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증권 인수로 금융재벌로 부상한 미래에셋과 인터넷은행을 통해 은행업에 진출한 한국투자금융의 대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두 그룹을 이끄는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은 한때 동원증권에서 한솥밥을 먹는 등 인연이 깊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왼쪽), 김남구 한국투자금융 부회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미래에셋의 대우증권 인수는 우리나라 증권업 역사에서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다. 박현주 회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모펀드로 금융그룹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증권사 브로커로 시작해 자산운용업, 증권업, 보험업에 진출해 오늘의 미래에셋그룹을 일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펀드 열풍이 사그라지고 미래에셋은 성장고민에 빠졌다. 대우증권 인수는 정체에 빠진 미래에셋을 송두리째 바꿀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미래에셋은 대우증권을 인수해 미래에셋증권과 합병할 예정이다. 합병법인은 자산 62.6조 원, 자기자본 7.9조 원의 초대형 증권사가 된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돼 온 대우·삼성·우리투자(현 NH투자)의 ‘빅3’ 시대를 접고 ‘미래+대우’의 독주체제가 열리는 셈이다. 리테일 부문에서 강점을 지닌 대우증권과 자산관리 부문에 특화된 미래에셋이 결합하면 국내외 WM(자산관리)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국내 증권사 수익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트레이딩(회사자산을 주식 자산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부문)이다. 대우증권은 이 부문에서 업계 최고를 자랑한다. 자기자본과 자산 규모가 큰 데다 수익률도 좋기 때문이다. 올 3분기까지 순이익 2800억 원 가운데 2300억 원이 이 부문에서 나왔다. 주식위탁매매 부문도 강한 편이다. 3분기까지 매출 4000억여 원에 750억 원 넘는 순익을 거뒀다.
반면 미래에셋의 트레이딩과 위탁매매 부문 순이익은 474억 원, 382억 원에 불과하다. 대신 펀드 등 금융상품 판매에 강점이 있다. 3분기까지 매출 3000억여 원에 무려 600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우증권의 트레이딩 부문의 인력 및 시스템 경쟁력은 탁월하다”면서 “미래에셋의 자산까지 대우증권 인력이 운용한다면 수익 규모가 상당히 불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투자은행 분야에서는 큰 딜을 수행할수록 이익 규모도 늘어나는 게 보통인데,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위험감당 능력 즉 덩치가 커야 한다”며 “사상 최대 규모의 증권사가 탄생하는 만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업 참여 기회가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록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미래에셋에 패했지만, 한국금융이 새롭게 진출한 인터넷은행은 향후 성장 잠재력이 무한한 시장으로 꼽힌다. 이른바 금융과 IT(정보기술)가 결합한 ‘핀테크’ 시장에서 결제 및 여·수신 기능을 갖춘 인터넷 은행은 ‘꽃 중의 꽃’이다.
한국금융의 카카오뱅크 지분율은 50%에 달한다. 카카오 간판을 내걸었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한국금융인 셈이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는 이른바 재벌이 단독 경영권을 행사할 정도의 소유권을 가진 곳이 없다. 이 때문에 카카오뱅크 선정 당시 인터넷이란 ‘연막’에 가려 금산분리 원칙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카카오뱅크의 1대 주주인 한국금융 김주원 사장은 사업자로 선정된 직후 “인터넷은행을 통해 증권에서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사로 거듭날 것이다”고 전한 바 있다. 이미 한국금융은 여신전문업과 보험업을 제외한 금융 전 분야를 영위하고 있다. 이런 한국금융이 대우증권까지 가져갔다면 그야말로 여의도를 ‘싹쓸이’할 뻔했다. 하지만 아쉽게 미래에셋에 대우증권을 내주면서 인터넷은행에 주력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래에셋과 한국금융의 대결은 총수 간 대결이기도 하다. 동원그룹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과 자수성가형 총수인 박현주 부회장은 모두 전남 출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1986년부터 10년여 동안 동원증권에서 함께 근무했고, 1996년 박 회장이 독립하면서 경쟁관계가 됐다. 미래에셋은 이후 펀드열풍을 일으키며 몸집이 커진다. 하지만 동원증권은 주로 주식위탁매매 부문에 집중하는 회사여서 직접적인 경쟁은 치열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하면서 두 사람을 펀드와 자산관리 시장에서 정면대결을 벌이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이었던 점도 닮았다.
아직까지는 무승부다. 펀드시장에서는 미래에셋의 외형이 크다. 종합자산관리시장과 전체 외형 면에서는 한국금융이 다소 우위라는 평가여서 막상막하다. 하지만 대우증권을 포함하면 당장은 미래에셋이 한국금융을 앞서게 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여의도 증권가는 뚜렷한 주인 없는 은행계열과, 기존 재벌계열로 크게 양분됐지만 모두 은행이나 모기업에 비해 덩치가 작아 공격적인 경영보다는 기존 먹거리에 집중했다”면서 “하지만 총수가 직접 이끄는 금융전문그룹이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만큼 업계 지형을 크게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최열희 언론인
미래에셋, 대우증권 인수자금 마련 어떻게? 알짜 계열사 동원 가능성 일단 미래에셋이 미리 마련한 돈은 미래에셋증권의 유상증자 대금 9500억 원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익잉여금이 1조 3500억 원에 달하고 현금성 자산이 5000억 원 이상이라고 설명하지만 지난 3분기 말 기준 부채총계가 24조 5362억 원에 달해 이 잉여금과 현금성 자산은 정상적인 영업활동과 고객들의 요구불 인출을 위해 상시 준비해야 하는 계정이다. 함부로 빼 쓸 수 없는 돈이란 뜻이다. 결국 나머지 약 1조 5000억 원을 외부에서 빌리거나 계열사가 감당해야 한다. 미래에셋증권이 돈을 빌리기는 쉽지 않다. 지난 3분기 말 부채비율이 988%로 600~700%대인 다른 대형 증권사들에 비해 다소 높다. 최근 유상증자로 740%대까지 낮아지겠지만 추가차입을 할 경우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현재 미래에셋증권 대주주는 미래에셋캐피탈(38.02%)이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경영권 지분 43%를 2조 4000억 원대에 매입해 합병하면 미래에셋캐피탈의 합병법인(미래에셋증권+대우증권) 보유 지분율은 14.5%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미래에셋캐피탈이 직접 대우증권 지분을 인수하는 데 참가하는 게 유리하다. 문제는 미래에셋캐피탈 역시 자금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2011년 발행한 전환우선주를 2016년에 되사들여야 한다. 380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또 현재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개정이 진행 중인데, 캐피탈사가 대주주 또는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이 발행한 증권을 자기자본의 100% 내에서만 보유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미래에셋캐피탈은 자기자본 5903억 원을 초과하는 6210억 원어치의 계열사 지분은 팔거나 이만큼의 자본을 유상증자 등으로 확충해야 한다. 외부차입 없이 그룹 내부 현금을 동원하는 방법도 가능할 수는 있다. 지배구조를 약간 건드리면 된다. 현재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이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캐피탈을 통해 미래에셋증권을, 그리고 캐피탈과 증권이 함께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지배하는 구조다. 알짜 계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다른 계열사와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유동자산만 5000억여 원에 달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대우증권 인수에 직접 참가하거나, 박 회장이 미래에셋캐피탈 지분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넘겨 그 자금으로 간접 참여할 수 있다. 지배구조 형태에는 변화가 있지만, 박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그대로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