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생이니 올해로 52세. ‘애마부인’ 안소영이 벌써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극단 생활을 하던 그녀는 스무 살에 영화에 출연한다. 첫 작품은 의외로 무협 영화인 <무림대협>(1979). 이후 임권택 감독의 <내일 또 내일>(1979)에 출연한 그녀의 시작은 에로티시즘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1982년에 <애마부인>과 <산딸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애마부인>이 탄생하게 된 비화는 조금 엉뚱하다. 정인엽 감독은 1970년대에 미국으로 연수를 갔는데 그때 뉴욕 뒷골목의 아트하우스에서 틴토 브라스의 <칼리귤라>를 보며 충격을 받은 뒤 한국에도 제대로 된 에로티시즘 영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귀국 후 그의 프로젝트가 바로 <애마부인>. 마침 등장한 군부 정권의 ‘3S 정책’ 속에서 한국영화 최초의 심야 영화로 기록되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애마부인>의 노출 정도는 심하게 말하면 시시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토록 ‘야한 영화’처럼 전해 내려오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위험한 욕망’ 때문이다. 안소영이라는 배우가 지닌 서구적이면서도 그윽한 이미지는 매우 복합적인 이미지로 그 ‘필’을 전한다. 안타깝게 당시 아무도 그녀의 ‘연기력’ 따위는 평가하려 하지 않았고 오로지 ‘36인치’라는 당대로선 파격적인 가슴 사이즈에만 관심 있었다. 그렇지만 남편을 교도소에 보내고 억누르며 살아야 했던 중년 여성의 욕정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안소영의 눈빛엔 화끈한 노출 없이도 관객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녀는 거부하는 듯 받아들이고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에 스스로를 다잡는다. 욕망에 충실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을 얽매고 있는 과거 앞에서 눈물 흘리고 결국 가정으로 돌아가는가 싶었지만 스스로의 길을 찾아 떠나려는 여인. 의외로 <애마부인>은 ‘자립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며 그 중심에 안소영이 있었다.
이대근과 공연한 <합궁>(1988) 이후 1990년대에 박광수 감독의 <그섬에 가고 싶다>(199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로 ‘에로’ 이미지를 벗은 그녀는 현재 배우 활동을 거의 접은 상태. 이따금씩 신작 소식이 들려오지만 극장에서 그녀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한때 ‘안소영 콜렉션’이라는 의상실을 경영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미국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던 그녀는 2005년에 귀국해 모바일 화보와 트로트 가수 등 활로를 모색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지난해 어느 TV 아침 프로그램에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는 모습이 살짝 공개되기도 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