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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길 법무장관의 복귀에 대해 한나라당은 ‘보 복경질설’을 제기했다. 반면 그동안 검찰의 편파 수사를 비난해온 민주당은 변화를 기대하고 있 다. 사진은 지난 99년 김정길 장관의 이임식 장면. | ||
대선기획단 회의가 곧바로 열렸다. 정형근 이재오 권철현 김문수 의원 등 내로라하는 전략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이번 개각의 핵심을 법무장관 경질이라고 쉽게 결론내렸다. 그리고 그 경질을 보복경질이라고 주장했다.
한 회의 참석자는 “말 안듣는 송 장관을 말 잘듣는 김 장관으로 바꿨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고 전했다. 대선기획단은 곧바로 신임 김정길 법무장관과 이명재 검찰총장의 관계설정, 장관의 검찰 장악력 정도, 향후 각종 정치적 사건 수사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같은 시각 민주당에서는 검찰의 편파수사에 대한 대책논의가 한창이었다. 송정호 장관이 이명재 총장과 손발을 맞춰 홍업씨 수사를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는 것. 민주당은 이미 검찰을 ‘이회창 검찰’이라고 이름 붙인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 송정호 장관이 김정길 장관으로 교체되자 곳곳에서 편파수사가 어느 정도 시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흘러나왔다.
조금 있다가 이명재 검찰총장이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는 급보가 정치권에 날아들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즉각 진의 파악에 나서는 한편 이 총장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두 시간 뒤 청와대는 이 총장의 사표를 반려했고, 이 총장이 사의를 철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나라당에는 안도의 한숨이, 민주당에서는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개각 당일 검찰 내부도 술렁거렸다. 며칠 전 전직 검찰총수인 신승남 전 총장과 검찰의 맏형 김대웅 고검장을 불구속기소한 데다 청와대가 대통령 아들비리 수사와 관련해 송정호 장관에 압력을 넣었다는 설이 언론에 보도된 상태여서 검찰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송 장관이 김정길 장관으로 교체되고 이명재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서초동 검찰타운에는 김정길-이명재 체제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어두운 관측이 지배했다.
개각이 있던 11일 정치권과 검찰의 움직임은 이처럼 미묘하게 돌아갔다. 대선을 5개월여 앞둔 현재 한나라당과 검찰, 청와대와 검찰, 민주당과 검찰의 관계가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올 초부터 검찰이 청와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김태정 신승남 임휘윤 김대웅 등 검찰 내 호남인맥이 정리되고 TK 출신의 이명재 검찰총장이 들어선 이후 오히려 검찰이 친 한나라당 성향을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 두 아들 수사와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에 대한 수사에서 이명재 총장는 과감하게 일을 처리했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한화갑 대표는 공개석상에서 “검찰이 한나라당의 시녀”라는 말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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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재 검찰총장 | ||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홍업씨가 돈을 아파트 베란다에 뒀다는 것은 수사내용이나 공소유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 검찰은 그것을 발표했다. 홍업씨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하고 국민 감정을 촉발시키기 위한 고도의 수법이다. 검찰의 비이성적인 행동을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홍업씨 사건에 대해 검찰이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들을 언론에 교묘하게 흘려 민심을 자극하는 것을 보면 ‘이회창 검찰’의 현 정권에 대한 계획적인 흠집내기가 아닌지 의심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이명재 총장을 감쌌다. 남경필 대변인은 이명재 총장의 사표가 반려된 것에 대해 “권력비리 수사가 한참 진행되는 마당에 이명재 총장의 사퇴는 안될 일”이라면서 “이 총장은 임기 동안 본인에게 주어진 검찰중립화의 임무를 완수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논평했다. 남 대변인은 또 “청와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밝혀낸 이 총장에 국민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검찰수사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격인 민주당이 편파수사라고 몰아붙이고, 야당격인 한나라당이 검찰총장을 감싸는 현실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또 과거 정권 때와는 백팔십도 달라진 현상이다. 특히 일부 친 한나라당 성향의 정치검사들이 수사 정보를 한나라당에 흘리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길 법무장관의 복귀로 상황은 다시 달라졌다. 청와대가 99년∼2001년 재임했던 김 장관을 다시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검찰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와 민주당 내부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검찰을 너무 일찍 놓아버렸다”는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는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지난해 신승남 대검 차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하는 수 없이 김정길 장관을 송정호 장관으로 바꿨다. 신승남 총장과 김정길 장관이 둘 다 목포 출신이기 때문.
그런데 신 총장이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 낙마하고 검찰인사에 대한 비판여론이 극에 달하자 청와대는 경북 출신으로 신망이 두터운 이명재 변호사를 총장에 임명했다. 결과적으로 전혀 원하지 않았던 송정호 장관-이명재 총장 체제를 출범시킨 꼴이 돼 버렸다.
한나라당 대선기획단은 김정길 장관이 검찰조직 장악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검사 출신으로 검찰 내부의 사정에 밝은 최연희 의원은 공개회의석상에서 “김정길 장관은 재임중 언론세무사찰,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신승남 대검 차장 탄핵소추발의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사건에서 정권에 충성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김 장관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의원은 “대통령 두 아들 비리사건과 관련된 여론몰이식 수사, 이회창 봐주기식 수사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면서 “검찰 내부의 친 한나라당 성향 검사를 솎아내는 것이 김 장관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회창 봐주기식 수사에 대해 “최규선씨의 20만달러 수수설과 장남의 병역기록 조작 등 여러 가지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앞으로 대선 때까지 엄청난 외압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나라당은 국회 법사위에서 송정호 전 장관의 보복경질설을 따지기 위해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증인으로 채택할 방침이다.
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에 대한 각종 의혹사건 수사를 촉구하면서 검찰을 압박할 태세. 대선을 5개월여 앞두고 검찰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권의 전쟁이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