까. 취재과정에서 기자는 지난해 5월 중국 하이난성 여행을 떠났을 당시에도 그가 상당히 힘겨워하고 있었다는 제보를 접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에 중국 여행을 떠났던 한 연예관계자는 입출국 당시 같은 비행기를 이용했고 숙소도 같아 정다빈과 자주 마주쳤다고 얘기한다.
“출국하는 비행기에서 정다빈을 봤는데 무척 힘들어해 동행한 여성 두 명이 그를 달래고 있었다. 하이난성에 도착한 이후에도 여행은 거의 하지 않고 주로 선탠 의자 같은 데 앉아서 쉬기만 했는데 무척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입국 이후 그 이유가 궁금해 정다빈의 미니 홈피를 찾은 이 연예관계자는 그가 중국 여행과 관련해 남긴 글을 보게 됐다. 이 글에서 정다빈은 “머리를 식히려 중국에 다녀왔는데 고민만 더 많아진 것 같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글은 그가 다시 지워버린 듯, 지금 미니홈피에선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정다빈을 힘들게 만든 사안 중 하나는 전 소속사와의 법적 분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여행 직전인 2006년 4월 전 소속사가 정다빈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 것. 몇 달여의 분쟁 끝에 정다빈은 무혐의 판결을 받았으나 정다빈의 전 매니저는 같은 해 8월 구속기소됐다. 전 매니저와는 정다빈이 면회를 갈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런 정신적인 고통은 결국 급성 신우염으로 표출돼 정다빈은 지난해 9월 일주일가량 병원 신세를 졌다. 이는 정다빈이 드라마 <큐브>로 컴백이 확정된 직후의 상황이었다. 컴백 작품이 결정된 만큼 희망찬 새 출발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을 시점으로 보이나 신우염이라는 돌발 변수 때문인지 정다빈의 기분은 여전히 처져 있었다. 남자친구 이 아무개 씨의 진술 등에 따르면 얼마 뒤인 10월에 정다빈은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 연예계 컴백이 확정된 직후에 자살을 시도했던 걸까. 법적 분쟁과 어머니의 암투병, 여기에 본인의 신우염 투병까지 좋지 않은 일이 계속되면서 정신적인 고통이 극도에 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애초 11월부터 촬영이 시작될 예정이던 <큐브>의 촬영 일정이 다음해로 연기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그를 만났던 이들 역시 정다빈이 일과 관련해 힘들어했다고 말한다. 정다빈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그를 만났던 한 연예관계자는 “당시 (정)다빈이가 일과 관련해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고 얘기한다. 남자친구 이 씨 역시 경찰에서 같은 진술을 했고 경찰 또한 정다빈 주변 인물들로부터 비슷한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소속사가 이미 정다빈의 힘들어 하는 상황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얼마 전 유니가 자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소속사 대표가 직원들을 모아 놓고 정다빈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신경 써서 보살피라는 지시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 것.
이에 대해 세도나미디어 측은 와전된 이야기라며 이를 전면 부인했다. 다만 소속사 대표가 직원들에게 비슷한 발언을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유니가 자살한 뒤 대표가 전 직원을 모아 놓고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이 실제는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계기”라며 “우리 회사에 소속된 여자 연예인들을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쓰고 배려해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 정다빈도 포함되지만 반드시 정다빈을 지칭해서 한 얘기는 아니라는 게 소속사 측의 설명이다.
소속사가 정다빈을 더욱 더 세심하게 관리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물론 한창 발전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인 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다빈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소속사가 모르고 있었다는 데에는 의문이 남는다. 정다빈은 남자친구 이 씨와 동거설에 휘말릴 정도로 깊은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동거설에 대해 소속사는 사실무근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씨의 집 이웃주민들은 최근 서너 달 동안 정다빈을 자주 봤다고 증언했다. 또한 자살 전날 청담동 가라오케의 술자리에서도 정다빈은 운동복 차림이었다. 경기도 광주의 집에서 왔다기보단 가까운 삼성동 소재 이 씨의 집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가 이 씨의 집을 자주 찾았던 것으로 보이나 소속사에선 이를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망자를 위해 동거설을 부인하려고 의도적으로 몰랐다고 밝힌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심한 관리에 빈틈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타살설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남자친구 이 씨 역시 아쉬움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정다빈이 이미 한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자신이 술에 취한 정다빈을 홀로 두고 먼저 잠자리에 든 사이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다빈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어느 중년 여성의 얘기가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유가족과 소속사가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몰라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니 그만큼 정다빈이 외로웠다는 얘기 아니냐. 결국 그 외로움이 그를 자살로 내몬 게 아닌가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