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개그맨들의 삶을 가장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개그프로그램의 대기실을 찾았다. 그 곳에는 약 60여 명의 개그맨들이 모여 리허설에 한창이었다. 웃음으로 넘쳐날 것 같았던 대기실에는 ‘조용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연습에 몰두하다가도 흐름이 끊기거나 재미가 없으면 손짓 하나 말투 하나를 서로 지적하며 수정해나갔다. 얼굴은 심하게 굳은 채였다.
녹화 2시간 전, 저녁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들은 밥을 먹지 않았다. 개그맨 A는 “녹화가 있는 날이면 보통 하루에 한 끼 먹는 편”이라고 말한다. 담당 PD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구겨지는 날이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녹화가 시작되면 PD만큼이나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가 내려지기 때문에 느긋하게 밥을 먹기에도 그렇단다.
이날 대기실에 모인 개그 팀은 열여섯 팀이었다. 이중 열세 팀은 고정으로 출연하지만 세 팀은 유동적. 아이템이 좋은 날은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파일럿 코너로 무대에 서기도 하지만 그냥 돌아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코너로 먹고 사는 거예요. 가수나 배우처럼 한 작품으로 오래 남을 수 없으니까. 아무리 유명해도 아이디어가 안 좋으면 바로 무대 위에서 내려와야 하죠. 잔인하지만 현실이에요.”
A는 관객에 의해 무대 위에서 끌어내려진 개그맨들을 ‘엄마 손 놓친 아이’ 신세라고 표현했다. 유명세가 지속되는 동안에야 이른바 ‘행사’에 불려 다니지만 시간이 흘러 이마저도 없어지면 수입이 0(제로)가 된다. ‘제2의 김경민’은 예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제가 아는 선배들만 해도 (어려운 분들이) 셀 수 없이 많아요. 쉬쉬하고 있을 뿐이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선배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고요. 또 다른 선배는 치킨 집에서 서빙해요. 얼마 전에는 한 선배가 공원에 앉아서 참치 캔 하나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미래의 내 모습이 아닐까 고민하게 되죠.”
한때 코너가 인기를 얻으며 큰 사랑을 받았던 개그맨 B는 다른 코너의 잇따른 실패로 현재 공연장을 전전하며 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가 일주일에 손에 쥐는 돈은 2만 원. 밤무대라도 서게 되면 한 달 생활비는 벌 수 있지만 이마저도 유명 개그맨들의 차지다. 얼마 전부터 활동을 재개한 개그맨 C는 경제난에 허덕이다 파산신고를 한 상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가정이 파탄된 개그맨도 있으며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돈이 없어 결혼을 하지 못한 이도 있다.
예전에 비해 개그 전용 공연장이 생겨 그나마 이들의 숨통이 트였다고는 하지만 개그맨은 개그프로그램에 서야만 출연료와 행사 비용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법이다. 개그 무대에 서는 막내 개그맨이 하루 녹화를 하고 받을 수 있는 돈은 30만 원선이다. 일주일 내내 준비해 받는 돈이 그 정도지만 그들은 “회사원이 2시간 일하고 받는 돈보다 많다”며 웃어보였다.
문제는 유명해진다고 해서 생활이 넉넉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개그우먼 강유미가 ‘강유미 기자’로 뜬 후에도 고시원에 살았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다. 한 개그맨은 “이름만 말해도 누구나 아는 한 개그맨 선배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다가 재산 6억 원을 잃고 지금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고 전한다. 신인 개그맨들은 상황이 더 나쁘다. 한 신인 개그맨은 “개그맨들은 동기끼리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도 5명이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7만 원짜리 방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취재를 위해 만난 개그맨(개그맨 지망생)들은 모두 “그렇기 때문에 MC가 아닌 개그무대에서 성공한 박준형은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