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의 코스피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국내 증권사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지난 8월 11일 이후 한국 주식시장(이달 9일 기준)에서 순매도한 외국인 자금은 41억 7333만 달러(4조 9808억 원)다. 이 기간 증시 외국인 자금 이탈액으로 아시아 신흥국 8개국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인도(-35억 7808만 달러)와 태국(-12억 2280만 달러), 대만(-11억 6886만 달러), 인도네시아(-7억 981만 달러)를 넘어선다.
연초 이후 10조 3000억 원가량의 순매수를 보이던 외국인이 추세적인 순매도로 돌아선 기점은 지난 6월 8일이다. 이후 3개월여 동안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 누계는 8조 7000억 원에 달한다. 연간으로는 아직 1조 5000억 원가량의 순매수다.
이에 대해 대부분 증권사는 한결같이 “이제 외국인이 팔 만큼 팔았다”며 “외국인 매도가 곧 진정되면서 반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경험적인 측면에서 2011년 이후 외국인 매매의 패턴을 보면 이전 매수 사이클에서 순매수한 금액 이상을 순매도하지는 않았다”면서 “6월 이후 진행된 순매도 규모는 2015년 1월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QE)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시작돼 6월 초까지 진행된 매수 사이클에서의 순매수 금액의 80%가량을 소진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이전 사이클에서 산 금액만큼만 판다는 것은 경험적 분석일 뿐이다. 외국인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까지 4년간 72조 원을 순매도했다. 2009~2010년 다시 사들인 금액은 약 54조 원이다. 2011년 8조 원가량을 순매도했고, 2012~2014년 25조 7000여억 원을 순매수했다. 지난 3년간 사이클로 따지자면 앞으로 더 팔아 치울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 공교롭게 2004~2008년 외국인은 72조 원을 순매도했지만, 2009~2014년 71조 6700여억 원을 순매수했다. 올해는 한국 주식을 더 살 것이냐 마느냐의 분기점이다.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증시 구조다. 2004~2008년 코스피를 이끈 것은 62조 원가량 순매수한 외국인이 아니라 펀드 열풍 등에 힘입어 83조 원가량을 순매수한 국내 기관이었다. 하지만 2009~2014년 코스피 상승을 주도한 것은 72조 원가량을 순매수한 외국인이다. 이 기간 국내 기관은 18조 원 넘게 순매도했다. 국내 기관은 펀드 열풍이 시들면서 매수 여력이 바닥났고, 오히려 지수가 오를 때마다 환매에 시달려야 했다. 시장을 주도한 외국인들이 떠난다면 이를 받아줄 안전판이 없어 지수가 급격히 하락할 위험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주가가 올라야 돈을 벌 수 있는 증권사들은 최근의 주가 하락으로 한국 증시 투자매력이 높아져 ‘저가매수’ 유입 가능성을 외치고 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이후 선진국의 경기회복세가 강화되고, 원·달러 환도 1200원선을 넘어서며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보강됐다”면서 “최근 주가 급락으로 가격 매력이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시장 하방 지지력 보강과 외국인 매도 추세 진정을 기대할 만하다”고 내다봤다. 특히 삼성증권은 위기 때마다 외국인의 마지막 보루가 된 삼성전자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우니나라의 5대 기간산업인 전자·자동차·화학·조선·철강 가운데 ‘화·조·철’은 중국과 신흥국발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지 오래다.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와 LG전자 G시리즈 등 스마트폰과 반도체가 이끌던 전자도 시장점유율 하락과 수익 악화 조짐이 뚜렷하다.
자동차도 모델 노후화와 중국발 침체, 유로·엔 약세에 따른 가격경쟁력 악화로 ‘위기’ 진단이 나올 정도다.
위기 때마다 보루였던 삼성전자의 모습도 이번에는 다르다. 6월 8일 이후 외국인이 8조 7000억여 원을 내다파는 동안 삼성전자 주식도 1조 3000억여 원어치 팔아치웠다. 순매도액의 14.9%다.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의 13~14%를 넘어선다. 한국증시보다 삼성전자를 더 팔아치웠다는 뜻이다. 5대 기간산업 가운데 성한 곳이 없는 셈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미 시작된 전 세계 달러의 미국행(行)이 가속화된다면 한국은 또 다시 달러인출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2014년 7월~2015년 6월 사이 미국인의 해외채권 투자 회수 규모는 2400억 달러에 달한다”면서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자금회수 흐름이 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내년 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보유 중인 채권 만기도래를 변곡점으로 봤다. 양적완화를 위해 시장에 달러를 풀려고 채권을 사들였던 연준이 채권만기에 시장에서 원리금을 받아가려 한다면 해외로 나갔던 달러도 국내로 회수될 수 있다는 메커니즘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