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국현 총감독(왼쪽)이 기자에게 찌르기(팡트)를 가르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쉽게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이번 체험은 단순히 몸으로 대충 버텨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빠른 이해력과 두뇌 회전까지 요구하는 듯했다. 펜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체험 전날 나름대로 이론만이라도 무장하고 갔지만 기본자세만 비슷하게 잡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몸 따로 맘 따로’였다. ‘될 때까지’라는 혹독한 훈련의 컨셉트에 걸맞게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자세는 마치 로봇처럼 반복만 하다 지칠 대로 지치고 만 ‘냉정한 체험’이었다. 생애 최초의 일일 펜싱 선수 체험기, 그 현장을 소개한다.
펜싱 훈련장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필(feel)’이 꽂힌 건 그나마 신체조건이 비슷(?)하다는 동질감 같은 것이었다. 그 동안 키가 월등히 크거나 근육질이거나 힘이 장사인 선수들만 상대하면서 상당히 위축되었는데 이번에는 ‘잘만 하면 폼 나겠다’는 당돌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아테네올림픽에는 남자 플러레, 여자 에페 등 단체전과 남녀 사브르, 여자 플러레, 남자 에페 등 개인전에 걸쳐 모두 12명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김국현 총감독은 메달 전망에 대해 “3분의 2가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고…. 앞선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다음 대회에 잘 한다는 보장이 없는 게 스포츠 아니겠는가. 예상이라면 전 선수가 메달을 따는 것이라고 하자”며 포괄적이면서도 욕심 가득한 전망을 내놓았다.
우선 제자리 뛰기로 선수들과 첫 훈련을 시작했다. 빠른 순발력과 민첩성을 요구하는 선수들에게는 기본적인 훈련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비슷한 스피드로 따라하는 듯했지만 10여 분 이상 반복되자 기자의 두 다리는 이내 슬로비디오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고성까지 지르라는 김 감독의 요구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선수들이 일제히 “와~” “아~”하는 함성을 내질렀다. 잔발 뛰기 훈련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고성 지르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모두 환한 표정으로 마치 뮤지컬 배우가 발성 연습하는 듯한 생기발랄한 모습이었다는 사실.
이런 기초체력 훈련이 끝나면 선수마다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전문 체력 훈련이 이어지고 전술 및 기술 훈련, 실전 훈련으로 강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날은 전날 용미리 공동묘지에서 밤늦게까지 진행된 담력 훈련으로 인해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컨디션 조절에 초점이 맞춰 진행됐다. 선수들과 기자와는 기량 차이가 너무 커 먼저 김국현 총감독이 일일 사부로 나섰다.
▲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 ||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김 감독의 표정을 뒤로하고 펜싱의 기본자세(가르드)를 익혔다. 다리를 벌리고 구부리고 칼끝은 포인트를 정해 향하고 어깨높이를 조절하고 뒷 손목은 마치 학처럼 약간 구부리고…. 자세 하나에만 신경 쓸 게 십여 가지가 될 정도로 어려웠다. 김 감독은 “최소한 일주일 이상 이 자세만 연습해도 제대로 익히기 어렵다”며 한 단계 높은 찌르기(팡트) 시범을 보였다.
팡트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앞 팔을 힘 있게 뻗고 손은 어깨 높이만큼 올리고 앞발을 발바닥이 지면을 스치듯하면서 힘차게 뻗으며 뒷다리를 강하게 펴 주는 동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사항은 발동작 전에 항상 팔을 먼저 펴줘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기자의 팔과 다리는 자꾸 따로 노는 바람에 김 감독으로부터 많은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오른쪽 무릎을 굽힌 동작에서 자세 교정을 받자 허벅지(대퇴근) 부분에 상당한 통증과 함께 온몸으로 퍼지는 떨림을 수차례 경험해야만 했다. 목표를 제대로 찌르지 못해 팔에도 힘을 주다 보니 어깨 통증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허벅지 압박은 이동하기(데쁠라스망) 동작에서 빛을 발했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앞뒤로 움직이기만 해도 체중을 버티기 힘들어하는 허벅지는 ‘부르르’ 떠는 전율로 답을 대신했다.
시합은 도저히 무리였다. 대신 마무리 훈련에서 앞선 부진을 조금 만회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칼끝을 손가락에 세우고 중심을 잡는 평형 훈련과 마주 보는 선수가 등 뒤로 펜싱 장갑을 던져주면 돌아서서 받는 순발력에서 평균 정도는 되었던 것. 하지만 ‘피스트’라고 불리는 펜싱 코트(너비 1.5~2m, 길이 14m)를 두 선수가 마주 보며 빠른 동작으로 전진했다 후진하는 과정에서는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말았다. 일반인들이 그냥 달릴 때 나오는 속도를 선수들은 무릎을 굽힌 자세에서 왕복으로 반복할 수 있었던 것.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신체 조건에서는 불리하지만 빠른 두뇌회전과 상상을 초월하는 연습량으로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며 메달 전망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