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데이트폭력을 부부사이가 아닌 남녀 간 발생하는 폭행, 살인, 성범죄, 감금, 약취유인, 협박, 명예훼손 사건 등으로 분류했고 가해자 혐의가 입증되면 형사 입건 등의 대응을 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피해자 가운데에는 소수의 남성(4%)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여성(92%)이 피해자로 폭행, 협박, 살인 등 다양한 범죄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마다 7000건에 웃도는 데이트폭력이 발생했다. 같은 기간 데이트폭력 사범은 3만 6362명, 이로 인해 사망한 사람도 290명에 달했다.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실제 사례는 상당할 것으로 분석된다. 폭언·폭행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연인’이기 때문에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A 씨는 1년 가까이 연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오다가 지난 2월에야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A 씨와 교제했던 B 씨는 그동안 칼로 협박을 하거나 때리고 감금을 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A 씨는 예전에도 두 번 경찰에 신고를 한 적이 있었고 총 11번의 폭력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상습적인 데이트폭력 가해자로 보이는 B 씨는 그동안 불구속입건이 되는 데 그쳤다. 지난달 B 씨는 주거침입 혐의로 구속입건됐고 지난 2일 검찰에 송치됐다. B 씨가 A 씨에게 1년 동안 끔찍한 폭행을 가한 이유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혀 주위를 경악케 했다.
데이트폭력의 상당수는 이별을 통보하자 보복을 하는 경우다. 충남 서산에 거주하는 한 아무개 씨(29)는 여자친구였던 김 아무개 씨(22)가 그만 만나자고 말하자 김 씨를 강제로 승용차에 태워 감금했다. 김 씨가 차에서 내려 도망가려고 하자 쫓아가 얼굴을 가격하는 등의 폭행을 가했다.
김 씨는 폭행당한 직후 주변 사람들의 신고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눈 주위가 골절되는 외상이 심각해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전치 7주 진단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한 씨는 조직폭력배 관리대상이라 경찰이 예의주시했었다. 당일 첩보가 있었는데 때마침 목격자들의 신고도 들어와서 통신내역을 수사해 5일 만에 검거했다”고 전했다.
데이트폭력에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경남 마산에 거주하는 박 아무개 씨(45)는 3년간 교제했던 이 아무개 씨(여·46)가 헤어지자고 하자 번개탄을 피워 살해하려다가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입건됐다. 한 달 전에 헤어진 뒤 이 씨가 만나주지 않자 박 씨는 술에 취해 자정쯤 이 씨의 집에 찾아가 방범창을 절단하고 무단 침입했다. 그는 식칼로 이 씨를 위협한 후 번개탄을 피웠다. 손발이 묶여있던 이 씨는 박 씨가 졸던 틈을 타 일곱 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7시쯤이 돼서야 집 밖으로 기어 나와 행인의 도움을 받았다.
폭행 행위가 격해져 살인까지 일어나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전남 화순에서는 김 아무개 군(18)이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한 여자친구를 목 졸라 숨지게 한 것이다. 사망한 피해자 C 양은 같은 나이의 고등학생이었고 피해자 부모가 실종신고를 해 탐문 수색을 하다가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김 군과 함께 C 양의 시신을 유기한 양 아무개 군(18) 역시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데이트폭력의 경우 신고를 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거나 병원 치료를 받는 것으로 끝내려고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며 “데이트폭력의 근절을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치안정책연구소가 발표한 ‘데이트폭력의 실태 및 대응방안’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데이트폭력 범죄자의 평균 재범률은 76.4%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피해자 분리·보호부터”…데이트폭력 방지법안 발의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1일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데이트폭력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데이트폭력 방지법은 데이트폭력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데이트폭력 발생 시 피해자·가해자 분리 등 응급조치, 신속수사, 피해자 신변보호, 가해자 수강·상담·치료 및 보호 처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에서 데이트폭력은 가정폭력처럼 직접적으로 개념 정의·행위 규제를 하는 법령이 없어 효과적인 제재가 이뤄지지 못했으며 피해자 보호조치에도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박 의원은 “데이트폭력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범죄는 무엇보다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신속히 격리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법안 마련으로 데이트폭력이 중대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신속한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예방조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