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지난 97년 12월26일 대통령직인수위원 회 직원들이 사무실에 김대중 당선자의 사진을 걸고 있다. | ||
이번 16대 대통령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처럼 적재적소에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재풀을 풀가동하게 된다. 통치권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조직에 대한 개편작업도 함께 추진한다.
대통령 당선자는 중앙선관위로부터 당선증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대통령직에 취임하는 내년 2월25일까지 당선자 신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실상의 대통령으로서 막강한 권한과 힘을 발휘하게 된다. 21세기 첫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전까지 추진해 나갈 과제들을 집중 분석했다.
지난 97년 12월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다음날인 19일 오전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제의한다. 김 당선자는 국회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한 교류와 협력을 위해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특사교환을 재개하고 필요하다면 북한 김정일 총비서와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공식 제의한다”고 밝혔다.
DJ의 이 같은 제안은 긴급뉴스로 전세계로 타전됐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신선한 반응과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DJ정부의 대표적 정책인 ‘햇볕정책’이 이미 당선 첫날 언론에 공개된 셈이었다. 이번 대통령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통상적으로 당선자는 첫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비전을 제시하고 임기 내 추진할 핵심 사안들을 제안한다.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전격적인 카드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청와대를 영빈관 또는 공원화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할 수도 있다.
당선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구성을 통해 정권이양 전반에 대한 준비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인수위는 대개 정무 행정 경제 외교국방 사회 등 20여 개 분야로 나뉘어 현 정권과 차기정권의 교량역할을 하게 된다. 인수위원장은 국정경험이 있고 정치인으로서 존경받는 차기정권의 핵심인사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
▲ 2002년… 지난 3일 합동토론에 나선 각 당 대통령 후보들. | ||
한나라당은 지난 11월부터 실무팀을 비밀리에 구성하고 기본플랜을 짜왔다. 인사위원장직은 물론 차기 내각명단까지 마련해놨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은 후보단일화 과정으로 인해 구체적인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집권당이라는 이점을 잘 살린다면 차기정권을 출발시키는 데 별 무리가 없다는 게 노 후보측 관계자의 전언이다.
인수위에 어떤 인물들이 포함되느냐에 따라 첫 내각의 진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당선자의 핵심측근들이 인수위에 들어가고 이들 중 다수가 각료로 임명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이회창 후보는 선거기간 동안 차기정권에 대한 기본구상을 발표하면서 원내 현역의원들의 입각을 배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3권분립 정신에 맞게 현역의원을 행정부 각료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의사였다. 대신 외부전문가들을 중용하겠다고 밝혔다.
인재풀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노무현 후보의 경우도 각료인선을 위해서는 외부수혈이 필요한 상태다. 따라서 차기정권의 첫 내각은 당선자측 핵심실세와 정치인 출신이 아닌 외부전문가들이 골고루 분포된 모양새를 띨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선자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조직개편에도 착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98년 1월 신년연휴를 마친 김대중 당선자는 청와대와 행정부 조직개편이라는 정국구상을 내놓고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한 바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무능력이 개혁을 좌초시켰다는 명분으로 조직부터 확 바꾸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번 당선자도 국정원과 일부 행정부에 대한 개편과 지방으로의 이전, 대통령친인척 비리수사 전담기구 설치 등의 개혁프로그램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선자는 국정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선거 와중에 터져나온 북한 핵문제와 반미감정으로 인한 한미관계 정상화에 신경을 쏟을 전망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제 조건이 북한 미사일 및 핵개발 문제 타결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악화된 한미관계의 원상회복도 당선자가 풀어야 문제다. 물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도 당선자의 몫이기도 하다. 선거기간 동안 이회창 후보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한 것이나 노무현 후보가 미국 부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당선자는 경제•사회분야에 대한 강력한 개혁정책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적절하게 투입됐는지, 회수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에 대해 사법기관의 수사까지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대화합차원에서 특별사면이나 복권도 점쳐진다. 지난 97년 김대중 당선자는 당선 직후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복권을 추진했다. 한보사태로 인해 구속됐던 권노갑 홍인길 두 정치인에 대한 석방도 모색됐다. 이회창, 노무현 두 후보도 화합차원에서 이 같은 일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DJ 차남 김홍업씨가 구속돼 있고, 3남 홍걸씨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당선자는 헌법개정에 대한 장기적이고 기본적인 구상도 취임 전에 제시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미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한 역기능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헌법을 고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무현 후보는 2004년 국회에 개헌안을 발의하고 2008년부터 실행하자는 구체적인 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번 당선자는 당권•대권 분리를 통해 각 당의 후보로 선출됐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따라서 당선자는 당과의 관계설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충고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