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위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 씨는 자신의 조건과 이번 선거에 나서려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서 씨는 자녀의 보육 문제로 구립 어린이집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미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서 씨는 선거 콘셉트를 ‘홍제동 똑순이’로 정하고 주요 공약으로 ‘아이 키우기 편한 홍제동 만들기’로 정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지방의원의 유급화가 시행되면서 이번 지방선거를 무대로 정치에 데뷔하려는 지망생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지방의원이라는 ‘명예’ 이외에 ‘직업’으로서도 매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서울시의원의 경우 연봉이 6804만 원으로 대기업 못지않다.
지방선거 경쟁률이 치열해지면서 덩달아 호황을 누리는 곳이 정치 컨설팅산업이다. 정치에 뜻은 있었지만 방법을 몰라 나서기가 쉽지 않았던 정치 지망생에게 정치 컨설턴트는 구세주가 아닐 수 없다.
컨설턴트는 우선 심층 면접을 통해 지망자의 자질과 가능성을 검증한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조건에 맞는 선거 전략을 세워준다. 후보자의 이미지 작업, 지역구 상황 판단, 공약과 이슈 등이 모두 컨설팅 내용에 포함된다. 비용의 문제가 따르지만 선거캠프를 사실상 총괄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컨설턴트가 돈과 조직 관리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정치 컨설팅 업체의 목적은 물론 고객의 당선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후관리’가 있다. 초선 의원의 경우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서도 조언해 준다. 또 국회의원이라면 자질을 갖춘 보좌진을 소개받을 수도 있다.
컨설팅 비용은 천차만별. 기초의원,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 등 도전 대상이 어느 급이냐에 따라 다르다. 또 선거구나 후보자의 조건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지방선거 시장 규모가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선거 당선자 정원은 3867명. 대부분의 정당에서 후보를 내고 무소속까지 가세하면 출마자는 가볍게 2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컨설팅 업계가 엄청난 잠재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정치 컨설팅업체는 3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연우커뮤니케이션, 이윈컴, 민기획 등 5~6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역사가 짧다. 선거 때 ‘한철 장사’를 노리는 신생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1988년 설립된 연우커뮤니케이션이 최초의 정치 컨설팅업체로 꼽힌다. 그 이전에는 주로 광고기획사나 국회의원 보좌진 출신들이 선거 때 일시적으로 기획사를 차려 후보의 선거 홍보물을 만들어주는 수준이었다. 1991년 민기획과 ‘서울기획’(현 이윈컴)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정치 컨설팅업체도 경쟁시대를 맞게 된다.
선거 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반드시 컨설팅업체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컨설팅업체가 비교적 비싼 수업료를 받는 ‘사교육’이라면 저렴한 ‘공교육’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하는 ‘선거 관계자 연수’는 대표적인 공교육이다. 대상은 이번 지방선거 입후보 예정자와 선거 사무 관계자 등이다. 선관위는 전문 정치 컨설턴트를 강사로 초청해 시·군·구 단위에서 2회 정도 교육을 실시한다. 여기서는 지방선거 관련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에 대한 해설과 입후보 준비, 선거운동 및 회계보고 방법 등 선거실무에 필요한 내용을 강의한다.
당원이라면 정당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13일부터 이 달 말까지 여성 후보자와 선거 캠프 참모들을 대상으로 집중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는 유세문 작성과 연설 요령을 지도하고 이미지 컨설팅도 제공한다.
시간과 비용이 문제라면 관련 서적과 인터넷을 이용한 ‘독학’도 가능하다. 정치 컨설팅 업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양한 자료를 구할 수 있다. 정치 컨설턴트들의 개인 블로그도 있다.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최근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는 제목으로 선거 전략서를 냈다. 책 속에는 대선과 총선을 비롯해 지금까지 1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선거에 참여해온 박 대표가 15년간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박 대표에 따르면 유권자는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걸 좋아하고 정책보다 이슈에 끌린다. 또 합리적이고 신중한 언어보다는 쉽고 대중적인 언어에 열광한다. 박 대표는 “정치는 옳은 것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이긴 것이 옳은 게임”이라며 “선거에서는 강한 사람이 좋은 사람을 이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중적 언어를 쓰는 사람이 엘리트의 언어를 쓰는 사람을 이긴다”고 강조했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