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1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하기로 했다. 주주환원 정책인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의 지배구조 강화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우면서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을 맡은 지도 1년 6개월가량이 지났다. ‘갤럭시S6’ 시리즈도 출시했고, ‘삼성페이’도 선보였고, 급락하던 실적도 안정시켰다. 하지만 아직 이 부회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는 이 회장에 비해 높지 않다. 이번 주주환원 정책 발표는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는 평가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이 회장은 주주들에게 ‘성장’이라는 보상을 했는데, 이 부회장은 (주주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는 물음도 커졌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최근 50%선이 위협받을 정도로 낮아진 것은 그 반증이다. 이번에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가 ‘분배’라는 보상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실 자사주는 소각하면 전체 주주에 유리하지만, 보유하면 대주주에 더 유리하다. 삼성전자는 이미 1800만 주의 자사주를 보유 중이다. 발행주식의 무려 12.21%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이 자사주를 향후 지주회사 전환이나, 최대주주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할 것으로 관측해왔다. 실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은 자사주를 우호세력인 KCC에 매각, 합병 승인 주총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문제는 그동안 자사주가 지배구조 강화에 사용될 경우 의결권이 살아나 발행주식 감소에 따른 주가견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는 데 있다. 반면 자사주 소각은 자본금과 발행주식 수를 줄여 남은 주식들의 가치를 높이고, 자기자본수익률(ROE) 같은 경영지표도 개선시킨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아마 이번에도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만하고 소각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주가부양 의지에 대한 의심과 함께 회사 돈으로 산 자사주를 대주주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자사주를 소각해도 지배구조에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사주 매입·소각 후 삼성전자의 발행주식 대비 자사주 보유비율은 12.4%로 소폭 늘어난다. 아울러 발행주식 수 감소에 따라 배당이 확대되면 이 회장 등 최대주주 일가의 배당수입도 더 늘어난다. 이 부회장이 지배하는 삼성물산의 기업가치에도 도움이 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최대주주다.
삼성전자 측은 향후에도 배당을 하고 남는 돈은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고 자사주를 활용한 지배구조 개편을 접겠다는 뜻은 아닌 듯하다. 다른 계열사의 사례를 보면 그렇다. 얼마 전 삼성화재는 5320억 원을 투입해 자사주 166만 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소각이 아니라 ‘매입만’이다. 매입이 완료되면 삼성화재 자사주는 발행주식 수의 12.42%에서 15.93%로 늘어난다.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율(14.98%)을 넘어서게 된다.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이 15%에 다다른 데는 삼성화재가 지난해 6월 보유 중이던 자기주식 189만 주를 4936억 원에 삼성생명으로 넘긴 게 결정적이었다. 당시 삼성화재의 자사주 매각 이유는 ‘경영안정성 및 주주가치 제고’다. 경영권 안정에 자사주를 활용하는 사실은 인정한 셈이다. 지난해 삼성생명에 매각한 가격은 주당 26만 1000원인데, 이번에 매입할 가격은 주당 32만 500원이다. 대주주에 싸게 팔았던 주식을 시장에서 비싸게 다시 사는 것이다.
삼성화재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제일기획도 보유 중이던 자사주 전체인 1150만 주를 2200억 원에 삼성전자에 매각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제일기획 지분율이 12.6%로 최대주주인 삼성물산(12.64%)과 비슷해졌다. 이 역시 자사주를 통해 지배구조를 변화시킨 사례다. 제일기획 역시 삼성전자에 자사주를 팔 때 가격은 주당 1만 9200원이다. 제일기획은 삼성전자에 자사주를 매각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1599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이때 주당 평균매입가격은 2만 3174원이다. 삼성화재와 마찬가지로 싸게 팔고, 비싸게 산 결과가 됐다.
종합하면 자사주는 앞으로도 삼성의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뜻이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기로 했지만, 소각을 할수록 이미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의 발행주식 내 비중도 높아지게 된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17.64%지만, 자사주를 포함한 내부 지분율은 29.84%에 달한다. 이번에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완료되면 내부 지분율은 30%를 넘을 수 있다.
우선주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그룹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우선주 보유물량은 6만 1382주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우선주 자사주 보유비율은 발행주식의 14.14%다. 이번 자사주 매입·소각이 완료되면 발행주식이 줄어 그 비율이 14.96%로 높아진다.
우선주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상법 435조에 의거, 정관변경으로 종류주식(우선주 등) 주주들에게 손해를 미치게 될 때는 종류주주 주주들로 별도의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종류주주총회 가결정족수는 주총 특별결의 조건(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 주총 참석주주의 3분의 2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결국 우선주를 소각하면 향후 있을지 모를 종류주주총회에서 유리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발표한 자사주 매입·소각액은 총 11조 3000억 원이다. 1차로 내년 1월까지 4조 2000억 원이 집행된다. 7조 1000억 원의 추가 매입과 소각까지 완료되면 주주환원 효과와 함께 발행주식 대비 기보유 자사주의 비율도 높아지는 부수효과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연간 잉여현금흐름(FCF)의 30~50%를 배당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과거 실적으로 추정하면 연간 최소 7조 원, 최대 13조 원이다. 최대치로 단순 계산하면 주당 최대 8만 6163원이다. 현재 보통주 주가 132만 원으로 따지면 연간 약 6.5%, 우선주로 따지면 연간 약 7.99%다. 절반가량인 7조 원으로 계산하면 주당 4만 6395원이다. 현재 보통주 주가 기준 연간 3.5%, 우선주 주가로는 4.3%다.
현재의 저금리 상황에서 이만한 기대수익률을 가진 금융상품은 보기 드물다. 여기에 글로벌 기업이자 대한민국 간판기업이 삼성전자라는 안정성을 감안하면 투자매력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전자의 발표는 지배구조 강화에도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겠지만, 무엇보다 이재용 체제에서 주주들의 지지를 얻고자 애쓴 노력이 역력하다. 삼성전자가 지금보다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투자매력이 상당히 높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