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글루미 선데이>. 이 영화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그들의 기묘한 동거 이야기를 담고 있다. | ||
뷔페식으로 사랑을 할 수는 없을까. 아무리 입맛에 맞는 한 그릇 식사라 해도 세 끼만 먹으면 질린다. 그런데 사랑에서만큼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한 남자만 보고 살란다. 말이 되는가. 덕분에 에로스는 증발해버렸다.
단 한 명의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이, 머릿속엔 계산기만 남았다. 모 기업의 K 대리는 안정적이나 촌스럽고, 아르마니 슈트의 L은 감각적이지만 재미가 없고, 아티스트 Y는 이상은 통하나 돈이 없는 식이다. 어차피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완벽한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혹 존재한다 해도 나를 사랑할 리 만무하다. 차라리 동시에 이 K와 L과 Y를 사랑할 수 있다면 굳이 완벽한 누군가를 찾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세 명 이상이 평등하고 열린 관계를 유지하는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 연애)란 그야말로 평화로운 뷔페와 같다. 반대로 모노가미(일부일처제)란 뷔페에서 나온 여러 음식을 두고 서로 하나만을 평생토록 독점하겠다고 침을 뱉는 격이지만.
따라서 여기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세 명의 파트너가 느슨한 관계를 맺거나(트라이어즈 Triads), 한 명을 중심으로 두 명이 양옆에 붙거나(비 Vee), 3명의 파트너가 서로 그물처럼 얽힐 수도 있고(트라이앵글 Triangle), 3명 이상이 그룹을 만들어 섹스를 포함해 여러 사랑을 나눌 수도(폴리피델리티 Polyfidelity) 있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나 한 남자를 세 명의 여자가 공유하는 <걸 프렌즈>의 경우처럼, 혹은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도 등장했듯이. 그런데 정말 현실에서도 가능한 걸까.
언젠가 지리산 산청의 어딘가에도 기존 결혼 제도를 부정하고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났다. 그리고 조선희의 소설에서 읽은 본게마인샤프트가 떠올랐다.
독일에서는 오래전 69혁명을 일으킨 히피들이 유지해오던 공동체 사회가 있었다고 한다. 한 아파트에 열댓 명의 남녀가 모여 음식을 비롯한 모든 사유재산을 나눠 쓰고 사랑과 섹스마저도 공유하던. 평화롭고 자유로워 보이던 그 공동체는 자본주의가 대세인 21세기까지 살아남지는 못했다.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번듯한 집, 좋은 차의 소유에 대한 욕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나 혼자만 평생토록 소유하고 싶다는 독점욕…. 머릿속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그림이지만 인간의 욕망은 논리로 재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본게마인샤프트의 대안과도 같은 이런 형태의 공동체 사회는 중국의 모소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모계사회 안에서 18세가 된 이후로 남녀가 자유롭게 연애하고, 남편이나 부인 대신 ‘아샤’를 둔다. 남자가 밤에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고 다시 아침이면 제 집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관계는 유지된다. 아이가 생기면 여자가 기르고 만약 헤어지고 싶다면 여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남자가 더 이상 그 집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다. 결혼이 아닌 교제 관계이기 때문에 일생에 몇 번의 아샤를 만날 수도 있다. 모소족 사회에서 이성이 만나 서로 죽을 때까지 영유하는 것은 애정이라는 감정 하나뿐이다.
장 보테로 조르주 듀비 등 역사학자들은 점점 개방화되어가는 성의 모습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의 자유로운 문명과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 사회 238곳 중 일부일처제를 유일한 혼인으로 강요하는 사회는 사실상 43곳(18.1%)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공론화되어간다고 한다.
만약 평생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다면, 마치 기업의 합병처럼 변해버린 쌍방의 조건에 맞춘 상업적 결혼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평생 원수처럼 사는 일도,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단어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도시는 퇴폐 대신 건강한 에로스로 활기를 띠지 않을까.
2050년이면 인간의 평균 수명이 150세 즈음 된다는데, 유효기간 1년이라는 그 사랑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할 자신이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단 한 명의 누군가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압박감도 부담스럽다. 다행히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을 평생 사랑할 수 있다면 축복받은 인생이겠지만 결혼한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느냐고.
에디터=이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