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장군이 암살 직전까지 살았던 집으로 현재는 아웅산 뮤지엄으로 활용 중이다. 아웅산 장군 가족 사진. 아웅산 묘역으로 한 한국인 청년이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위부터 순서대로).
아직은 리더십이 아주 강한 대통령을 원하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뚜렷한 대선주자는 현 테인 셰인 대통령과 민 아웅 훌라잉 군총사령관 정도입니다. 단임을 약속했던 현 대통령은 아직은 애매한 상태입니다. 아직도 의회와 행정부처에는 군부 출신이 대거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948년 독립 이후. 군부통치 50년과 민선 1기 5년을 지났지만 군부 출신의 현 대통령이 다시 급부상하는 데는 아주 복잡한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미얀마 독립 전후에는 ‘큰 인물’이 많았습니다.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 우 탄트 유엔 사무총장 등. 두 사람 다 명문 양곤대학 출신입니다. 우 탄트는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1961~1971)을 맡은 인물입니다. 당시는 네윈의 군사쿠데타로 군부가 통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영어교사였지만 25세 나이에 고등학교 교장이 될 정도로 명석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자신의 이름 탄트는 깨끗하다는 뜻). 독립 후, 민간정부의 주 유엔 버마대사로 시작해 유엔에 들어가 만장일치로 재임에 성공하고, 사상 처음 3선 연임을 제안받았지만 깨끗하게 물러났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 세계 곳곳의 인도주의적 구호활동 등 그는 온화하면서도 끈질긴 협상능력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지만,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뉴욕에서 사망했습니다. 우 탄트 사무총장의 시신이 양곤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족 외에는 아무도 배웅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국민들의 조문도 금지되었습니다. 국장을 거부하는 네윈 군사정부에 항의하며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그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던 시절에 유엔 사무국에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유엔으로 온 버마인 미혼여성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아웅산 수치입니다. 유엔 사무국 비서로 3년을 일했습니다. 그녀가 당시 영국의 가난한 청년 마이클 에어리스가 보낸 청혼의 편지에 이런 답장을 보냈습니다. “저와 조국 사이를 가로막지 말아 주세요.” 이 귀절로 미루어보아 우 탄트와 수치가 미국 한복판에서 얼마나 조국의 내일을 걱정했나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으로 돌아가 평범한 주부로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얼마 전 저는 미얀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이 암살 직전까지 살았던 자택을 찾아갔습니다. 지금은 아웅산뮤지엄입니다. 영국 지배 60년, 일본 지배 3년. 그 험난한 시대를 두 나라와 싸우며 독립의 기틀을 마련한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하지만 독립을 눈앞에 두고 1947년 정적의 손에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아웅산 장군을 ‘독립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거리 이름도, 화폐에도, 대형쇼핑몰도 그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의 외동딸이 바로 수치입니다. 아들이 둘 있습니다. 불교도인 수치여사는 어릴 적 기독교인이었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아웅산 장군이 생전에 살던 집은 이층집으로, 침실과 식탁과 낡은 책들과 일상용품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층의 침실에는 세 아이의 작은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고, 아이들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인근에 있는 아웅산 국립묘역에는, 많은 국민들이 찾아와 그를 기립니다. 하지만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이 묘역은 최근 30년 만에 국민들에게 개방을 했습니다. 우리 한국 국민에게나 미얀마 국민에게나 깊은 상처를 준 현장입니다. 묘역 입구에는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가 있습니다. 입구 석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추모비는 한국과 미얀마의 우정과 화합을 상징하며, 평화와 상생의 길을 열어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현대사를 연표로 보면 우리와 닮은 데가 많은 미얀마입니다. 강점기, 독립시기, 군부쿠데타 등. 하지만 아웅산에서 우 탄트로, 우 탄트에서 수치로 이어진 평화와 민주화의 소망은 아직도 이 나라에선 계속 진행 중입니다.
정선교 Mecc 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고아를 위한 NGO Mecc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