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지는 선거 로고송을 듣다보면 문득 궁금증이 발동한다. 원곡 가수와 비슷한 목소리에 톡톡 튀는 개사 솜씨까지 선거 로고송은 과연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걸까. 또 ‘달라 달라 달라 달라 난 달라’라며 타 후보와 차별화를 강조하는 이들이 ‘다른’ 로고송을 만들기 위해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눈치작전이나 노래 쟁탈전을 벌이지는 않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 DOC의 ‘DOC와 춤을’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선거 로고송.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위해 열심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로고송의 비밀을 살펴본다.
지난 11월 25일 12명의 대선 후보들이 본격적으로 민심 잡기에 돌입했다. 선거 유세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선거 로고송 대결.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상대 후보를 비판하는 노래부터 특별 제작된 자작곡까지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후보들의 경쟁에 웃음 지은 사람은 가수 박현빈이다. 박현빈이 2년 동안 선보인 노래 3곡(‘오빠만 믿어’ ‘빠라빠빠’ ‘곤드레만드레’)이 모두 선거 로고송으로 채택됐기 때문. 그는 소속사를 통해 “내 노래가 모두 선거 로고송으로 채택돼 기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정동영 후보와 권영길 후보가 ‘빠라빠빠’를 동시에 선택하면서 박현빈의 남다른 인기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타 후보와 ‘다름’을 강조하고 있는 각 후보들이 같은 곡을 고르면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는 것.
▲ ‘빠라빠빠’의 원곡 가수 박현빈(왼쪽)과 ‘로꾸꺼’의 원곡 가수 슈퍼주니어. | ||
그렇다고 인기곡에 대한 후보 간 ‘쟁탈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대선에는 ‘빠라빠빠’를 두고 각 캠프 간 신경전이 대단했다는 후문이다. ‘빠라빠빠’를 로고송으로 채택한 민노당 권영길 후보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가 처음 이 곡을 로고송으로 채택했는데 다른 (후보) 쪽에서 그 노래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나름의 외압(?)이 들어왔었다”고 밝혔다. 타 후보 캠프 측이 다른 노래의 저작권과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직접 로고송을 부르는 조건으로 ‘빠라빠빠’를 요구했었다는 것. 법적으로는 중복 사용이 가능하지만 인기곡을 사이에 두고 캠프 간 쟁탈전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홍보팀 관계자는 “어렵게 저작권을 얻은 만큼 다른 후보 측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며 “빠라빠빠가 개사하기도 쉽고 반복되는 후렴부가 호소력이 있어 다른 후보들도 욕심을 부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은 이런 쟁탈전에서 다소 자유로운 편이었다. 다른 캠프보다 빨리 로고송을 준비했기 때문. 덕분에 이명박 후보 측의 선거 로고송은 ‘로꾸꺼’ ‘무릎팍송’ ‘달라송’ 등 젊은 층을 겨냥한 노래부터 ‘오빠만 믿어’ ‘사랑의 인사’ 등 중장년층을 겨냥한 노래 등 계층별로 7곡을 선정할 수 있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나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는 창작곡을 선보였다. 기존 곡을 개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 만든 노래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 정동영 캠프 관계자는 “기존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는 후보의 모토와 맞아떨어져 창작곡을 선보이게 됐다”며 “또한 후보를 선전할 수 있는 고유의 노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선거 로고송 하나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일까. 로고송을 전문으로 제작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기존 곡을 선거 로고송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저작권료와 인격권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특히 대선 로고송은 지방 선거 로고송보다 가격이 높게 매겨진다”고 귀띔했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책정한 저작권료는 200만 원. 이는 원곡을 복제하거나 특정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데 필요한 금액이다. 문제는 저작인격권에 있다. 저작인격권료란 개사나 편곡을 위해 작곡가와 작사가에게 지급하는 돈. 일반적으로는 100만 원에서 300만 원선이지만 대선을 앞두고는 무려 3000만 원까지 가격이 상승했다고 한다. 개인에게 지급되는 돈이다 보니 금액이 책정돼 있지 않아 대선 등 규모가 큰 선거 때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후보 측 관계자는 “저작인격권료는 후보뿐 아니라 저작권을 제공한 작곡가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에 얼마인지 정확히 밝히기 어렵다”며 언급을 꺼려하다가 “하지만 어떻게 협상을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도 “이번 대선에서는 (저작인격권료가) 한 곡에 3000만 원까지 지급된 걸로 안다”고 말해 로고송을 두고 후보 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작인격권료 상승과 더불어 로고송 제작비도 함께 오르고 있었다. 선거 로고송을 전문적으로 만들고 있는 한 회사 관계자는 “지방선거와 같은 경우는 제작비가 한 곡당 50만 원 선이지만 대선 같이 큰 선거는 200만 원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곡을 부른 가수에게는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부른 곡이 선거에 이용되면 홍보 효과를 누릴 순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모든 비용은 저작권을 가진 소속사나 작곡가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기 때문. 가수의 목소리가 선거 로고송에 포함됐을 때만 어느 정도 돈을 받을 뿐이었다.
이 때문일까. 가수들은 자신의 곡이 선거 로고송으로 활용되는 걸 지켜보는 편이었다. 취재 결과 이번 대선에 사용된 선거 로고송도 캠프 자원봉사자 혹은 당원이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개사 역시 당원들의 몫이다. 이들이 후보의 성격을 반영하는 로고송을 완성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선거 로고송 제작사 관계자는 “가수들이 선거에 참여한다고 보는 시선은 옳지 않다”며 “보통 가수나 소속사 쪽에서는 자신의 노래가 선거 로고송으로 채택되는 것에 대해 좋아하는 편이지만 원더걸스의 ‘텔 미’와 같이 로고송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닌 다른 정당 후보 측에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망설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