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13회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60분짜리 광고를 본 기분이다’ ‘13회의 주인공은 PPL이지 말입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가장 높은 키스신이 대표적이었다. 운전을 하던 서대영(진구 분)이 투정을 부리는 윤명주(김지원 분)를 달래다 애틋하게 키스를 하는 장면은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운전 중이었음에도 차를 정차하지 않고 ‘자동주행모드’를 사용한 후 키스를 나눈 것이 화근이 됐다.
최근 자동주행모드가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지만 뜬금없는 PPL은 오히려 극의 몰입도를 방해했다. <태양의 후예>가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김 작가는 히트작 메이커로 집필작마다 다양한 PPL이 들어오지만 이를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과거 <시크릿가든>에서 커피숍 PPL을 ‘거품 키스’로 승화시켰던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자동주행모드 키스는 주인공 남녀의 키스 자체보다는 과도한 설정과 PPL이 더욱 부각되며 공감을 사는 데 실패했다.
각종 PPL이 난무한 ‘태양의 후예’ 장면들. 방송 화면 캡처.
자동차 PPL은 시작에 불과했다. 드라마 초반부터 등장했던 ‘먹방’은 후반부로 가면서 정점을 찍었다. 간간이 등장했던 샌드위치는 무박 3일간 술을 마신 유시진(송중기 분)과 강모연(송혜교 분)의 해장 메뉴로 또다시 등장했다. 강모연의 집 식탁에는 누가 봐도 어색하게 중탕기가 턱 놓여 있다.
송상현(이승준 분)이 수시로 챙겨먹는 아몬드 역시 상품명까지 고스란히 노출되며 드라마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주인공 남녀가 데이트를 즐기는 커피숍 역시 수시로 로고까지 드러난다. 그동안 여러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몸을 챙기는 데 애용했던 홍삼도 <태양의 후예> 주인공들의 기호 식품이다.
<태양의 후예>는 PPL로만 약 3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총 제작비 130억 원 중 26%를 책임진 셈이다. 김은숙 작가의 명성과 송중기, 송혜교라는 스타가 출연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치다. 그런데 유독 <태양의 후예>에서 PPL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PPL이 드라마 후반부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초중반부는 전쟁 상황인 가상의 도시 배경이다. 우리나라가 아니고, 전쟁 중이기 때문에 사실상 PPL을 넣기가 쉽지 않다. 이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후예>가 주인공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13회부터 서울로 돌아온 주인공들의 일상이 그려지며 상황은 급반전됐다. 배경이 서울이 되면서 PPL을 넣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또한 불과 종방을 4회 앞두고 이미 계약을 맺은 PPL을 약속대로 소화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태양의 후예>는 시청자들의 몰입도가 극히 높은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PPL에 대한 저항감 역시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보니 뜻하지 않은 오해도 받곤 한다. 바로 ‘초코파이’ 장면이다. 극중 북한요원은 피를 흘리면서도 초코파이를 먹는다. 유시진이 “작별 선물입니다. 맛있는 거니까 아껴먹기 바랍니다”라며 초코파이를 건넨다. 초코파이의 제과업체인 오리온 측이 이에 대해 공식 SNS를 통해 “역시 초코파이는 정이지 말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KBS2 <태양의 후예> 영상을 게재했다.
오리온 공식 페이스북
하지만 오리온은 ‘PPL 안했는데’ ‘뜻밖의 초코파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해당 장면은 PPL이 아님을 밝혔다. 이어 오리온 측은 댓글을 통해 “PPL 하지 않았는데 극의 흐름상 필요한 소품이라 나왔다고 하네요”라고 덧붙였다. 결국 PPL을 남발하던 <태양의 후예>은 PPL을 하지 않은 물품까지 오해를 받았고, 오리온 측은 뜻하지 않은 광고 효과를 얻게 된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태양의 후예>를 수입한 중국 측이 과도한 PPL에 딴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뉴스포털 신랑망(新浪網) 봉황망(鳳凰網) 등은 지난 9일 한국과 대만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태양의 후예>가 정신없는 ‘PPL 잡탕’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중국 언론과 인터뷰를 나눈 한 시청자는 “서울에서 주인공들이 데이트를 하는 장면마다 PPL로 범벅이 됐다”며 “먹고, 마시고, 쓰는 것이 1분 1초마다 PPL로 가득 차 있어 드라마 제목을 ‘PPL의 후예’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은 “중국이 또 다른 규제를 신설하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중국은 2014년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외국 콘텐츠 수입 규제를 강화했다. 수입 총량을 줄였고, 100% 사전 제작 후 심의를 거쳐야 수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주춤하던 한류 드라마 시장은 중국의 규제 안에 규격을 맞춘 <태양의 후예>를 통해 다시 활성화됐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성공에 또다시 위기감을 느낀 중국 측이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새로운 장벽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한 외주 제작사 대표는 “PPL은 제작비를 충당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라며 “만약 중국이 PPL에 제동을 걸면 드라마 제작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제작사들은 <태양의 후예>의 PPL 문제가 너무 크게 불거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