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출연 직전 대기실에서 만난 원더걸스. 왼쪽부터 선미, 예은, 선예, 유빈, 소희.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텔미 텔 미 테테테테 텔 미~♪” 원더걸스의 인터뷰를 위해 사전 취재 하는 과정에서 ‘텔 미’를 100번은 족히 들은 것 같다. 구제불능 몸치지만 다섯 소녀의 깜찍한 댄스도 열댓 번은 따라해 봤다. 어라? 생각보다 쉽지 않다. 미묘한 엇박자 댄스와 진성으로 부르는 노래는 몸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텔 미’를 ‘마스터’했다. 군인 경찰 아줌마 아저씨 아이 어른 학생 회사원 구별 없이 ‘텔 미 댄스’를 춘다. 심지어 외국인까지 댄스에 맞춰 노랫말을 흥얼거린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전국을 휩쓴 ‘텔 미 열풍’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롤리타콤플렉스(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정서적 동경이나 성적 집착을 가지는 현상)의 일종’ ‘레트로(Retoro:복고)에 일조한 일시적인 흥행’ 등. 그러나 돌풍의 주인공들은 “멜로디가 쉽고 중독성이 강한 노래 덕분”이라고 해석했다. ‘원더걸스 열풍’이 아닌 ‘텔 미 열풍’이라는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맞아요. 박 피디님(박진영)이 가수는 노래로 기억돼야 한다고 하셨거든요(예은)”라고 대답한다. JYP 관계자도 “노래 1박, 춤 1박, 비주얼 1박 총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성공할지는 몰랐다”며 놀라워하는 눈치다.
이유야 어찌됐든 ‘텔 미’는 성공했다. 원더걸스도 국민 여동생으로 급부상했다. 그들이 음악에 맞춰 살랑살랑 어깨춤을 추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큰 함성이 터져 나온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귀여워 죽겠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인기가 많다는 건 그만큼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다는 얘기. 대중은 쉽게 칭찬을 하지만 잘못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 때문일까. 원더걸스는 데뷔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신인 그룹치고는 ‘멤버 왕따설’부터 ‘가창력 논란’까지 많은 ‘설’과 ‘논란’에 휩싸였다.
“어떻게 보면 사실이고 또 그것도 저희들의 모습 중 일부니까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여요. 언제나 칭찬만 받을 수 없잖아요. 오히려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것에 감사해야죠(선예). 아직 저희가 많이 부족한 탓이죠. 하지만 분명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음이 아픈 기사나 댓글이요? 보고 잊어버려요. 마음에 담아두면 악영향만 끼치거든요(예은).”
사실 2007년 2월 ‘아이러니’로 신고식을 치를 때만 해도 원더걸스는 무대 위에서 자유로웠다. 신인가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했다. 그 비결은 몇 년간에 걸쳐 이뤄진 ‘JYP식 무대 실전 연습’ 덕분이었다. 오랜 준비기간도 한몫했다. 원더걸스의 (민)선예는 2001년 SBS <초특급 일요일 만세-영재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최종 선발돼 6년 만에 연습생 꼬리표를 뗀 경우다. (안)소희와 선미도 2년 전 JYP 오디션을 통해 합격해 기량을 갈고 닦아온 가수 지망생. (박)예은만이 유일하게 몇 개월 동안 준비해 합류한 멤버였다. (김)유빈은 탈퇴한 현아를 대신해 들어왔지만 타 소속사에서 꾸준히 연습을 해왔다.
준비는 확실했다. 자신감도 충만했다. JYP 관계자는 “원더걸스가 지금까지 ‘텔 미’로 무대에 선 것보다 연습생 시절 연습으로 스테이지에 오른 횟수가 더 많다”고 설명할 정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미국에 있는 박진영에게 동영상을 통해 매달 가창력이나 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박진영의 점수와 JYP 트레이너들의 점수, 비 임정희 같은 선배 가수들의 점수를 모아 일정 점수 이상을 획득해야만 데뷔가 가능한 시스템에서 원더걸스는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연습생 때는 보컬, 댄스 트레이닝만 기본 4시간이었고 이 외의 수업도 3시간씩 들었다. 중국어 선생님과 숙소에 함께 살면서 외국어를 생활화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런 생활이 계속 되다보니 하루만 연습을 빼먹어도 불안해서 수학여행도 못 갔단다. 그런 이들이 가창력 논란이라니. 속상할 만했다.
원더걸스는 아직 미워하는 사람들보다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 힘이 난다고 했다. 논란이 일 때마다 서로를 위로하면서도 멤버 각자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이는 데뷔 5개월 전부터 함께 숙소 생활을 한 터라 가능한 일. 원더걸스 예은은 “크게 다툰 적은 없는데 누군가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성대모사를 하면서 기분을 풀어준다”며 멤버들 간의 애정을 과시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원더걸스는 지난 2006년 JYP 내부에서 열리는 연습생 쇼케이스에서 푸시캣돌스의 ‘돈챠(Don't cha)’를 부르다가 박진영의 눈에 띄어 팀이 됐다. 이들이 꽤 오래 전부터 친분을 쌓아왔단 얘기다. 늦게 합류한 예은과 유빈도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끼리 어울리는 듯 금세 친해졌다. 이동 차량 안에서 서로 장난치고 수다 떨면서 정이 많이 쌓였단다.
“쇼케이스에서는 선예 선미 소희가 함께 무대에 올랐고요. 저는 데뷔 한 달 전에 선발됐어요. 유빈 언니는 정규1집부터 합류했는데 한 팀이고 또 지금 고생도 많이 하니까요. 점점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예은).”
이렇게 모인 원더걸스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사고(?)를 쳤다. 첫 싱글 ‘아이러니’가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정규 1집 ‘텔 미’가 나오면서 세상이 뒤집혔다. 지금은 얼굴에 미소가 떠날 날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텔 미’ 후속곡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소속사 관계자는 “텔 미’가 꾸준히 사랑 받고 있어서 대체 언제 후속곡 활동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행복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당사자인 원더걸스의 고민은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텔 미’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후속곡도 그만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텔 미 열풍’이지 ‘원더걸스 열풍’이 아니라는 지적도 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부담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희들만의 색깔로 더 좋은 음악을 들려드려야죠(선예). 후속곡도 사랑 받으면 좋지만 꼭 ‘텔 미’만큼의 열풍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저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예은).”
사람들은 흔히 ‘스타는 따로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평범하지 않은 외모와 특유의 카리스마, 숨기지 못하는 ‘끼’까지. 하지만 원더걸스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스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여동생들이 모인 것 같은 느낌이다. 넘쳐나는 미남미녀 사이에서 순수함으로 무장한 소녀들의 틈새시장 공략이랄까. 원더걸스는 “어차피 저희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요. 무대에 설 때도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앞서요. 저희가 즐기니까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고요. 그치?” 서로를 마주보며 까르르르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10대 소녀들이었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