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최대 주력인 항공업이 대외환경 악화와 내부 재무 부담 가중으로 ‘난기류’를 만났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주당 5만 원에 육박했던 대한항공 주가는 최근 3만 원 초반까지 추락했다. 아시아나항공도 3월 주당 9000원이 넘었던 주가가 이젠 5000원도 위태롭다. 급기야 지난 17일에는 국내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 곳인 NICE신용평가가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BBB+/안정적’으로 강등했다. 18일에는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을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최근 중국, 유럽 등지의 경기 침체 및 그에 따른 각국의 환율상승,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의 거시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고, 저비용항공사와 외국계 항공사의 시장잠식으로 경쟁강도가 심화되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초대형 항공기를 지속적으로 도입하면서 재무부담이 커지고 있고, 항공업 외 그룹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지원하는 문제도 제기했다. 돈벌이는 잘 안 될 것 같은데, 돈 쓸 곳은 많아서 살림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계를 보면 지난 6월 아시아 내 항공수요는 한 해 전에 비해 불과 2.4% 늘어났다. 한 달 전 증가율 14%와 비교해 뚜렷한 둔화세다. 특히 비즈니스클래스에 대한 수요가 이코노미석 수요증가에 뒤처졌다. 비즈니스클래스 등 고가의 항공권 수요는 향후 경제 성장을 예측하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IATA는 “이는 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제부진이 항공 수요에 반영된 첫 신호”라고 설명했다. IATA 자료를 보면 아시아와 유럽 간 비행 수요도 지난 6월 전년동기대비 2.5% 떨어졌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강성진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운용항공기가 크게 늘어난 시점에서의 시황 악화는 부담스럽다. 대한항공의 경우 상반기 말에 작년 말 대비 7대 늘어난 153대의 항공기를 운영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무려 13대를 새로 도입한다. 2분기 메르스 악재를 여객단가 하락과 수송량 확대로 이겨냈지만, 계속 항공기를 늘리면서도 탑승률을 유지하려면 여객단가 인하경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모두 2분기에 적자로 돌아섰다. 6월 메르스로 인한 타격도 컸지만, 단기노선에서는 저가항공사와의 경쟁, 중장기노선에서는 외국항공사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객단가가 크게 낮춰야 했다. 유가하락으로 인한 수혜가 컸지만, 그 가운데 상당부분을 경쟁비용으로 지출해야 했다. 그나마도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되게 되면 결국 운임도 그 수준에 맞도록 하향돼 수혜는 차츰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3분기부터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최근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에 이어 이르면 9월로 예상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릴 게 확실시된다. 항공사들은 항공기 리스비용과 항공유 도입을 모두 달러화로 결제한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달러를 마련하는 데 더 많은 원화를 지급해야 한다. 그만큼 부담요인이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이 이뤄지면 신흥국 통화약세는 불가피하다. 원화의 경우 연말까지 달러당 1200원은 가뿐히 넘어설 전망이다”라고 내다봤다.
1분기 말 1109.5원에서 2분기 말 1115원까지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대한항공이 입은 외환손실은 1600억 원에 달한다. 환율은 최근 1185원까지 치솟았다. 2분기보다 더 많은 외환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주요 대기업 실적악화로 무역수지 흑자폭이 줄어들고, 미국의 추가적인 금리인상까지 이뤄질 경우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신흥국 통화약세는 신규 항공수요를 창출했던 신흥국 국제여행객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해외여행 비용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항공기 구매는 항공운송업 본업이란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항공업 외의 비주력 부분에 대한 투자도 항공사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진인터내셔널은 2011년부터 총 11억 달러를 들여 미국 LA 다운타운에 월셔그랜드호텔을 재건축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미 지급보증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9575억 원을 지원했고, 2017년 7월까지 3800억 원의 추가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또 계열사인 왕산레저개발을 통해 진행중인 인천 용유도 해양복합리조트개발사업(총투자비 약 1600억 원)에 대해서도 대한항공이 상당부문 자금지원을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지난 18일 서울 중구 송현동 경복궁 옆 옛 미 대사관 숙소 부지 1만1000평에 복합 문화 허브 ‘K-Experience’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한항공은 당초 7성급 호델을 지으려다 서울시 등의 반대로 무산되자, 문화시설로 방향을 튼 결과다. 대한항공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 같은 호텔 사업은 조 회장의 큰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강하게 추진했던 사업으로 알려졌다. 지하 3층, 지상 4~5층 규모의 이 문화시설은 2017년까지 1차 공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적어도 수천억 원의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의 경우 항공은 아들인 조원태 부사장이, 호텔은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런데 아직 남매간 지분 정리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조 회장이 미리 호텔사업 규모를 충분히 키워놓지 않으면 후계 구도에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아시아나항공도 박삼구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그룹의 모태’ 금호고속 인수에 중추역할을 해야 한다. 금호타이어지분 등 박 회장의 개인재산은 아시아나항공 지배회사인 금호산업 채권단 지분을 매입하는 데 모두 동원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채권단의 매각제안가가 높아 박 회장의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룹의 모태인 금호고속을 되사오는 데 돈을 댈 곳은 아시아나항공밖에 없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에 문제가 생기면 타격이 크다.
문제는 신용등급이 높은 은행으로 구성된 채권단 대신 자금력이 크지 않은 박 회장이 금호산업 대주주가 되는 순간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은 크게 떨어질 공산이 크다. 이번 신용등급 전망 하락의 원인에는 새로운 대주주의 신용능력 저하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과 금호는 재계에서도 유명한 앙숙이다. 특히 한진은 금호아시아나를 한참 아래로 본다. 금호아시아나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선 데에는 그룹 규모를 키워 한진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 회장과 박 회장 모두 주력인 항공업이 어렵다고 공격적인 경영행보를 쉽게 포기할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