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김):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결혼식 직후에 인터뷰했던 김태진 리포터입니다.
김미화(화): 그럼요. 기억하고말고요. 신문사 인터뷰인데 왜 이렇게 멋있는 분이 오셨나 깜짝 놀랐어요.
진: 지난 7개월 동안 신혼 생활은 행복하셨나요.
화: 우린 주말 부부라 늘 신혼이에요. 남편과 함께 고추 농사도 짓고 깻잎도 따면서 여유롭게 지낼 수 있어 좋아요. 우리 동네는 개발이 덜 된 시골이라 정 많고 순박한 분들이 많아요. 저녁마다 동네 분들이 저녁 먹으러 와라 술 마시자며 불러내 주말마다 이벤트의 연속이에요. 이 나이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진: 정말 예뻐지셨어요.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결혼식 당일보다 더 젊어지신 거 같아 깜짝 놀랐어요.
화: 아! 그래요? 살이 조금 붙었는데 그래서 약간 통통해지니까 다들 좋아 보인데요. 그럴 법도 한 게 편안하니까, 그게 얼굴로 나타나는 거 같아요,
진: 남편 분에겐 어떤 요리를 제일 잘 해주세요?
화: 저는 요리 안 해요. 우리 남편이 하지. 밖에서 일을 하는데 사명감에 사로잡혀 살림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내가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남편이 하고, 편하게 살자는 생각이에요. 사실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시어머니가 다 해주세요.
진: 결혼해 자녀가 2녀에서 1남 3녀로 늘어나 더욱 다복해지신 것 같아요.
화: 그럼요, 좋죠. 아이들도 무척 좋아해요. 원래 애들은 가끔 속도 썩이고 하는데 우리 애들은 각자 맡은 바 일 열심히 하고 아빠 엄마한테 잘해줘서 늘 고마워요. 다행히 예전부터 가족들끼리 잘 알아 서로 불편하거나 낯설어 하는 건 없어요. 결혼할 때 아이들이 제시한 조건이 아이를 하나 더 갖는 거였어요. 아이들이 동생을 강력하게 원하는 데 엄마가 몸이 부실해서 문제죠. 나이가 너무 들어서 별도의 출산 계획을 세우긴 좀 그렇고 자연스럽게 노력해보려고요.
요즘 대표적인 김미화의 호칭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다. 2003년 가을에 시작했으니 벌써 만 4년째다. 당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미화는 “방송 두 시간 전부터 수능 공부하듯 준비하는데 어려운 시사용어가 쉽게 입에 안 붙어 어려움이 크다”면서 “방송이 끝나고 나면 진이 다 빠져버리는 듯하다”고 얘기했었다. 4년여의 시간이 흐른 요즘은 어떨까.
화: 지금도 그래요. 시사라는 게 매번 새로운 일이 터지니까 늘 처음이에요. 시사 전문가도 아닌 입장이라 여전히 용어도 어렵고 사실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 리포터 김태진이 영원한 ‘순악질 여사’ 김미화와 함께 그 시절 포즈를 취해봤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화: 제 수준에 맞춰 전문가들이 얘기해주는 편이에요. 어제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우리 입장에서 방송을 진행해줘 참 편하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어려운 말이 나오면 늘 ‘선생님 그게 뭐예요?’라고 물으니까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이젠 아예 제가 잘 모른다고 생각해 쉽게 설명해주세요. 전문가가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은 전문성이 장점이라면 우리는 쉽다는 게 장점이죠.
진: 서서히 장수 프로그램 대열에 들어가고 있는데 좀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그 비결이 있다면.
화: 청취자들이 제게 동질성을 느끼는 거 같아요. 웃고 울고 또 격분하는 감정이입으로, 시사라면 무조건 딱딱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요. 정치 공방을 보면 참 재미난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걸 소개하다 아나운서가 웃으면 방송사고지만 제가 웃으면 청취자들도 같이 웃어 주시거든요.
진: 요즘 <디 워>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심형래 감독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있어 개그맨 출신이라는 편견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그랬는데 선배님은 어떠세요?
화: 저는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많이 바뀌면서 틀을 깨려는 시도들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저는 운이 좋아서 그런 시도를 많이 해본 편이고요. 시사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대학교수 같은 분들만 진행을 하고 마니아 시청자들만 볼 것 같던 교양 프로그램
진: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 이후 정치권 진출설이 끊이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들었어요.
화: 다양한 사회활동과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이유로 저를 자꾸 정치 쪽과 연관지려는 시각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확인도 없이 저를 폴리테이너 범주에 넣어 제가 언론중재위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온 거예요. 83년에 데뷔했으니 벌써 20년 넘게 방송활동 하며 늘 ‘정치와는 무관한 사람’이라 얘기해 왔어요. 강산도 10년이면 바뀐다는데 저는 20년이 넘었어요. 물론 소위 오피니언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걸 빌미로 성공하려고 몸부림친 경우도 있었지만 한 사람이 20년 넘게 얘기한 건 믿어주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
김미화는 <개그콘서트>를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요즘 한창 각광받는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을 방송에 도입한 개그계의 선구자인 셈. 지금 잠시 개그계를 떠나 있지만 그가 여전히 최고의 개그우먼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진: 요즘 <개그콘서트>를 보면 은근히 기분이 좋으실 거 같아요.
화: 당연하죠. 그런 물고를 트는 데 내가 일조를 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단지 걱정은 여기서 또 한 번의 도약이 있어야 한다는 부분인데 그건 이제 후배들의 몫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한창 활동할 때만 해도 코미디는 저질이라는 인식과 싸워야 했거든요. 그런 인식이 변해 개그맨이 각광받는 세상이 돼 너무 기뻐요.
진: 누가 뭐래도 선배님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커리어우먼인 것 같아 부러워요. 본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화: 현업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에요. 25년여를 꾸준히 활동하게 된 상황이 고마울 따름이죠. 더 나이 먹어서도 현업에서 활동하고 무대에서 개다리 춤을 출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 쭉 선배님하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자유로움 속의 진솔함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정말 존경합니다.
화: 나른하게 얘기했는데 뭘 존경한다고 그래. 다음에는 더 편한 자리에서 만나 많은 얘기 나눠요.
정리=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