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초특급 연구대학 설립을 꿈꿨다. 사진은 서예를 즐기며 ‘겸허’ 두 글자를 쓰고 있는 이병철 회장. 연합뉴스
그해 월간 <한국인> 10월호에 ‘기업경영의 지주는 인재양성’이란 글을 쓴 호암은 삼성은 30년 전부터 인재양성을 통해서 생산성 향상을 실현해 왔다며 “노벨상 수준을 목표로 하는 초특급의 연구대학을 설립하자는 것이 나의 구상”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기고 이전과 이후 모두 ‘초특급의 연구대학’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재양성에 대한 그의 강인한 의지와 넉넉한 재력을 감안하면 분명히 추진됐어야 하는데, 1987년 별세할 때까지 구상은 드러나지 않았다.
호암의 꿈은 지난 8월 14일 별세한 장남 이맹희 CJ 명예회장이 1993년 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언급돼 있다. 이맹희 명예회장에 대해서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만 부각돼 있지만, 그는 그해 이 책과 경제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함께 발간했다. <묻어둔 이야기>가 자신의 유년시절 성장과정과 삼성 재직 당시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삼성과 결별 내용을 담은 데 반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경제상황과 현실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맹희 명예회장은 아버지 호암이 언급한 ‘초특급의 연구대학’, 가칭 ‘호암학원’ 구상을 자세히 소개했다. 장학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던 호암이 ‘호암학원’을 만들고 싶어 했다는 것.
호암은 기업이 자신의 조직에 필요한 인재를 잘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 기업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혹은 다른 기업에서도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호암은 삼성그룹 임원들이 정부의 관리로 나가게 되거나 혹은 다른 기업의 높은 자리로 가게 되면 흔쾌히 보내줬다.
고 이맹희 회장은 회고록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이병철 회장이 구상했던 ‘호암학원’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부자가 생각했던 ‘호암학원’은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의숙과 미국의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 과정을 본받아 우리 실정에 맞게 고친 것으로 한국판 ‘전문 인력 양성소’였다. 이 가운데에서도 마쓰시타 정경의숙을 벤치마킹을 했다. 마쓰시타 정경의숙은 일본 마쓰시타 그룹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21세기를 이끌어갈 인재양성’을 표방하며 1979년 거액의 사재를 털어 만든 특수 대학원이다. 이곳의 졸업생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일본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로 자리 잡고 있다. 호암은 99%를 먹여살릴 수 있는 1%의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기관을 한국에서 만들자는 것이었다.
호암과 이 명예회장이 생각한 ‘호암학원’의 운영방안은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우선 선발 대상은 대학 졸업생이다. 이들이 일단 시험에 합격해 입학하면 매달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지급한다. 교과 과정은 2년제와 4년제 두 종류로 경제학과나 정치학과 혹은 공대 분야를 우선 선발한다. 4년제의 경우 1년간 해외 연수가 포함돼 있다.
교과 과정은 외국어 중심으로 짰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씩 외국어 연수에 할당했다. 이 학원 졸업생들은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는 필수적으로 해야 하고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등에서 선택적으로 하나 정도 더 마스터해야 하며 국가와 기업의 장래를 대비해 적어도 인구가 1억 명 이상 되는 나라의 언어는 추가로 익혀야 한다는 것이 호암의 주장이었다. 강의는 국내외 유명 교수들이나 삼성의 중역진에 맡긴다. 이들에게서 경제 이론이나 현실을 직접 교육받는다.
호암은 수차례에 걸쳐 장남에게 “한 달에 몇십억 원이 소요될 거다. 그러나 교수들에게 강의료를 많이 주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들이 양질의 강의를 위해서 연구활동을 하면 그 연구 결과는 바로 기술 개발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생산성에 큰 도움을 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훌륭한 강의를 하게 되고 또 결국은 기술 개발의 밑거름이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기업으로서도 아주 훌륭한 투자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또 호암은 “입학생들을 뽑을 때 말미에 ‘졸업 후 몇 년간 삼성에 근무해야 한다’는 식의 조항은 넣지 않아야 한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잘 가르쳐 두면 그 사람들은 어디에 가 있든 영원히 삼성을 못 잊을 것이고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걸 꼭 삼성에 입사해야 한다고 못을 박는 것은 졸장부가 하는 짓이다. 그런 것은 작은 기업에서 하는 일이고, 적어도 재벌 기업가라면 그런 졸장부 짓은 안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이런 제도는 필요하고 꼭 있어야 한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낮은 시절에 일본인들은 마쓰시타 정경의숙을 만들었다. 미래의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인재 양성이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요즘 정규 교육구조가 하도 엉성해서 하는 말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연구기관을 하나 만들자고 했던 것도 바로 우리나라의 교육기관, 특히 기업에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이 어설펐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호암은 이를 실천하지 못했다. 크고 작은 국가적 사태와 교육계의 반발 등 외부 변수 때문에 시기를 맞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호암학원’에 대해 장남과 논의했던 것이 호암이 쉽게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한 또 다른 이유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호암은 생전 ‘호암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 적이 없다. 대신 이맹희 명예회장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자신이 추진했다고 이야기했다. ‘호암학원’은 호암이 아닌 이맹희 명예회장의 것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것이다. 부자간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 중 하나다.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