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는 씨엔 삐양. 아래는 씨엔 삐양이 키보드 연주자이자 고등학생 형인 친피와 한국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
이 공동체에서 요즘 제가 기도하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름은 씨엔 삐양입니다. 중학과정 1학년인 열두 살 남학생입니다. 스태프들이 힘들어 하는 아이입니다. 얼마 전에는 학교 성적표를 받았는데 반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성적이 오르는데 이 아이만 자꾸 떨어집니다. 게다가 요즘은 방청소나 식당청소 등 공동의 일들을 하질 않습니다. 제가 하는 외국어 공부시간에도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기 일쑤입니다.
또 채플시간에 앞 다투어 나와서 하는 ‘성경귀절 암송’도 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여긴 주일 채플시간이 2시간 정도로 좀 깁니다. 그 이유는 각자 하고싶은 신앙고백, 성경귀절 암송, 특송 등을 자유롭게 먼저 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씨엔 삐양은 몇 달째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이긴 합니다. 제가 이 아이와 가까워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씨엔 삐양, 너 언제 여기 왔지?” 어느 날,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2009년에 왔어요.”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아주 어려서 왔습니다.
“그간 엄마한테 전화 없었어? 고향에 가고싶지?”
“엄마는 보고싶지만 고향에는 가고싶지 않아요.”
그러면서 엄마로부터 딱 한 번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향에는 가고 싶지 않다? 무슨 이유일까요? 그 말이 제 마음에 딱 걸립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현지인 스태프들에게 알아봤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있지만 볼 수가 없습니다. 아빠는 아주 어릴 적, 일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 기억에도 없고, 엄마는 기다리다 가난에 지쳐 재가를 하여 자식을 낳고 삽니다. 그러니 자신을 마지막까지 돌본 엄마는 보고 싶지만 고향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씨엔 삐양은 축구 등 운동을 좋아하고 영어과목은 좋아해 그 성적만은 괜찮습니다. 서로 가깝게 지내다보니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쓰던 기타를 가져와 연습을 시켰더니 금세 배웁니다. 요즘은 키보드를 배웁니다. 스태프들 얘기론 노래는 원래 잘했다고 합니다. 처음 여기 와 합창을 들었을 때, 제가 듣기에 한 여자아이의 아주 맑은 고음이 있고, 음량이 우렁찬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그 목소리입니다.
제가 그 애에게 ‘듀엣’을 신청합니다. 한국어 노래로 선생님과 같이 하자고 합니다. 한국어 공부를 안 해서 머리를 긁적입니다.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음악이 좋다고 합니다. 그애는 한국 노래가사 밑에 미얀마어 발음을 적습니다. “씨엔 삐양, 다른 애들은 다 한국어 읽고 쓰잖아, 말도 하고. 선생님도 미얀마말 잘 못하고 너는 한국말 잘 못하니 서로 대화가 잘 안되잖아? 그러니 영어든 한국어든 열심히 해, 알았지? 선생님도 미얀마어 열심히 할게.” 그 애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일과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갈 때. 비가 오니 나오지 말라고 해도 언제부터인가 씨엔 삐양이 우산을 받쳐들고 버스정류장까지 따라 나옵니다.
드디어 발표할 채플시간입니다. 이 공동체에서 키보드 연주자이자 고등학생 형인 친피와 기타를 둘러멘 씨엔 삐양이 앞으로 나옵니다. 제가 마이크로 한마디를 합니다. “여러분, 씨엔 삐양의 한국음악 데뷔 무대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르는 곡이지만 앞으로 씨엔 삐양이 가르쳐줄 거예요.” 아이들이 힘차게 박수를 칩니다. 키보드와 기타음이 울리고 우리 두 사람의 ‘아리아’가 낮게 시작됩니다. 이 아이가 보는, 한국어로 쓴 악보엔 아직도 미얀마어 발음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직접 연습하며 만든 코드가 적혀 있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습니다. 다만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습니다.
제가 숙소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비가 쏟아집니다. 오늘도 씨엔 삐양이 우산을 들고 따라 나섭니다. 둘이서 말없이 걸어갑니다. 서로 말이 잘 안 통하니까요. 상대방 나라 언어를 서로 잘 못하는 둘입니다. “씨엔 삐양, 너 키보드 하는 형이 졸업하면 키보드를 맡아라! 오늘 보니 최고더라! 그리고 앞으로 힘든 게 있으면 선생님한테는 꼭 말해. 알았지? 우린 이제 듀엣이야.” 제가 영어와 미얀마어를 섞어 말합니다. “네, 선생님.” 그애가 대답합니다. 다시 침묵입니다. 그런데 한참을 걷던 그애가 한국어와 영어와 미얀마어가 섞인 말로 간신히 한마디를 합니다.
“선생님, 제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선생님께 미얀마어를 가르쳐 드릴게요.”
정선교 Mecc 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고아를 위한 NGO Mecc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