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C에서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팔리로스포츠센터 앞에서 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경기장 입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숫자가 정말 엄청났거든요. ‘바글바글’ 그 자체였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테네에만 태권도 도장이 40여 개나 퍼져 있고 그리스 전역을 합치면 5백 군데가 넘게 태권도 도장이 운영되고 있다고 하네요. 한 마디로 그리스인들의 태권도 열기가 장난 아니었던 거죠. 전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히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경기장 안의 분위기는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각국의 응원단들이 자국 선수들의 경기에는 목이 터져라 열렬히 응원하다가도 우리나라 선수만 출전하면 한국 응원단 이외의 모든 다른 나라의 응원단들은 하나가 돼 상대 선수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거예요. 한 마디로 우리나라 선수만 지길 바라는 그런 응원이었습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장지원(태권도 여자57kg급)이 미국 선수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딸 때는 저랑 신영일 선배는 펄쩍펄쩍 뛰며 감격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종목보다도 양궁이나 태권도 선수들은 심적 부담이 무척 클 것 같아요. 두 종목의 경우 우리나라 선수들이 상위권을 꽉 잡고 있어 메달을 따면 그저 본전치기인 셈이니까요.
▲ 태권도 장지원 선수의 시합장면(왼쪽),역도 은메달 장미란 선수의 모습. 아테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
아무리 영화나 음악이 현대인들의 정신을 정화시켜주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해도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바로 스포츠를 통해서만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메달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기 뒤에 서로 웃으면서 악수할 수 있는 게 바로 이곳 올림픽 현장, 스포츠 무대이더군요.
이 글을 독자 여러분이 읽을 때쯤이면 전 아마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을 겁니다. 올림픽 방송을 맡아 ‘심하게’ 일만 하다 떠나는 아테네가 시원섭섭한 기억으로 남을 거예요. 올림픽을 통해 국민들에게 웃음과 울음을 선사한 선수 여러분들 정말 수고하셨구요, 그들의 희로애락을 뒤쫓은 방송단, 기자단 여러분들도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그 모든 분들에게 수고했다는 격려의 박수 한번 쳐 줘야 하지 않을까요?
K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