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대제 장관(왼쪽)과 김문수 의원. | ||
하지만 대학 입학 이후 두 사람의 인생 여정은 크게 달랐다. 김 의원은 제적과 복학을 거듭하다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진 장관은 세계적인 반도체 전문가로 성장했다. 이후 김 의원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는 동안 진 장관은 삼성전자 사장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에 올랐다.
이처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다시 같은 출발점에 섰다. 정가의 일반적인 예측대로라면 5·31 지방선거에서 여야의 경기지사 후보로 맞붙게 된 것이다. 이미 출마를 공식 선언한 김 의원은 당내 경선을 앞두고 있지만 각종 여론조사 지지도에서 다른 후보감들을 압도하고 있어 후보 선정이 유력한 상황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진 장관도 여당 후보로 예약된 상태나 다름없다. 지난 2일 단행된 ‘차출 개각’ 대상에 포함돼 이미 후임 장관이 발표됐다.
김 의원과 진 장관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너무나 분명하다. 먼저 본적지를 보면 둘 모두 경상도의 시골 마을이다. 김 의원은 경북 영천이고 진 장관은 경북 의령이다. 이들 두 ‘시골 천재’는 지방 명문이던 경북중학교에서 만난다. 3년 내내 선두권에서 경쟁을 벌였던 두 사람의 우정은 여기서 싹이 튼다.
반은 달랐다. 3학년 때 김 의원이 2반이고 진 장관이 6반이었다. 고등학교 선택도 같지 않았다. 김 의원이 지방 명문이던 경북고를 선택한 반면 진 장관은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경기고로 진학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1970년 서울대였다. 김 의원은 상대, 진 장관은 공대에 나란히 합격했다. 김 의원은 “공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어렵게 연락이 닿아 당시 공대가 있던 공릉동 캠퍼스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학창시절도 이후의 사회생활도 완전히 달랐다. 김 의원은 교련반대 시위를 벌이다 이듬해 10월 제적됐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야학을 하다가 복학하지만 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다시 제적된다. 김 의원이 졸업장을 받은 것은 20년이 지난 1994년의 일이었다.
명문대 졸업장과 안정된 직장을 포기한 김 의원은 1975년 3월 청계천 피복공장 재단보조공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한일도루코 초대 노조위원장과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을 맡았고 민중당에서 핵심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문민정부의 개혁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신한국당에 입당한다.
반면 진 장관은 197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83년 스탠퍼드대 박사가 됐다. 이후 휴렛팩커드(HP)와 IBM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1985년 10월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 수석연구원으로 삼성과 인연을 맺는다. 2년 만에 이사로 진급한 진 장관은 상무(92년), 전무(93년), 부사장(96년)을 거쳐 2000년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에 올랐고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제9대 정보통신부 장관에 발탁된다.
▲ 진대제 장관(왼쪽)과 김문수 의원의 중학교 졸업 앨범 사진. | ||
살아온 길이 달랐지만 국회의원과 삼성전자 임원으로 만났을 때 두 사람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진 장관은 기꺼이 김 의원의 후원자가 돼 주었고 김 의원도 진 장관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지난 2003년 11월 진 장관이 장남의 국적 포기에 따른 병역기피 의혹으로 사퇴 압력을 받았을 때 한나라당 내 반발을 무마시킨 사람이 바로 김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당시 “외국인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공직에 앉혀야 하고 아들의 국적 문제는 유학생활로 인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료 의원들을 설득했다. 김 의원은 “내가 국회의원이 되고 진 장관이 삼성전자 임원이 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며 “서로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진 장관도 출마 선언을 앞두고 김 의원과의 관계를 고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 장관의 한 측근은 “경기지사보다는 서울시장에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경기지사는 당선 가능성을 떠나서 김 의원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부담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진 장관 본인도 김 의원과의 친분을 숨기지 않는다. 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아프리카 해외순방을 수행하던 중 ‘김문수 의원과 어떤 관계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경북중 동기이며 매우 잘 아는 친구 사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출마지역이 경기도인가, 서울인가’라는 질문에 “아직은 불확실성이 있다”고 대답해 고민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김 의원도 진 장관의 경기지사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 의원은 “진 장관이 원하는 것은 서울시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기지사로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핵심 참모는 “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에 입당했을 때 당 지도부는 오정구에 출마하라고 권유했지만 당시 김 의원은 신한국당에 불리한 소사구를 선택했다”며 “오정구에서 나가면 민주화운동 동지인 원혜영 의원과 맞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그만큼 ‘의리’를 중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은 진 장관의 경기도지사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방선거가 쉽지 않은 열린우리당이 진 장관의 결단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국이 두 사람의 격돌을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빅게임을 앞두면 ‘팬’들은 항상 ‘피’를 원하는 법. 두 사람의 40년 우정이 선거라는 소용돌이를 어떤 모습으로 통과할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