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서태지 데뷔 15주년을 기념한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면서 관련 기사도 줄을 이었지만 하나같이 예찬뿐 비판하는 기사라곤 이 한 문단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가요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익명을 요구하며 취재에 응해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 지를 새삼 절감해야 했다. 가요계 현장에서 접한 서태지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 그리고 서태지 측의 반론을 모아봤다.
지난 1일 서울 KBS 88체육관에서 ‘& 서태지 15주년 기념공연’이 열렸다. 정작 기념공연의 주인공 서태지는 불참했지만 4000여 명의 팬들이 모여들었다. 온라인 예매도 단 10여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을 정도다.
매우 성공적인 공연이지만 모양새는 다소 이상하다. 우선 당사자인 서태지는 동영상과 녹음된 목소리만 들려줬을 뿐 불참했고 공연은 에픽하이 스윗소로우 넬 피아 등 후배 가수들이 서태지의 히트곡을 부르는 ‘트리뷰트(헌정)’ 형식으로 진행됐다.
공연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공연의 성격보다는 주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유명 뮤지션의 데뷔를 기념해 해당 뮤지션 없이 트리뷰트 공연이 열리는 것은 그리 특이할 게 없다. 트리뷰트 공연의 특성상 반드시 당사자가 꼭 참석할 이유는 없다는 것. 다만 공연 주체가 서태지의 레이블인 서태지컴퍼니라는 부분이다. 트리뷰트(헌정)를 받는 주인공과 소속사가 직접 공연 기획에 관여한다는 게 난센스라는 것.
이에 대해 서태지컴퍼니 측은 “기념공연 기획 초기부터 서태지의 참여 여부보다는 팬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서 “출연 가수들이 성의 있게 준비했고 서태지의 미공개 동영상 등이 마련돼 팬들이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에 대해 한 공연기획자는 “그렇다면 서태지의 음반을 유통하는 서태지컴퍼니가 아닌 순수한 팬클럽이 기획했어야 하는 공연”이라며 반박한다.
서태지의 데뷔 15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다양한 행사들을 두고 “돈을 벌기 위한 마케팅 상술일 뿐”이라는 지적의 소리도 높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정판매된 기념음반과 MP3다.
우선 예매 서비스 단 1분 만에 매진된 서태지의 데뷔 15주년 기념음반은 정식 판매가가 10만 원에 육박한다. 이를 두고 한 가수는 “은퇴한 뒤 간간이 앨범을 내는 가수가 10만 원짜리 기념앨범을 매진시키면 열심히 활동하며 1만 원까지 정규앨범을 발표하는 가수들은 모두 바보냐”고 한탄할 정도다.
이에 대해 서태지컴퍼니 측은 “8장의 CD에 노래 108트랙이 담겨 있고 두 장의 DVD에 50트랙의 동영상이 담겨 있는 패키지 앨범인 데다 리마스터링에도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면서 “가격이 비싼지의 여부는 소비자가 판단해야 할 사안이나 통상적인 가수들의 정규앨범과는 성격이 다른 만큼 단순한 가격 비교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기념앨범이 1만 5000장만 한정 판매된 것을 두고도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정판매로 희소성이 올라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 앨범의 거래가가 50여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에 대해 서태지컴퍼니 측은 “소장성을 감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워낙 손이 많이 가는 패키지 앨범이라 다량 생산이 쉽지 않았다”면서 “일부 인터넷 쇼핑몰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인해 추가 판매를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기념앨범 음원 14곡과 뮤직비디오, 미공개 동영상 등 7편의 동영상이 내장된 MP3 플레이어 ‘옙 P2 서태지 스페셜 에디션’을 1만 대 한정 판매했는데 제품마다 각각의 고유번호와 서태지 친필 사인이 새겨져 있다. 가격은 26만∼33만 원, 물론 금세 1만 개가 다 팔렸다.
서태지는 현재 8집 앨범을 준비 중이다. 항간에선 내년 초에 발표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서태지컴퍼니 측은 “아직 발매 시기는 미정”이라고 설명한다. 8집 앨범 준비로 정신이 없어 기념공연에 불참했다는 설명에 따라 가요계에선 내년 초에 음반이 발매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자신의 기념공연에 참석하지도 못할 정도라는 얘기는 곧 음반 작업이 한창 바쁜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으로 받아들여진 것. 그래서 더욱 ‘발매 시기 미정’이라는 입장에 의문을 표시하는 가요 관계자들이 많다. 한 인기가수의 매니저는 “양현석과 이주노를 배제한 서태지만의 데뷔 15주년 기념행사들이 어쩌면 서태지 8집 앨범 발표를 위한 사전 마케팅 작업일 수도 있다”라고 지적한다.
물론 다시 한 번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 서태지가 8집 앨범을 발표하면 침체된 음반 시장에 활력소가 되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서태지 마니아,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최악의 불황을 달리고 있는 음반시장에서 ‘한정 앨범’이란 희소성을 뗀 정규 앨범 역시 시장에서 대박으로 연결될 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