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절 논란이 일고 있는 <마녀유희>와 일본드라마 <너는 펫>(오른쪽). | ||
어두운 경로를 통한 일본 문화의 한국 침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국내에 일본 만화 열풍이 불기 시작한 1994년경부터. ‘해적판’ 일본 만화가 한국 만화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런 어두운 경로를 묵인했고 일본만화는 현재 한국 만화 시장의 50%, 만화영화 시장의 70%를 차지할 만큼 급성장했다.
일본의 침투는 만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공중파 방송 3사에서 방영된 오락프로그램과 드라마들이 연이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달자의 봄>은 일본 NTV의 <아네고>를 베꼈다는 의혹에 휘말렸고, MBC <히트> 역시 후지TV의 <언페어> 표절 논란이 한창이다. SBS <마녀유희>는 김수희 작가의 <개인비서>라는 로맨스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됐지만 T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너는 펫>과 닮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드라마의 일본드라마 표절 논쟁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MBC 인기 드라마 <청춘>이 1997년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후지TV의 <러브제너레이션>을 표절해 조기 종영된 경우. SBS <로펌>은 후지TV의 <히어로>를 베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고, 김재원이라는 청춘스타를 발굴한 MBC <로망스>는 TBS <마녀의 조건>을, SBS <건빵선생과 별사탕>은 <고쿠센>과
하지만 대부분 표절 논란만 이슈화됐을 뿐 특별히 문제가 된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드라마의 표절에 대해서 일본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99년 일본 시사주간지
▲ 한국드라마 <히트>(왼쪽)와 일본드라마 <언페어>. | ||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NHK 방송 담당 관계자는 “솔직히 일본 중심 방송사인 도쿄 지상파 방송 6개와 지방방송사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을 다 헤아릴 수 없다”며 “다른 나라에서 어떤 작품을 베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 일본에는 NHK(채널1, 3), NTV(채널4), TBS(채널6), 후지TV(채널8), TV아사히(채널10), TV 도쿄(채널12) 등 6개의 중앙방송사와 각 지방의 민영방송사에서 1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어 표절 여부를 파악하는 것도 벅차다는 것이다.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도 문제다. 기자는 MBC 드라마 <히트>와 후지TV <언페어>의 표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드라마 제작사인 칸사이TV와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쉽사리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답변을 주겠다’는 담당자와 통화하기 위해서 총 네 명의 관계자를 거쳐야 했다. 어렵게 제작사 담당자로부터 표절 여부에 대해 자체 조사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이후 매주 서너 번의 문의 전화를 걸며 기다린 끝에 한 달여 만에 칸사이TV의 공식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 한국드라마 <달자의 봄>(왼쪽)과 일본드라마 <아네고>. | ||
칸사이TV 홍보부의 오히라 씨는 “표절 여부에 대한 확인이나 대처 방안은 주관적인 판단으로 말할 수 없다”며 “(표절은) 한국과 일본 문화 교류 중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아사히신문>이 한국드라마 붐과 한·일 드라마 교류에 관해 보도한 기사를 언급하며 “기사 내용처럼 표절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호텔리어>처럼 한국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일본에서 다시 제작되는 등 양국 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일본대중문화 평론가인 김필동 세명대 교수는 “일본이 한국의 표절 문제에 대해서 다소 묵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일본뿐 아니라 미국 같은 선진국은 경제적 측면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자국 문화의 광범위한 전파를 위해서 (표절 등의 문제를)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후진국은 선진국 문화를 표절하면서 발전하는 것으로 일본도 그랬고 한국도 지금까지 그래왔다”며 “문제는 한국 대중문화가 이제 남의 것을 베끼지 않아도 될 수준임에도 타성에 젖어 표절을 일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0년부터 일본 기업이나 학계는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장은 문화 전파를 이유로 침묵할 수 있지만 그 효과가 떨어졌다고 여겨지면 일본이 한국 방송계에 강력한 어필을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 제작사들이 자정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