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론 하이랜드는 차밭으로 유명합니다. 첩첩산중의 산들이 차밭입니다. 그 넓이가 서울보다 넓다고 합니다. 밀림 속으로 여기저기 벌목을 하여 만든 산속 농장에서 딸기와 벌꿀과 고랭지 채소를 가꿉니다. 이 밀림지역은 미얀마 난민들에겐 잊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밀림 속 농장의 난민들 숙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의 종교적 박해, 소수민족이라는 이유의 인종적 탄압 등. 이것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난민 발생국이 되었습니다. 종교가 다른 미얀마 북부의 친주(Chin State)와 까친주(Kachin State)에 사는 소수부족들에게 행해진 차별과 박해. 이 지역은 대부분 기독교를 믿는 부족들이 많습니다. 가난과 차별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이웃나라로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인도, 태국으로의 탈출 러시. 10년 전부터는 태국을 거쳐 잘 사는 나라 말레이시아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로 가려면 해안 끝에서 태국을 거쳐 말레이시아 정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생결단을 하고 떠나는 이 탈출의 행로에서 수많은 이들이 숨졌습니다.
8년 전 저희 회사 직원들이 휴가 때 이곳에 자원봉사를 갔습니다. 난민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도울 일이 막막하다는 한 선교사의 얘기를 듣고 그리로 갔습니다. 직원들이 돌아왔는데 아무 말이 없습니다. 사진을 펼쳐놓았는데 보니 다 정글 속 사진입니다. 수천 명이 밀림 속에 숨어서 풀과 열매를 따먹고 산다고 했습니다. 저는 난민촌에 사는 줄 알았습니다. 산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말레이시아 경찰은 난민 1명을 체포하면 50링기의 수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난민들은 무서워서 정글 속에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각 나라 선교사들이 몰래 가져다주는 쌀과 티셔츠, 의약품과 영양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자, 이들은 쿠알라룸푸르까지 걸어서 도시 속으로 들어와 옥탑방에 모여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체포된 난민들을 수용소로 보냈지만 나중에는 태국의 인신매매 조직에게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 조직들은 같이 온 친인척에게 연락하여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풀어주지 않고 매춘조직이나 피싱보트에 팔아넘겼습니다. 최근 양곤의 일간지에 12년 만에 피싱보트에서 탈출한 중년의 남성이 어머니와 끌어안고 우는 사진이 톱기사로 실렸습니다. 태국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 바다에서 일했던 그는, 하루에 20시간을 일하고 발목에 족쇄를 찬 채 잠을 잤다고 합니다.
태국에 이어 말레이시아도 유엔이 나서서 보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간 유엔난민기구(UNHCR)는 10만여 명에게 유엔난민카드를 발급하였지만 아직도 20만여 명의 난민들이 불법체류자로 떠돌고 있습니다. 친주에 사는 크리스천 부족 5만여 명에겐 난민카드가 주어졌고 그중 1만 5000명 정도가 해외로 이주했습니다. 미국, 호주, 일본,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지로 이주했습니다.
유엔이 난민으로 인정하는 심사에는 10가지 항목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박해가 있었는지, 소수부족에 대한 인종차별이 있었는지, 정치적인 인권탄압이 있었는지, 강제적인 노역이 있었는지, 학교와 병원치료 등 기초생활에 대한 유린이 있었는지, 성적인 학대가 있었는지 등. 이러다 보니 부부가 심사에서 엇갈려,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는 또 하나의 ‘심각한 난민’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북부 침수된 마을.
미얀마 틴 아이 선거관리위원장은 11월 8일 총선은 홍수로 인한 재난선포와 상관없이 실시한다고 발표합니다. 2달간 계속된 폭우로 미얀마는 90여 명이 사망하고 3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가옥이 1만 900여 채, 농지는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물에 잠겼습니다. 나라의 절반 이상이 침수 상태입니다. 그중 북서부 사가잉, 이라와디강 중류 마궤, 서부 라카인주, 북부 친주 4곳은 국가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북부는 이들 난민들의 고향입니다. 양곤에서 보내오는 침수사진들. 제 카톡의 사진들을 보며 이들은 할 말을 잃습니다. 제가 같이 기도하자고 합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합니다. 조국 미얀마와 고향의 가족들을 위해.
정선교 Mecc 고문
필자 정선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고아를 위한 NGO Mecc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