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포츠나 수잔 보일 같은 스타를 배출한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일곱 번째 시즌은 2013년에 열렸다. 1월과 2월에 지역 오디션을 거쳐 걸러진 참가자들은 심사위원 오디션으로 향했다. 심사위원은 ‘시즌 6’과 같은 네 명의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독설의 상징인 사이먼 코웰을 필두로 어맨다 홀든, 데이비드 윌리엄스, 알레샤 딕슨 등이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2월에 이뤄진 심사위원 오디션은 긴 편집을 거쳐 4월 13일에 첫 전파를 탔다.
‘시즌 7’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단연 앨리스 프리덴햄이었다. 28세의 미용치료사로 소개된 그녀는 소박한 흰색 긴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그녀는 극도로 긴장한 듯 보였다. 괜찮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그녀는 “너무나 무섭고 떨린다”고 답했다. 그렇게 노래는 시작되었고, 위대한 재즈 넘버인 ‘My Funny Valentine’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편안해지면서 나중엔 기립박수를 이끌어낼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위)와 <더 보이스 UK>에서 전혀 다른 무대를 선보인 앨리스 프리덴햄.
평가가 짜기로 유명한 사이먼 코웰마저 일어서서 박수를 쳤고, 그녀의 목소리에 대해 ‘리퀴드 골드’(liquid gold) 같다는, 즉 황금을 녹인 물이 흐르는 듯한 끈적거림이 있다는 호평을 했다. 프리덴햄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무대 공포증을 이겨내고 놀라운 퍼포먼스를 이뤄낸 인간 승리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우승까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주목할 만한 참가자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ITV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대항해 BBC에선 <더 보이스 UK>를 같은 기간에 방송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앨리스 프리덴햄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그런데 4월 20일 방송에서 만난 앨리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착 달라붙는 스커트에 섹시한 흰색 로우 컷 톱을 입고 머리에 붉은 띠를 묶은 채 뮤지컬 넘버인 ‘Lady Is a Tramp’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당당해 보였다. 하지만 윌.아이.엠, 제시 J, 톰 존스 그리고 대니 오도노휴 등 네 명의 심사위원들 중 그 누구도 ‘턴’을 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렇게 예선에서 탈락했다.
특히 <더 보이스 UK>의 인터뷰 영상은 큰 충격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활기찬 모습이었다. 자신이 출연하는 건 프로그램과 자신 둘 다에게 ‘윈-윈’인 상황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으며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점점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며 터프하게 내뱉었다. 이 모습이 전파를 탄 후 사람들은 그녀가 교활한 쇼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 보이스 UK>는 심사위원에게 목소리만으로 어필해야 하는 콘셉트이기에 자신 있게 내지르는 이미지를 구사했다면,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선 동정표를 얻기 위해 상황을 꾸몄다는 비난이었다.
‘시즌 1’의 우승자인 폴 포츠나 ‘시즌 3’의 수잔 보일은, 등장 당시의 어색한 모습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전을 일으킨 인물들. 여기엔 그들의 척박한 현실(핸드폰 판매원, 실직 상태)이 극적인 요소를 더하기도 했다.
대중은 앨리스 프리덴햄이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이런 ‘휴머니즘’ 전통을 이용했다고 봤다. 최대한 떨리는 척하며 등장했고, 그렇게 기대감을 낮춰 놓은 상태에서 가장 자신 있는 노래를 불러 심사위원에게 임팩트를 주었다고 의심했다. 이에 프리덴햄은 변명했다. <더 보이스 UK> 오디션이 있었던 2012년 12월만 해도 자신감에 넘치는 상태였지만 여기서 떨어진 후 무대 공포증이 생겨 고통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용기 내어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도전했고, 다행히 공포증을 극복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대중은 믿지 않았다. 먼저 그녀의 직업을 의심했다. 그녀는 미용치료사 일을 하며 시간 날 때마다 웨딩싱어로 일하거나 파티에서 공연을 했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잉글랜드 남동부인 하트퍼드셔 지역의 100만 파운드(약 17억 원)짜리 저택에 살고 있었고, 집안의 후원으로 프로페셔널 뮤지션 수업을 받고 있었다. 2012년 10월에 좋은 시설의 전문 스튜디오에서 ‘My Funny Valentine’를 부르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던 것도 밝혀졌다.
<데일리메일>의 취재에 의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무엇을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었다며 “앨리스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녀는 그런 계략 없이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브리튼스 갓 탤런트> 인터뷰에서 그녀는 시청자의 동정심을 사기 위해 애쓰며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락한 <더 보이스 UK> 영상이 공개되면서 궁지에 몰렸고, 5월 28일에 방송된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세미파이널에서 줄리 런던의 ‘Cry Me a River’를 불렀지만 탈락했다. 3등까지 통과였지만 그녀는 4등을 차지했다. 가사를 틀리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콘웰은 “무대에서 실수했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다”라며 위로했다. 그렇게 그녀는 오디션 무대에서 내려왔고, 논쟁 속에서 잊혀질 듯했다. 하지만 다행히 소니 뮤직과 계약을 맺었고, 2016년 현재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