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재계에서는 이 안건이 주총에서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 총괄회장은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건설 등 현재 등기이사로 올라 있는 계열사에서 모두 물러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롯데그룹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등기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계열사들에서 순차적으로 물러날 것”이라고 전했다.
재계 일부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등기이사직 퇴임을 신동빈 회장이 작심하고 경영 일선에서 아버지를 축출하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 총괄회장의 동의도 없이 임기 만료를 이유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워낙 고령인 탓에 등기이사로 남아 어려운 경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것”이라며 “총괄회장이 등기이사로 남아 있다 해도 신동주 회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경영권이 흔들릴 일도 없다”고 강조했다. ‘경영권 확립’이라는 해석에 선을 그은 셈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를 앞세워 경영권을 위협하는 형 신동주 회장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없애고 오너 총괄회장이자 등기이사로서 이사회 결정에 영향력을 줄지 모르는 상황을 아예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주총 승리 후 자신의 원톱체제를 확실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버지를 몰아낸다는 인상이 강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단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동빈 회장이 독기를 품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분류되는 황각규 실장을 신 총괄회장 대신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것은 롯데제과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는 호텔롯데, 롯데쇼핑과 함께 롯데그룹 지배구조상 핵심 계열사 중 하나다. 또 그룹 순환출자 고리 중 90%가량 연결돼 그룹 경영권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계열사로 파악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이 흔들릴 여지가 없다고 강조하지만 롯데제과 이사회를 장악함으로써 더 확실한 구도를 갖추려는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신동빈 회장은 앞서 신동주 회장을 향해서도 역공 모드에 들어간 바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1월 광윤사를 상대로 ‘주주총회 및 이사회 결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광윤사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위임장을 토대로 신동빈 회장을 광윤사 이사회에서 해임하고 자신이 대표이사에 올랐다. 또 신 총괄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광윤사 지분 중 1주에 대한 매매계약을 이사회 승인을 받아 체결함으로써 광윤사 지분 ‘50%+1주’, 즉 전체 지분 중 과반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같은 과정을 겪은 신동빈 회장은 신동주 회장이 내세운 신 총괄회장의 위임장의 효력과 적법성을 문제 삼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만일 일본 법원이 신동빈 회장의 소송을 받아들인다면 신동주 회장의 광윤사 대표이사직은 위험할 뿐 아니라 입지도 확 줄어든다. 신 총괄회장의 위임장에 대한 의문도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신동빈 회장이 직접 원고로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은 신동빈 회장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동빈 회장의 역공 드라이브를 신동주 회장이 어떻게 받아넘길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