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는 법인세를 덜 거두고 간접세 비중을 늘려 서민들의 유리지갑은 더 얇아졌다. 일요신문 DB
국제유가가 1년 6개월 사이 20달러대까지 떨어졌지만 국내 휘발유·경유가는 변동 폭이 크지 않다. 전체 기름값의 51.9~60.5%를 차지하는 유류세 때문이다. 지난 11일 사단법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정부가 거둔 유류세(휘발유·경유) 수입은 21조 7200억 원으로 추정됐다. 유류세는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부과되는 간접세다.
지난해 정부는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면서 간접세 비중을 늘렸다. 최저시급 5580원을 받았던 근로자가 4500원짜리 담배를 사면 1080원이 남았던 셈이다. 지난 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5년 담뱃값 인상에 따른 효과’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정부가 거둔 담뱃값 세수는 약 10조 6000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4년 약 7조 원 대비 3조 5000억 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결과적으로 간접세 증대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반면 기업이 납부한 세금은 박근혜 정부 들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국세청의 ‘국세통계 자료(2015)’에 따르면 2013년 대비 2014년 법인세 납부 총액은 2.7%가 감소했다.
같은 자료 중 ‘법인사업자 조사 실적’을 보면 수입 1000억 원 이상 기업에게 부과한 법인세는 하락세가 뚜렷했다. 2013년 1120개 기업에 4조 9781억여 원을 과세한 국세청은 2014년 1261곳의 법인에 4조 7221억여 원의 법인세를 부과했다. 조사한 기업은 100곳 넘게 늘었지만 세입은 거꾸로 줄었다.
기업이 고용을 확대하면 세수가 증대된다. 각 근로소득자로부터 원천징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근로자의 소비를 통해 정부는 추가 세수 확보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청년층 ‘고용 한파’는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2%를 기록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기업과 국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정부는 중심을 찾지 못한 모습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법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가 늘었지만 과세에 불복한 심판청구도 함께 늘고 있다. 국세청의 ‘법인사업자 조사 실적’을 보면세무조사는 2013년과 2014년 각각 5128건, 5443건이 이뤄졌다. 같은 기간 수입 5000억 원 초과 법인의 신고 소득금액은 86조 2338억여 원에서 137조 7778억여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법인이 신고한 수입만 50조 원 넘게 증가한 것이다. 반면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은 3조 4078억여 원으로 전년 세입(3조 2791억여 원) 대비 증가액은 1287억여 원에 불과했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정부의 ‘관용’은 조세심판원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과세에 불복한 기업(또는 개인)이 국무조정실 산하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접수한 건수는 2011년 6313건, 2012년 6424건, 2013년 7314건, 2014년 8750건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정부가 기업(또는 개인)의 주장을 받아들인 인용 건수는 2011년 1435건에서 2014년 1905건(재조사 포함)으로 증가했다.
특히 국세청은 500억 원 이상 1000억 원 미만의 심판청구에서 줄줄이 패했다. 30건의 심판 중 20건을 졌다. 최소 액수로 잡아도 1조 원 이상의 세금에 대한 환급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지난 한 해 국세청이 지급한 ‘불복환급금’은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대기업은 조세심판원에서 청구가 기각될 경우 소송을 통해 세금을 돌려받는다. 최근 LG전자, 기아자동차, 현대엔지니어링, 효성, 롯데쇼핑 등 대기업 10곳은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국세청이 이른바 ‘지급보증수수료’에 대한 법인세를 부과하자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부가 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앤장, 율촌 등 이른바 대형 로펌은 대기업의 세금 소송을 전담하고 있다. 법정 밖에선 삼일회계법인 등 대형 회계법인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 세무당국은 한정된 예산 탓에 변호인단 구성에 애를 먹는다. 지방세 소송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하다. 소송의 주체인 지방자치단체가 대형 로펌을 선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방세 소송 가운데 가장 큰 규모(1700억 원)의 세금이 걸린 ‘OCI 적격분할 소송’은 이르면 2월 2심 선고가 내려진다. 앞서 1심은 ‘피고’ 인천시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신교훈 인천시 세무지도팀장은 지난 22일 “일반 개인 납세자의 불복 인용률은 10%대지만 대기업은 훨씬 높다”며 “세무공무원이 실력이 없어서 무리한 과세를 했다기보다는 (기업과 로펌이) 법을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해석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기업의 조세저항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세계적인 IT기업 애플 역시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법인세 회피로 비난받았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벨기에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양도소득을 실현한 바 있다. 한국 국세청은 이에 대해 세금을 물렸지만 론스타는 소송을 제기해 2심까지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판결이 확정되면 론스타는 한국 정부로부터 1770억 원을 돌려받게 된다.
국내 대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낮은 조세부담을 위해 해외 곳곳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왔다. 페이퍼컴퍼니 중에는 현지 투자를 위한 SPC(특수목적법인)도 있지만 특정 기업인의 비자금 창구 또한 적지 않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일일이 다 세금을 거둘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해명했다. 지난 2012년 국세청은 한 해운회사가 설립한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세금을 물렸지만 2심까지 연달아 패소하며 체면을 구겼다.
지난해 이맘때쯤 많은 직장인들은 연말정산 과정에서 소위 ‘13월의 세금폭탄’을 맞았다. 같은 해 담뱃세에 이어 주류세 또한 일부 오르면서 서민의 유리지갑은 더욱 얇아졌다. 그 사이 세금을 줄이기 위한 대기업과 일부 부유층의 조세저항은 더욱 심해졌다. 대안으로 법인세 비율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세율을 잘못 매기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한 공인회계사는 지난 21일 “납세가 전체 형평성에 맞게끔 돼야 하는데 영세한 분들은 납세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많이 벌고 많이 내면 좋은데 경기가 안 좋아서 벌이는 적고 세금은 그대로라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