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런 찍어내기가 비단 정치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박 대통령은 이미 집권 초기였던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그야말로 찍어냈다.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이 훼손된다는 판단에 따라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적용할 것을 요구했지만 채 전 총장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찍어내는 과정 역시 유 의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관련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한 데다, 언론플레이 또한 심각했던 것이다. 당시 일각에선 “혼외자 문제는 검증과정에서 채 총장과 청와대 간에 양해가 된 사안”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에 대해 양측은 모두 입을 닫았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채 전 총장에 대한 학습효과는 덕분인지 검찰 길들이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불법 정보 수집 등으로 아주 잠깐 여론의 지탄을 받긴 했지만, 박 대통령으로선 검찰 권력을 장악하는 실로 엄청난 수확을 거둔 셈이었다.
박동렬 전 대전국세청장.
박 전 청장 이름이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최초 발설자가 박 전 청장이라고 언론이 보도하면서다. 당시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박 전 청장에게 한 발언을 근거해 문건이 작성됐다는 내용이었다. 박 전 청장과 안 비서관은 고향 선후배 사이로 오랜 기간 만남을 이어왔고, 안 비서관은 회동에서 정윤회 비선 모임 동향에 대해서도 일부 털어놓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박 전 청장은 당시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이 마무리된 후 박 전 청장의 이름은 조용히 잊혔다. 그러다 지난해 강남의 유흥업주 탈세 혐의 수사 과정에서 박 전 청장 이름이 다시 나왔다. 박 전 청장이 퇴임 직후인 2011년 7월부터 2014년 11월 사이 유흥업주 박 아무개 씨 등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금 3억 500만 원을 수수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박 전 청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올해 1월 법원은 박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박 전 청장이 받은 돈의 성격을 청탁·알선 명목으로 보기 어렵다”며 수수한 돈 전액은 세무조사 대리 업무에 대한 정상적인 수임료라고 판단했다.
무죄 소식을 접한 검찰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굳이 박 전 청장 사건이 아니라도 무죄가 나오면 검찰 입장에선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인사는 “그런데 무죄가 나오고 또 얼마 뒤에 박 전 청장의 다른 사건이 불거졌다”면서 “원래 문제가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검찰이 작정을 하고 박 전 청장을 수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인사가 말한 사건은 지난 2월 표면화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임경묵 전 이사장의 세무조사 무마 뒷돈 사건을 말한다. 박 전 청장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장을 맡은 후 지 아무개 씨에게 임 전 이사장 땅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고, 2010년 3월 D 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토록 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이번에는 박 전 청장을 불구속기소했다.
결국 박 전 청장은 지난 1년여간 3개 사건에 연루돼 2번 기소되는 사실상 진기록을 남긴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 전 청장이 정치권이나 재계 등에 인맥이 두텁다보니 그럴 수 있겠지만 이런 상황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면서 “임 전 이사장 사건의 경우 실제 수사 타깃은 박 전 청장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러면 임 전 이사장도 박 전 청장 때문에 재수 없게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박 전 청장이 이번에도 살아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두고 볼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