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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한동 정몽준 이인제 박근혜(왼쪽부터) 등 당 안팎의 대안 카드를 활용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 ||
민주당의 다수는 노무현 후보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접은 것 같다. 한때 60% 가까이까지 치솟았던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는 계속 내리막을 달려 7월엔 정당 배경도 없는 정몽준 의원한테도 밀리는 3위로 처졌다.
그런데도 지지도를 반전시키려는 안간힘은 노 후보 진영만의 모습, 당의 다른 그룹에선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지지도의 내리막을 멈추게 할 당 차원의 프로그램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권 재창출의 집념은 결코 접지 않았다. 이 현상은 민주당의 다수가 새로운 선택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는 반증이라고 해석한다면 비약일까.
집권 여당계열의 다수파가 노 후보에 대한 기대를 거둔 흔적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8·8보궐선거 후보 공천에서 당은 노 후보가 공개적으로 반대한 장기표, 남궁진 두 후보를 공천했다.
노 후보가 반대하는 개헌추진도 멈출 기색이 아니다. 당 공식기구인 정치개혁특위 헌법문제검토소위는 분권적 정부형태에 대한 검토를 계속하고 있다.
노 후보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건의한 내각개편, 그리고 고위공직자수사처 등 제안은 차갑게 거부당했다. 노 후보의 제안은 청와대가 받기엔 적절치 않은 것들이다. 총리나 법무를 한나라당과 의논하거나 추천을 받으라는 제안은 청와대와는 인식이 어긋난다.
우선 대통령의 탈당으로 내각은 이미 중립이라는 청와대의 주장을 부인한 셈. 그뿐인가.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으라는 대목을 청와대는 항복문서에 서명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문제는 거부당한 사태가 아니라 거부당할 제안을 내놓은 고립이다. 대통령이 당적을 떠났다지만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해 은퇴하기 전엔 여전히 DJ당이다. 그런데 노 후보진영은 청와대와 대화채널도 없다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노 후보 진영은 여당세력 안에서조차 사면초가 형국이다. 청와대와 거리가 먼 총리서리의 대외활동 자제를 요청, 총리실과도 소원해졌다. 서울 금천구 공천 논의에서 김중권 고문을 반대해 충돌했고 급기야 김 고문에게 ‘반 노무현 선언’의 길을 터주는 결과를 자초했다.
김 고문을 지지했던 장성민 위원장은 차라리 노 후보가 금천지구 재선거에 출마, 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으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노무현씨를 대통령 후보로 인정한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제안이다. 민주당이 자랑하는 국민경선 후보가 이토록 밀리고 따돌림당하는 건 정말이지 의외의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원래 대통령 후보가 지명되면 당의 권력은 후보한테로 이동한다. 대통령에 당선, 그야말로 제왕이라고 할 최고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날에 대비해 모두들 대통령 후보 앞에 줄을 선다. 최근 두 정당이 대통령을 선출된 제왕이 되게 해선 안된다해서 당권·대권 분리를 말하지만 실효성은 의문. 그래서 줄서기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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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이래 대통령 선거 제1의 투표동기는 지역감정이다. 노 후보 등장 역시 지역투표에 기초한 민주당의 영남 후보다. 영남후보의 조건은 지난 세 차례 대통령선거의 표 흐름에서 해답이 나온다.
87년 선거전략은 4자필승론에 기초했다. 여당이던 노태우 진영은 여당의 표 35% 득표에 기초해 4자필승론이란 표 계산을 했다. JP가 충청에서 1위로 5%를 득표하고 YS·DJ가 남은 60%를 30%씩 고르게 나눠 가면 노태우의 35%는 5%차로 상대를 따돌린다는 게 당시 전두환 정권의 ‘노 대통령 만들기’전략의 기초였다. 이래서 YS·DJ의 팽팽한 균형 유지는 노태우 득표 못지 않은 여당의 선거공작 과제이기도 했다.
