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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업씨 소유의 서초가든스위트 아파트는 23층 꼭대기에 있는 83평형으로 흔히 ‘펜트하우스’로 알려진 곳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검찰은 홍업씨를 지난 7월10일 기소하면서 그의 재산도 같이 공개했다. 그중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시세가 비싼 아파트로 소문난 삼성 서초가든스위트 83평형에 관한 것이었다.
부동산 등기부에는 홍업씨가 이 아파트를 지난 2001년 2월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 이아무개씨(56)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등기부상 아파트 소유권 공유자는 홍업씨와 부인 신아무개씨 두 사람.
홍업씨측은 이 아파트를 14억원에 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태재단 부이사장 월급 이외에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던 그가 어떻게 십수억원대의 호화 아파트를 ‘단번에’ 구입할 수 있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김씨의 변호인인 유제인 변호사는 지난 7월10일 기자간담회에서 아파트 매입자금에 대한 해명을 했다. 하지만 이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아 아파트 매입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홍업씨 아파트 매입자금의 비밀을 추적해봤다.
검찰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드러난’ 김홍업씨의 재산은 현금 10억원, 예금 8억원, 채권 15억원, 채무 3억원, 부동산 15억5천만원을 합쳐 모두 45억5천만원이다. 이중 문제가 불거진 것은 홍업씨 부동산에 관한 것.
홍업씨측은 홍업씨의 부동산 중 삼성 서초가든스위트 83평형 구입 자금에 대해 “홍은동에 있던 아파트 매매금 3억5천만원과 은행대출금 3억원, 보관했던 돈 7억원 등을 합쳐 서초동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해명했었다.
그런데 이 해명에서 사실과 다른 대목이 발견된다. ‘홍은동 아파트 매매대금 3억5천만원으로 삼성 서초가든스위트를 구입하는 데 보탰다’고 하는 부분이다.
홍업씨는 지난 95년부터 줄곧 서대문구 홍은동 P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부동산 등기부에는 이 아파트가 올해 1월25일 손아래 동서 홍아무개씨에게 매각된 것으로 기재돼 있다. 홍업씨가 홍은동 아파트를 홍씨에게 팔고 그 집에 다시 전세로 살고 있는 것(<일요신문> 제526호 6월16일자 보도).
당시 유제인 변호사는 “홍업씨는 올해 초 홍은동 집을 3억5천만원에 매매했다. 매매 배경에 대해선 잘 모른다. 아마 개인의 경제사정 때문에 판 것이 아니겠느냐”고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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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21일 김홍업씨가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다음으로 짚어봐야 할 부분은 홍은동 아파트 매매대금 규모. 홍업씨측은 홍은동 아파트 매매대금이 3억5천만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매매대금으로 실제 오간 돈은 1억5천만원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홍은동 아파트 매매와 관련해 유제인 변호사가 “홍업씨는 3억5천만원에 아파트를 팔았다. 그런데 전세로 계속 살기 위해 전세금 2억원을 안고 1억5천만원만 홍씨로부터 받았다고 한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업씨가 홍은동 아파트를 팔고 실제로 손에 쥐었던 돈은 1억5천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이마저도 올해 1월에 손아래 동서 홍아무개씨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지난해 매매한 삼성 서초가든스위트 매입자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홍업씨측이 서초가든스위트 매입자금의 일부로 제시한 홍은동 아파트 매각대금 3억5천만원은 14억원을 짜맞추기 위한 ‘허수’일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그렇다면 ‘홍업씨가 왜 서초가든스위트 매입자금을 솔직하게 밝히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의 ‘출처를 알 수 없는 3억5천만원’은 새로운 의혹의 불씨가 되고 있다. 삼성 서초가든스위트를 ‘삼성’ 관계자로부터 시가보다 훨씬 싸게 샀거나 아니면 또 다른 ‘비밀자금’으로 이 아파트를 구입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홍업씨측 유제인 변호사는 삼성 서초가든스위트 매입 배경에 대해서 “외국인 임대 등을 통해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 해명에 대해서도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생활의 방편으로 삼기에는 가든스위트 아파트는 너무 호화로웠기 때문.
더욱이 홍업씨가 이 아파트를 구입할 당시인 2001년 2월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그해 2월 말까지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끝내겠다며 개혁의 마지막 피치를 올리던 때였다. 또한 이때는 국민들이 칼날 같던 구조조정의 바람을 견디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의 아들로서 부적절한 처신 때문에 사법처리를 받게 된 김홍업씨. 그가 뒤늦게나마 국민들에게 속죄하는 길은 지금이라도 서민들이 품고 있는 의혹들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