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오승환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WBC 때 위축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국내서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4일 2006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오승환을 행사 뒤에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모습과 사복을 입고 나온 오승환이 완전 딴판이었다. 마운드에서의 오승환이 ‘애늙은이’라면 경기장 밖에서의 오승환은 미소년이다.
이젠 화려했던 ‘과거’ WBC를 잊고 프로야구 시즌을 맞은 오승환에게는 프로 2년차란 ‘짬밥’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기자의 기억엔 오승환의 웃는 모습이 없었다. 거의 대부분 마운드에서 입을 앙 다물고 혼신을 다해 공을 뿌려대던 모습만 존재했다. 그러나 지난 3월 20일 WBC 대표팀이 금의환향했을 때 단복을 입은 오승환은 피곤한 상황에서도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해맑은 웃음이었다. 여자 팬들이 서로 팔짱을 끼며 사진 촬영을 요구했지만 쑥스러운 웃음만 지을 뿐 모두 응해주었다.
이번에 다시 만난 오승환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자꾸 언론에서 그를 향해 ‘돌부처’니 ‘포커페이스’니 하는 이미지로 몰고 가니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스맨’이 되는 것 같다며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다분히 기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
“젊은 사람한테 ‘동안’이라고 표현하는 게 이상하지만 미소년같아 보여요. 미소가 해맑아요.”
“예? 으흐흐 저 그런 소리 처음 들어봐요. 오히려 나이 들어 보인다거나 영감같다는 소린 많이 들었지만 미소년이라는 얘긴 정말로 처음이에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또 다시 너털웃음이 흘러 나온다. 오승환은 WBC대회를 통해 마무리 투수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게 다졌지만 이미 지난해 데뷔 첫 해에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사고’를 치며 스타플레이어로서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는 한때 팔꿈치 부상으로 야구를 포기할 뻔한 위기에 처했었다. 대학 1, 2학년 때 두 차례의 오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고 피땀 어린 재활의 시간 동안 너무나 힘이 들어 야구를 그만두고 싶은 숱한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교때 허리 부상으로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던 일도 당시에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래도 지금의 빛나는 시간들이 존재하기에 이전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오승환의 미니홈피에 올라 있는 ‘누드사진’ | ||
오승환의 미니홈피를 들여다보면 사진첩에 놀라운 사진이 올라와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바로 상반신 누드 사진이다. 그중에는 마사지를 받고 등 전체가 마치 갈비뼈를 잇댄 모양처럼 빨갛게 부어 오른 끔찍한 사진도 있지만 근사한 근육이 엿보이는 사진이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그 사진을 찍은 배경을 물었더니 오승환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 사진은 이번에 찍은 게 아니라 대학 때 찍은 사진이에요. 후배가 휴대폰으로 찍어서 올려 놓은 건데 상반신이 다 나온 것도 아니에요. 어깨만 살짝 보였을 뿐인데… 그게 야해 보이나요? 몸에 자신 있냐구요? 으허허허 무슨 말씀을. 제가 뭐 웨이트하는 선수도 아니고 몸을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승환 미니 홈피의 방문객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엄청난 사람들이 홈피에서 ‘일촌’ 신청을 해놓는 바람에 지금은 아예 받아주질 못한다고 미안해한다. WBC 대회 이후 여성팬들이 부쩍 늘었다는 걸 느낄 정도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그의 매력이 뭘까?
“글쎄요, 전 정말 재미없는 남자거든요. 웃기는 얘기도 못하고 여자를 위해 배려하는 부분도 절대 부족하고 도통 절 좋아할 만한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지지를 보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그런 무뚝뚝한 사나이도 6명의 여자 친구와 사귀어봤다고 한다. 그것도 대학 때의 이성 교제만을 꺼내놓은 것이다. 기자가 6명이란 숫자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자 오승환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한다.
“6명이 많은 건가요? 제가 생각하기엔 6명씩이나가 아닌 6명밖에 못 사귄 것 같은데요. 저보다 더 많이 사귄 친구들도 많아요. 대학 생활하면서 그 정도는 약한 거죠? 근데 신기한 게 여자들은 무뚝뚝한 남자도 괜찮게 생각하나봐요. 그랬으니까 6명이 절 좋아하지 않았겠어요?”
이 사람이 ‘돌부처’ 오승환 맞나 싶었다. 이성문제에 대해 화려했던 ‘과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부분에다 청산유수의 입담이 오승환의 이미지를 확 바꿔 놓았다.
“제일 오래 만났던 여자가 2년 정도인데 제일 짧게 한 달 만에 헤어진 경우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유명해지니까 연락을 해오더라구요. 기분요? 에이 이미 헤어졌는데 아무 감정 없는 거죠. 사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거 쉬운 일 아니잖아요. 저도 사람이니까 상처도 되고 미련도 남고 그랬어요. 잊으려고 노력 많이 했고 지금만 아파하고 나중엔 전혀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었죠.”
▲ 지난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두산의 마지막 타자를 아웃시키며 우승을 확정지은 오승환이 환호하는 모습. | ||
3형제 중 막내인 오승환은 태어나기 전에 딸을 원했던 부모의 간절함 덕분에 어린시절 여장을 하고 다닌 적이 많았단다. 어머니가 치마를 입히고 머리를 묶어주기도 했다는 소리에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못 믿으시겠다는 표정이네. 저 그렇게 하고 찍은 사진도 있어요. 근데 제가 봐도 정말 이뻐요. 계집애처럼 말이죠. 그땐 창피한 줄 몰랐어요.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까 그냥 그렇게 하고 다녔죠. 하하”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에 오승환은 신나는 표정이 되었다. 숨길 것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다는 태도였다. 다시 야구 얘기로 돌아갔다. WBC에서 워낙 유명한 타자들을 상대했던 탓에 국내 프로야구가 약간은 시시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나타내자 오승환이 발끈(?)한다.
“별로 다른 거 없어요. WBC에서 TV로만 보던 유명 타자들을 상대했을 때도 그들이 유명하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긴장된 거 없었어요. 여기서도 마찬가지구요. 마운드에 올랐을 때는 공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어떤 타자가 나와도 똑같은 마음으로 던져야 해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이 부분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오승환은 한 달여 동안 동고동락했던 선후배들과의 대표팀 생활만큼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야구장에서 상대팀 선수로 만나면 이전과는 달리 반가움이 넘실거린다는 것.
“언제 그런 멤버들과 야구를 또 해보겠어요. 드림팀으로 프로야구팀을 만들자는 얘기도 나왔을 정도예요. 전 개인적으로 서재응 선배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다음날이 선발이면 전날부터 힘을 쓰지 않아요. 선발 경기에 모든 컨디션을 맞추려고 일반 생활을 조절하는 거 보면서 정말 남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었어요. 남자로서도 멋진 분이구요.”
오승환은 아직 보직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선발이든 중간이든 마무리든 공 던지는 건 똑 같기 때문에 특별히 선발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한다. 보직을 신경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싶다는 것. 82년생 오승환은 인터뷰 말미를 이런 멋진 멘트로 ‘마무리’를 장식했다.
“제가 만약 별 볼일 없는 투수였다면, 쉽게 무너지고 쉽게 깨지는 선수였다면 이런 인터뷰도 팬들의 사랑도 없을 거예요.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일단 운동을 잘해야 여자한테 인기도 있고 무뚝뚝해도 멋있어 보이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걸 알기 때문에 야구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정말 다치지 말고 잘했으면 좋겠어요.”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