DJ의 후보단일화 거부 역시 나름의 4자필승론에 기초했다. JP가 충청의 보수성향 표를 쓸어 담으면 노태우 경북, 김영삼 경남, 김대중 전라 몰표로 지역표는 3자 동률, 이래서 수도권 1위가 될 DJ필승이 DJ캠프의 4자필승론이었다.
92년 대선 때 정주영 후보 지지가 미풍이면 YS 당선, 강풍이면 DJ 당선이라고 했는데 ‘정풍’은 ‘미풍’에 그쳐 DJ는 고배를 마셨다. 97년 선거, DJ는 95%의 호남 몰표에다 충청표(JP)와 합동하고 이인제라는 제3후보가 영남표 일부를 떼갔음에도 겨우 39만 표 차로 승리했다.
이렇듯 세 차례 선거에서 나타난 건 민주당의 고정기반은 견고한 반면 소수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제3의 후보에 의한 상대진영의 표 분산, 아니면 상대진영 표 잠식이 승리의 필수조건이다. 민주당의 영남 후보는 한나라당의 표밭인 영남을 공략해 표를 잠식하는 것. 노 후보는 그 가능성으로 선택되었다.
그런데 노 후보는 PK(부산 경남)공략에 실패했다. 그 실패는 노 후보 스스로 자초했고 그래서 회복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아무튼 노 후보 기반은 호남과 진보를 자처하는 운동권 등 젊은 표에 멈춰버렸다. 이건 노 후보가 아니라도 민주당 후보면 누구든 확보할 수 있는 표.
이런 고정표에 멈춘 ‘노 후보 민주당’의 출구는 제3 후보에 의한 영남표 분산이 유일한 길이다. 표 분산요인은 널려 있다. 그러나 노 후보는 표 분산을 만들어내는 데도 적임이 아니다. 바로 노 후보의 불안정한 이미지 탓이다.
한가지 예를 들자. 그는 운동권 학생 수준의 미국 인식을 드러냈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도 수상이 되려면 대미외교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마음 쓴다. 그런데 한국에서 집권을 하겠다면서 운동권 학생 수준의 미국 인식에 멈춰있다면 그가 한국의 어제·오늘·내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일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 것.
이 때문에 이회창 노무현 대결구도가 되면 노 후보를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이 노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해 표 분산을 철저하게 경계할 것이라는 게 민주당 자체의 분석이기도 하다. 결국 노 후보로는 정권재창출은 비관적이라는 게 민주당의 기류다.
그러나 민주당 다수파의 정권 재창출 집념은 여전하다. 여성과 보수안정세력을 겨냥한 장상 총리 임명, 선거선심이라고 할 교통법규위반 사범에 대한 대규모 사면, 신용불량자 구제조치에서 청와대의 정권재창출 의지 불변도 읽힌다. 따라서 정치권의 변화는 필연이다.
변화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까.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리면 길이 열린다고들 말한다. 여건은 97년보다 낫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우선 여당 프리미엄에 힘입어 민주당 고정기반이 97년에 비해 더 넓어졌다. 노동조직도 상대적으로 민주당에 더 우호적이다.
시민운동단체의 거의 대부분이 민주당에 보다 가까이 있다. 그 위에 양당 바깥의 정치세력들, JP의 자민련, 박근혜의 미래연대, 월드컵 바람을 탄 정몽준 등 반이회창 벨트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은 무르익어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민주당 쪽 정권재창출의 기대는 이런 정치환경에 근거해 있다. 반이회창 벨트의 성패는 이한동, 박근혜, 정몽준, 그리고 이인제의 역할분담, 그리고 승산을 되살리는 일이라는 것.
“노풍은 빌라파문이라는 이회창 흔들기와 함께 만들었다. 9월을 겨냥하는 새 바람 역시 이회창 흔들기와 함께 올 것”이라는 게 정가의 눈길이다.
홍민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