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25일 태어난 딸 혜린이에게 입맞춤하는 서재응. | ||
요즘 서재응(28·뉴욕 메츠)은 손에서 사진 한 장을 떼지 못한다. 빅리그에 복귀해 호투를 거듭하고, 주위에서는 극찬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새로 얻은 첫 딸 혜린이뿐이다.
샌디에이고 원정중인 지난 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서재응은 “혜린이 낳자마자 메이저리그에 복귀하고 또 승리를 거둬서 모두들 복덩이라고 하는데, 며칠 만에 (서부로) 원정을 떠나오니 눈에 밟혀서 사진만 쳐다보며 하루를 지낸다”고 말한다. 영어 이름은 Ellen으로 지었고, 할아버지 서병관씨가 지어준 혜린이란 이름을 지닌 서재응의 첫 딸은 지난달 25일 뉴욕에서 출생했다.
딸의 출생과 함께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있지만 사실 서재응의 올 시즌은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프링 캠프에서 마이너리그로 떨어졌고, 시즌 초반에 잠깐 빅리그에 올라와 눈부신 호투를 선보였지만 또 다시 마이너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역투에 역투를 거듭한 서재응한테 빅리그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정작 빅리그 승격을 겸한 마지막 테스트에선 상대 타선에 흠뻑 두들겨 맞아 기회가 무산되는 불운이 겹치기도 했다. 도저히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일정까지 바꿔가며 억지로 등판을 강행할 수 없는 상황을 탓하기엔 너무 아쉬움이 많은 경기였다.
그렇지만 서재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올해는 완전히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빅리그에)올라가든 (마이너로)떨어지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편안한 목소리로 심경을 밝혔다. 지난 겨울 혹독하게 자신을 다그치며 훈련에 몰두했고, 스프링 캠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는 일단 마이너리그였다.
그리고 빅리그로 불려가 3게임을 던졌는데 2승1패에 방어율이 2.00을 기록했다. 특히 마지막 필라델피아전에서는 7이닝 동안 1안타만 내주며 8개의 삼진을 빼앗고 무실점의 최고의 피칭을 했는데도 그는 다시 마이너로 내려가야 했다.
당연히 분통이 터질 일이건만 서재응은 당시를 회상하며 “사실 그때 빅리그로 올라간 것도 그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내려갈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화가 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서재응은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3개월이 너무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고 말한다. 서재응은 “스프링 캠프에서 (마이너로)내려갈 때부터 열심히 하다보면 (로스터가 40명으로 늘어나는) 9월에는 올라가지 않겠느냐는 마음가짐이었다”며 “마이너에서의 한 게임, 한 게임이 새로운 구질인 스플릿과 커터를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아주 소중한 경기들이었다”고 감사해했다.
서재응은 지난해까지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두 가지 구질만으로 승부를 했다. 구단에서 투심 등 다른 구질을 익혀보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스플릿을 익히기 시작했지만 실전에 사용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그런데 올해 마이너로 가면서 성적에 대한 큰 부담이 덜어진 데다 커터까지 새로 배우면서 서재응은 무시무시한 투수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현대 야구에서는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서 6이닝 이상 던지면서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면 ‘퀄리티 스타트(QS)’라며 인정을 해준다. 선발 투수로서 제 몫을 해냈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재응은 마이너리그 트리플A 경기서 13경기 연속 QS를 기록했다. 13경기 연속으로 6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 단 한 번도 자책점 3점 이상을 내주지 않았다는, 정말 꾸준하고 대단한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예전의 기교파 투수에서 변신해 트리플A 리그에서 삼진 1, 2위를 다툴 정도로 타자들을 완전히 압도하는 투구 내용을 과시했다.
당연히 메츠 구단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서재응 스스로 만들어갔다. 특히 LA 다저스에서 데려온 왼손 선발 이시이 카즈히사가 부진을 거듭하자 서재응을 불러올리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7월 중순에 빅리그로 복귀할 기회가 또 한번 무산되는 불운이 있었다. 올스타 휴가를 받아 출산을 앞둔 약혼녀와 뉴욕에서 시간을 보낸 서재응은 7월18일 후반기 첫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구단에서 느닷없이 17일 선발로 나서라는 지시를 내렸다. 1주일 동안 전혀 공을 잡지 않았던 서재응은 등판이 앞당겨지면서 전날 불펜 피칭도 하지 못한 채 마운드에 올랐고, 시라큐스 스카이칩스 타선에 실컷 두들겨 맞았다. 4.2이닝만에 15안타(3홈런) 13실점.
보통 초반에 선발 투수가 난타당하면 교체되지만, 그날은 메츠 구단에서 투구수 90개를 채우라는 지시가 떨어져 계속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날 패전은 서재응이 얼마만큼 투수로서 성숙해졌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일전이었다. 만약 이날 이를 악물고 던져 좋은 성적을 올렸더라면 빅리그 복귀를 확정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서재응은 한 경기 반짝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몸을 보호하는 쪽을 택했다.
빅리그로 다시 돌아와서도 그의 마음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서재응은 “(8월7일) 커브스전을 앞두고 특별히 긴장되거나 중압감을 느끼지는 않았다”며 “데릭 리(커브스의 간판 타자)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에만 집중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경기에서 서재응은 위기에서 리를 만났지만 갑자기 3~4마일이 빨라진 92~93마일의 강속구를 뿌려대며 범타로 리를 잡았다.
서재응은 “플로리다 시절엔 체인지업을 많이 구사했는데 이번엔 빠른 공으로 공략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큼 침착해지고 수읽기에 능해진 모습이었다.
메츠 구단에서는 여전히 서재응의 거취에 대해 불투명한 자세다. 심지어는 재활 등판중인 스티브 트랙슬이 복귀하면 서재응은 다시 마이너로 갈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이런 소문에도 역시 서재응은 무덤덤하다. “(트랙슬이 오면 마이너로)내려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2003년만큼 컨디션을 찾았다는 점이고, 직구도 90마일 이상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내려가도 9월이면 금방 돌아올 것 아니냐”며 웃음을 터뜨린다.
2세가 생겼다는 것 역시 그의 책임감을 자극한다. 산모의 곁에서 딸의 출생을 줄곧 지켜봤다는 서재응은 “처음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탯줄을 내가 직접 끊는 순간 정말 기분이 묘했다”며 “이제 우유 값도 벌어야하니 더욱 열심히 해야죠”라며 특유의 익살을 부린다.
오래 기다렸던 서재응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기분이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