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맹형규, 홍준표, 이재오 의원(왼쪽부터). | ||
현재 ‘민심 레이스’에서는 맹형규 홍준표 의원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맹-홍’ 양자 구도에 새로운 ‘변수’가 떠오르고 있다. 최근 공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이재오 의원이 1위(30%)를 차지하며 다크호스로 떠올랐기 때문.
이 조사는 한나라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내의 ‘여론’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의원은 “지금까지 ‘지상전’을 통해 당원들의 표심 잡기에 주력했던 것이 효력을 나타내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 의원이 그동안 굳어진 양자구도를 깨고 새로운 변수로 떠올라 한나라당 경선 레이스에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줄지 진단해봤다.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선정은 무조건 경선이다. 지금 당의 후보들이 열이 올라 경쟁하고 있는데 외부 인사를 덜컥 데려와 찍으라고 한다면 아무도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할 사람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이회창 전 총재가 있을 때는 그 사람들의 의중이 어느 정도 통했으나 지금은 누구를 점찍을 만큼 위상이 막강한 보스가 없다. 또한 거론되는 인사들도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백지상태에서 후보를 뽑아야 한다. 역대 가장 치열한 경쟁이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 한 고위 당직자의 말이다. 이 당직자는 경선 후유증을 걱정할 정도로 현재의 서울시장 후보 쟁탈전이 너무 과열돼 있다고 본다. 이런 상태에서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고 싶어도 그 분위기에 눌려 자유롭게 추진할 수 없다. 한나라당 김형오 인재영입위원장도 그런 사실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최근 “지금과 같은 (당내)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 해도 당에 들어올 생각이 없을 것이다”면서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도 외부 인사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놔야 한다. 경선에 출마하려는 당사자들로서는 당연히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 자리를 빼앗긴다’거나 ‘당이 어려울 땐 관심도 없던 사람이 이제 와 줄을 서려고 한다’는 등 부정적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주자들이 후보 쟁탈전에 목숨을 거는 까닭은 현재 당 지지도가 40%를 웃돌고 있어서 예선만 통과하면 본선에서는 쉽게 승리할 수 있다는 ‘낙관론’ 때문이다. 여당의 지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고 청계천 효과 등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가 호의적인 것도 이들의 구미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서울시장에 당선만 되면 단박에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큰 꿈을 꾸는 정치인에게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서울시장 후보 경쟁의 초반 레이스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호도 1, 2위를 다투고 있는 맹형규 홍준표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길리서치가 지난 12월2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시민들을 상대로 ‘한나라당 후보 중 서울시장 적임자’를 묻는 질문에서 홍준표 의원이 20.9%의 지지로 1위를 기록했고, 17.1%의 지지를 받은 맹형규 의원이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이 시장의 시정계승 적임자’ 질문에서도 홍준표 의원(20.9%)이 1위, 그 뒤를 맹형규 의원(16.0%)이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12월6일 리서치앤리서치(R&R) 조사에서는 맹 의원이 1위(21.6%)에 올랐다. 홍 의원은 21.2%를 얻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맹-홍’ 의원이 오차 범위 내에서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2월30일 한국 갤럽이 발표한 서울시장 선호도 조사에선 지금까지의 여론조사와는 판이한 결과가 나와 향후 후보 쟁탈전 판세에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12월27~28일 양일간 한나라당 당원 5백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95% 신뢰 수준에 ±4.4%)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장 적임자’로 이재오 의원(30.0%)이 1위에 올라 주변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맹형규 의원이 22.8%의 지지를 얻어 2위를 차지했고, 홍준표 의원(16.0%), 박진 의원(11.5%), 박계동 의원(2.9%)이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이재오 맹형규 홍준표 의원 간의 3자 대결에서도 이 의원이 33.9%로 1위를, 맹형규 의원(28.9%)과 홍준표 의원(16.0%)이 2, 3위를 각각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전문가 A교수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지금까지 발표된 서울시장 선호도 여론조사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당원들의 의사를 총체적으로 묻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무응답층이 40~50%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선호도 조사로서는 미흡한 점도 있다”고 밝혔다.
A교수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최근 확정한 광역단체장 후보 선정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당원대표자협의회에서 확정된 기준에 따르면 당 광역단체장 후보는 ▲전당대회 출석 대의원 20% ▲당원선거인단 30% ▲일반국민선거인단 30%의 투표와 여론조사(20%)로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쟁점이 되었던 ‘국민 선거인단’은 당원선거인단 추첨에서 탈락한 당원을 배제한 순수 비당원으로 규정했다. 처음에는 박근혜 대표측이 선거인단에 참여할 당원과 국민의 비율을 80 대 20으로 규정했다가 소장파 등의 반발 때문에 양쪽 비율을 50 대 50으로 재조정한 것이 최종안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는 국민들의 직접적인 의사를 더 높이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혁신안의 후보 선정 기준만 보면 맹형규 홍준표 의원 등 기존의 일반국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선두그룹을 형성했던 주자들이 호조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의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초선의원은 “아직 어떤 후보를 지지할지 정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 “이번 후보 선정 기준에서 국민선거인단이 후보들의 당락을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기존 당원선거인단은 어차피 조직표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에 변수가 많지 않다. 국민선거인단의 경우 각 후보들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지지자들을 투표에 대거 참여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준 당원’의 성격을 띨 경우 국민들보다 당원들의 뜻에 의해 후보가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서울시장 후보 선정 기준에서 국민의 뜻이 50% 반영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국민선거인단 선정 때 ‘준 당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다면 당원들의 뜻이 80% 가까이 작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당내 탄탄한 조직을 확보하고 있는 후보가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재오 의원이 ‘맹-홍’ 양강 구도에서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은 “나는 지금까지 계속 한나라당 당원들을 밑바닥에서부터 접촉하며 표밭을 다져왔다. 다른 주자들이 언론을 통해 홍보전을 강화하며 ‘공중전’을 펼칠 때 조용히 ‘지상전’을 해왔다. 그래서 여론 조사에서도 대중성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후보 선정에서 큰 역할을 할 당원들의 지지는 내가 가장 많이 받을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쟁탈전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는 또한 “앞으로 박계동 의원과 단일화를 이루어낸 뒤 최종적으로는 홍준표 의원과도 단일 후보 도출에 합의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이 의원의 급부상에 홍 의원측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이 열심히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와 일단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당심이 민심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본다. 지난 대선도 민심과 당심의 괴리 때문에 실패했던 것 아닌가. 경선이란 민심의 뜻을 받들어 당심으로 확정짓는 것이다. 현재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맹 의원측 관계자는 “축하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로서도 이 의원이 부상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 의원은 홍 의원과 같은 ‘발전연’ 소속으로 지지 기반이 겹치고, 같은 강북에다가 영남표도 분열돼 두 사람의 전력이 동반 하락할 것으로 본다. 우리로서는 3파전이 더 쉬운 싸움이 될 것 같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결국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각축전은 최근 이재오 의원의 급부상으로 인해 더 뜨겁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