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이 그룹 지주사 격인 금호산업을 되찾아 그룹 재건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사진은 금호 아시아나 건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 지주사 격인 금호산업을 되찾았다. 박 회장은 지난 12월 29일 금호산업 채권단에 인수대금 7228억 원을 모두 납입하며,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부터 경영권 지분(50%+1주)을 인수하게 됐다. 지난 2009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개시 이후 6년 만이다.
이로써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회장 일가-금호기업(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연결되는 지배구조를 구축하며 그룹 재건을 위한 큰 틀을 마련하게 됐다.
이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남은 과제는 금호타이어와 금호고속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지난 2012년 금호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IBK-케이스톤파트너스 사모펀드에 넘어가는 신세로 전락한 그룹의 ‘모태’ 금호고속은 지난해 6월 금호터미널이 지분 100%를 4150억 원에 매입하면서 그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금호산업 매입 자금이 필요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3개월 만인 지난해 9월 금호고속을 3900억 원에 칸서스HKB사모펀드에 다시 팔았다. 이번에도 2년 3개월 안에 주식을 되살 권리(콜옵션)를 조건으로 붙였다.
금호타이어 역시 지난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지분 42.1%가 채권단에 넘어갔다. 마찬가지로 박 회장 측은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
오는 2016년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창립 70주년이어서 금호산업 인수는 박 회장에게 더욱 의미가 깊다. 박 회장 역시 “그동안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지켜본 많은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현 상황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지난 2009년 워크아웃에 몰렸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2009년 당시 금호그룹은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무리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해 결국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
2년 뒤 금호고속 인수도 관심이 모아진다.
오너인 박 회장과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인수를 위해 투입한 자금은 금호타이어 등 보유지분을 매각해 확보한 1500여억 원에 불과하다. 훗날 금융비용과 투자자 수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그룹 재건을 위해 인수한 금호산업을 비롯해 워크아웃 혹은 자율협약이 종결됐다고 밝힌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등 그룹 대부분의 계열사 역시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 그룹의 주력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014년 12월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종결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5000억 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최근 저유가 호재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항공은 2015년 3분기 매출액 1조 3300억 원을 기록, 2014년 같은 기간 1조 4500억 원보다 8.2%나 줄었다. 영업이익 역시 312억 원에 그쳐 2014년 같은 기간보다 37%나 감소했다. 부채비율은 997%에 육박한다.
이번에 인수한 금호산업의 경우 2015년 신규 수주가 2조 5000억 원을 돌파하고, 공공 수주도 1조 1000억 원을 달성하는 등 나쁘지 않은 성과를 기록했다. 이에 3분기 매출은 3868억 원, 영업이익은 58억 원을 냈다. 하지만 영업이익 58억 원은 2014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3.9% 감소한 액수다. 또한 3분기까지 당기순손실은 499억 원에 이른다. 높은 금융비용이 문제로 지적된다.
금호타이어 역시 최근 사정이 좋지 않다. 2014년 12월 5년 만에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금호타이어는 2015년 1분기와 2분기까지만 해도 각각 440억 원과 55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그룹의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하지만 3분기 들어서 영업손실 60억 원으로 적자 전환하며 맥없이 추락했다. 워크아웃 돌입 직전인 2009년 4분기 이후 첫 적자다.
이는 글로벌 타이어업계 침체와 극심한 노사 대립이 얽힌 데 따른 결과다. 노조는 전면파업을,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극한 대결을 펼치며 임단협을 타결짓지 못하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막대한 금융비용과 부채가 남아있는 재무상태 때문에 지난 2009년 당시와 비교해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가 드리우는 게 아니냐는 걱정 어린 전망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2년 후 금호고속을 되찾아 오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는데도 다시금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금호산업 인수는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재무상황을 보고 판단해 승인을 내린 것”이라며 “경영상 위기에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룹 창립 70주년을 맞는 2016년을 ‘비상경영’의 해로 선포하고, 그룹 체질개선 작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우선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2월 30일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노선구조조정, 조직슬림화, 항공기 업그레이드 등 내용이 담긴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이러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손익 개선 효과가 16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몇 차례 구조조정으로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 다시금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면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한 구조조정은 아시아나항공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은 중장거리 노선을 주로 다루다보니 LCC(저비용항공사)와 경쟁하는 부분이 많아 수익면에서 타격을 받고 있다. 이에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금호산업 인수로 박 회장은 워크아웃으로 해체된 기업의 오너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통해 그룹을 되찾은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하지만 재계 한 관계자는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국민혈세가 투입돼 되살아난 기업이 이미 한 차례 실패한 총수에게 다시 돌아가는 첫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