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성철 국민통합21 정책위의장과 임채정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장 등 양당 정책조율팀이 지난 12일 정책 합의 문에 서명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1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9층 통합21 당사에서는 여느때처럼 상근 당직자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단일화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민창기씨가 정 대표에게 조속히 노 후보와의 선거공조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탈당 의사를 밝히자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정 대표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선거공조 문제를 협의해온 조남풍 안보위원장은 “공인으로서 이럴 순 없다”고 정 대표를 거들었지만 민 위원장은 입을 다문 채 탈당의사를 철회하지 않았다. 정 대표는 더 이상 민 위원장을 설득하지 않고 전성철 정책위의장에게 “민 위원장 탈당과 관련해 (당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민 위원장은 회의 직후 기자실에 내려와 탈당에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간담회를 갖고 1시간여에 걸쳐 강도높게 정 대표를 비난했다. 민 위원장은 “탈당의사를 밝히자마자 정 대표가 전성철 의장에게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고 픽 돌더라”며 선거공조와 당 운영과 관련한 정 대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민 위원장은 우선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 정 대표의 지시로 정 대표의 보좌관 출신인 이달희 비서실장이 속기사까지 배석시켜 놓고 조사를 벌인데 대해 분개했다. 민 위원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대표가 불신한다는 거다. 그때 탈당하려고도 했다”며 차분하게 말했으나 나중에는 “보좌관하던 놈이 2, 3선 국회의원, 방송 30년 한 사람을 취재했으니”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 의원은 단일화 협상에 관계했던 김민석 전 의원을, 방송인은 민 위원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선거공조와 관련, 민 위원장은 “(정 대표가) 매일 매일 정책공조니 자구 수정해오라고 하루하루 시간을 끌었다”며 “아닌 말로 도와주려면 화끈하게 해야지. 왜 공조를 안하나”고 지적했다.
정 대표의 당 운영과 관련해서도 “나도 작은 기업을 하지만 보스는 나만 잘났다고 해선 안된다. 나보다 못한 사람 얘기도 들어야 한다” “(최근 정 대표 핵심측근이 누구냐는 질문에) 조남풍도 ‘석양의 탱고’된 지 3~4일 됐다. 정 대표 주변에 누가 앉아있는지 보면 된다. 어제 보니까 한 바퀴 다 돌았더라” “(정 대표는 사람) 써 보고서 강아지처럼 뛴단 말야, 그 다음에 용도 폐기하는 거지 그러고 나면 눈을 안 맞춰” 등과 같은 원색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구사했다.
민 위원장의 탈당과 정 대표 비판 발언은 즉각 언론에 보도됐고 정 대표 진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정 대표가 즉각 선거공조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박범진, 이철 전 의원 등이 추가 탈당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면서 당 분위기는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12일 오전 11시 홍윤오 대변인은 ‘대선공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문건을 발표했다. 8개 항으로 이뤄진 이 문건의 요지는 2가지. 7항의 “민주당이 정부운영의 공조를 위한 양당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후보 단일화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유감스럽다”는 것과 8항의 “조율된 정책의 책임있는 실행을 위한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민주당에 전달해왔고 우리는 이에 대한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요약하면 정책 조율도 끝났으니 이를 공동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국정공동운영에 필요한 청사진을 민주당이 조속히 제시하라는 것이다.
▲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대표가 13일 대전에서 첫 합동유세 를 펼쳤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또 홍 대변인이 발표할 즈음에는 조남풍 위원장 등 당 수뇌부들과 모여 앉아 “오늘쯤 노 후보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루만 더 버텨 보자” “오늘 지나면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바로 이즈음 13일의 합의를 가능케했던 ‘운명적인 한 통의 전화’가 통합21의 한 당직자 휴대폰으로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노무현 후보였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간 양당 협상과정에서 공식적 역할은 거의 하지 않았던 최욱철 전 의원이었다. 11시37분 최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건 노 후보는 “지난 93년 보선 때 내가 최 전 의원을 돕지 않았나. 나는 약속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 대표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최 전 의원은 93년 강릉 보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상대가 김영삼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인 신한국당 김명윤 전 의원이어서 당에서조차 포기를 했으나 노 후보가 선대위원장을 맡아 7박8일간 강릉에 머물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해왔다.
전화를 끊은 최 전 의원은 정 대표의 의중을 정확히 몰라 임삼 전 의원 등에게 상의를 한 뒤 정 대표에게 보고를 했다. 정 대표는 즉각 전화를 걸 것을 지시했고 최 전 의원이 노 후보에게 전화를 하자 노 후보 수행비서는 “지금 막 연단에 올라가 연결이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12시에 약속이 있어 당사를 나서야 했던 만큼 지금 전화 연결이 안되면 또 언제 연결이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급했던 최 전 의원은 “정 대표 전화니 노 후보에게 메모라도 전달해달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불과 2~3분이 지났을까. 11시57분 최 전 의원의 휴대폰 벨이 울렸고 노 후보와 정 대표간의 통화가 이뤄졌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노 후보와 정 대표가 13일 회동하기 전까지 양당간에 국정 공동운영과 관련, 완벽한 합의나 밀약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양당간에는 민주당 임채정-통합21 전성철 정책위의장의 정책조율 라인과 별도로 국정 공동운영 문제를 논의하는 라인이 가동됐고 통합21측에서는 최운지 전 의원이 통로였다.
최 전 의원은 13일 합의를 앞두고 4~5일간 통합21 당직자 회의 직전 거의 예외없이 정 대표와 독대를 했다. 민 위원장이 탈당하면서 조남풍 위원장이 ‘석양의 탱고’로 밀려났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 대표 부친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의 연으로 정 대표를 돕게 된 최 전 의원은 김원기 고문, 한광옥 전 대표, 김상현 의원등 민주당 원로 중진 정치인들과 교분이 있고 실제로 김 고문 등과 논의를 해왔다.
김 고문이 노 후보 주변 인사 중에서는 정 대표의 요구에 적극 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 전 의원과 김 고문 간에는 국정 공동운영에 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민창기 위원장의 탈당 간담회를 돌이켜보자. 민 위원장은 국정 공동운영 협상과 관련 “내가 보기엔 다 끝났는데 요식절차 때문에 깨졌다”고 말했다. 내용상 합의는 이미 13일 노 후보와 정 대표의 합의문에 나온 것으로 추정이 가능한데 요식절차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민주당측의 기류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김원기 고문을 포함, 노 후보의 측근 대부분은 정 대표의 국정 공동운영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노 후보에게 건의해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다소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지만 노 후보 주요 지지계층인 젊은층의 투표율 등을 감안하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정 대표의 막판 지원 유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그러나 노 후보는 국정 공동운영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문서화하는 것은 97년 DJP연대처럼 ‘권력 나눠먹기’로 비칠 수 있다면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반면 정 대표측으로서는 최소한의 보장 각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97년 당시 김종필 총재는 당소속 국회의원이 50여 명에 달하는 데다 지역기반도 단단해 합의가 파기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반격할 정치적 토대가 있지만 정 대표는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노 후보와 정 대표는 더 이상 선거공조를 늦추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고 결국 양자의 재회동과 합의문 발표가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 과연 양자간의 국정 공동운영과 관련된 합의가 13일 합의문 수준에 그치는 것일까. 또다른 밀약은 없었을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은 김원기-최운지 라인의 물밑협상 과정에서 이미 총리 지명이나 상당수 각료 지명과 관련, 노 후보측의 양해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 13일 정 대표와 노 후보간 재회동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 협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