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는 수익률 등락폭이 크고, 가격 결정 변수가 워낙 다양한 탓에 그 어느 투자처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요신문 DB
원자재 투자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향후 달러화 가치의 추세를 가늠하는 일이다. 국제 상품 시장에서 거의 모든 원자재가 미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 값에 따라 원자재 가격도 달라진다. 원유 수요가 아무리 증가한다 해도 달러 가치가 더 크게 오르면 원유 값은 떨어진다. 반대로 원유가 넘쳐난다 해도 달러 가치가 더 떨어지면 유가는 오른다. 달러 가치의 추세를 알아야 원자재 가치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
글로벌 달러 가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통화정책이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고 달러를 사들이면 달러 가치는 오르고, 반대로 금리를 낮추고 채권을 사들여 달러를 풀면 달러 가치는 떨어진다.
그렇다면 연준의 정책 기조는 어떤가. 현재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을 공언한 상태다. 미 연준은 지난해 10월 3차 양적완화를 종료한 데 이어 올해 중에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연준은 이미 2009년 초저금리제도를 시행하면서 2015년에는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면서 지금은 그야말로 ‘슈퍼 달러’ 시대다. 달러는 지난해 4분기부터 대부분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년간 900원대 진입을 시도하던 원·달러 환율도 순식간에 1100원대로 올랐고, 지난 1년 새 100원 이상 상승했다. 엔·달러 환율은 역대 최고 수준인 120엔대로 치솟았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이 벌이고 있는 양적완화도 달러 가치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달러 가치는 앞으로도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올 들어 이어지고 있는 원자재 가격 약세도 달러화 강세의 흐름 속에 있다. 금은 지난 1월 말 온스당 1300달러에 육박했던 것이 9월 들어서는 1115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은은 15% 가량 떨어졌다. 금·은 가격에 연동된 상장지수펀드(ETF)와 원자재펀드 대부분 손실을 봤다. 유가도 WTI의 경우 지난해 6월 106달러였던 것이 현재는 45달러대로 폭락했다. 더욱이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한편 앞으로 6~8년에 걸쳐 양적완화로 풀어낸 달러를 회수한다는 계획이라 원자재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2010년 연준이 무차별적으로 달러를 푼 탓에 아이언플레이션·애그플레이션·피쉬플레이션과 같은 신조어가 생겨났던 것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원자재 투자에서 두 번째 고려사항은 주요 원자재 생산국의 경기다. 생산국 경기는 중국 등 공업국가들의 경기와 더불어 원자재 수요를 직접적으로 판단하는 가늠자가 된다.
세 번째로 ‘원자재 고갈론’의 대두 시점을 원자재 투자 여부의 잣대로 삼을 수 있다. 상품 시장에서는 원자재 고갈론을 일컬어 ‘모멘텀 확보의 재료’라고 부른다. 물론 화석연료는 유한하기 때문에 언젠가 고갈된다. 그러나 당장 내일 바닥나지는 않는다.
최근처럼 원자재 값이 떨어지는 시기에 제기되는 고갈론은 가격 상승을 위한 모멘텀의 재료로 통용된다. 골드만삭스는 올봄, 앞으로 20년 안에 모든 금과 다이아몬드·아연·니켈이 고갈될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고, 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브루나이 같은 산유국들은 석유 고갈에 대비해 신규 산업을 육성한다는 발표도 내놨다. 심지어 석유를 대체해 원전을 들이는 나라도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국 에너지정보관리청(EIA)은 세계의 석유부존량은 지난 2013년 1조 6459억 배럴을 돌파하며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원자재 고갈론과 반대되는 내용의 분석 결과를 내놨다. 원자재 고갈론 역시 특정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이야기다.
달러나 수급 여건보다 원자재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상품 구조에 따른 ‘이월 충격’이 그것.
일반적으로 원자재 관련 펀드에 투자하다 보면 원자재 값이 오름에도 펀드는 손해를 보거나 펀드 수익률이 원자재 가격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원자재가 선물 투자로 이뤄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이다.
원자재는 대부분 부피가 크기 때문에 운송과 보관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실물을 거래하려면 바다 건너 원유가 올 때까지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데다 원유를 보관할 수 있는 대규모 창고와 보안 시설이 필요하다. 때문에 상품 딜러들은 실물 인도를 중간 경로 없이 하기로 하고 미래에 받을 가격만 거래한다. 또 거래 편의를 위해 가격과 해당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판다.
이 같은 선물 구조 탓에 펀드 상품의 이월 충격이 발생한다. 적립식 펀드의 경우 매달 새로운 투자금이 유입되고 운용사는 이를 상품 투자에 쓴다. 그런데 유가가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이 오를 경우 원월물(만기가 멀리 떨어져 있는 선물) 값이 근월물(만기가 가까이 있는 선물) 값보다 비싸진다. 이 경우 펀드는 매달 들어오는 투자금으로 선물 만기 때마다 이미 가격이 오른 선물을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떨어진다. 원자재 펀드는 이 같은 이월충격을 고질적으로 안고 있으며, 특히 바닥론이 나오는 때일수록 손해를 볼 확률이 크다. 다만 원월물 값이 비싸다는 것은 글로벌 유가가 장기적으로 좋다는 뜻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큰 이익을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가 펀드의 구조를 이해하고 환헤지 문제까지 해결하기에는 원자재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위험한 투자처다.
김서광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