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골프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홍순상. 잘생긴 외모도 그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 ||
지난 4월 2일 오전 프라자CC. 시즌 개막을 앞두고 레슨 프로도 없이 ‘나홀로 연습’에 한참인 홍순상을 만났다. 그런데 세 번이나 놀랐다. 골프선수가 아니라 연예인을 취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 조각 같은 외모가 일단 눈길을 잡았다(더군다나 해병대 출신이다). 이어 만만치 않은 기량과 근성 그리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인간적인 매력까지 더해졌다.
인터뷰는 ‘해병대’로 시작했다. 골프선수의 실력을 제쳐놓고 지나치게 외모로 평가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귀띔을 미리 받았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자원 입대인 걸로 아는데 골프선수가 왜 일부러 힘든 길을 택했나?”
질문을 던지며 자세히 뜯어보니 같은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끈했다. 크고 깊은 눈망울에 얼굴도 작고, 선이 매끈했다. 피부도 보통 남자들보다 더 희었다. 특히 콧날이 아주 예술인데 사람들이 자주 ‘다니엘 헤니 아니냐?’고 묻는다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가라고 하더라구요. 뭐 나도 별로 싫지 않았고…. 어쨌든 2004년 3월 1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해병 969기가 됐죠(웃음).”
홍순상은 포항에서 일반 해병대원으로 1년을 보낸 후 나머지 반은 해병대사령부(충청도 발안)의 골프 연습장에서 근무했다. 골프 연습장의 청소, 볼 수거 등 시설관리가 주임무였다. 홍순상은 병장 때인 2005년 말 제약이 많은 현역 사병 신분으로 프로 시드전을 통과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출전자는 프로들로 죽기살기로 골프만 쳐도 통과하기 힘든 관문이기에 ‘병장 홍순상’의 시드전 통과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남들은 골프병이어서 군복무 대신 하루 종일 연습만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였다.
“하하, 골프 연습이요? 대한민국 사병이 마음 놓고 골프 연습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전 열심히 청소하고 볼 줍고 그랬어요. 근무시간 외에 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매일 한 시간씩 연습하는 게 고작이었죠.”
시드전을 통과한 후 격려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 간부에게 찍혀 골프장에서 쫓겨나 일반병으로 근무하며 고생했다고 하니 해병대가 프로를 만든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해병대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베네스트오픈 때 ‘돌격!’ 응원 일화를 소개했다. 한창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갑자기 “돌격 앞으로!”라는 구호가 들렸다. 낮술 한 잔을 걸친 해병대 간부 10여 명이 홍순상을 따라다니며 해병대 응원을 펼친 것. 반가우면서도 조금 민망했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신한동해오픈 때는 최경주와의 맞대결에서 이겨 신문지상에 ‘탱크 잡는 해병’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안 폴터요? 사실 얼마 전에 폴터를 직접 만났어요. 미국 동계훈련 중에 뷰익인비테이셔널에 구경갔는데 스폰서(타이틀리스트) 소개로 드라이빙레인지까지 들어가 인사를 나눴죠. 어휴 그런데 정말 잘 생겼더라구요. 나에게 인상이 좋다며 빨리 PGA로 건너오라고 했어요.”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하고, 또 최근에 직접 사적인 만남을 가진 폴터 얘기를 꺼내자 홍순상은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심하게 잘 생긴 사람이 더 잘생긴 사람을 상대로 부럽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올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인가?”
골프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홍순상은 “일단 상반기에 첫 승을 달성하면 하반기에는 미PGA Q스쿨에 전념하겠다”고 답했다. 시선은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홍순상은 준비 없이 갑자기 프로가 된 2006시즌 평균타수 5위에 상금랭킹 13위를 기록했다(톱10 4회). SK텔레콤오픈 등 우승 찬스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정상 문턱에서 아쉽게 놓쳤다. 어쨌든 턱도 없이 모자라는 연습량, 복학한 성균관대 졸업, 스폰서도 없는 척박한 환경 등 여러 악조건을 이겨내며 올린 대단한 성과다.
선수로서는 늦은 편인 중학교 3학년 때 골프채를 잡은 홍순상은 사실 주니어 5승에, 입문 5년 만에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등 아마추어 시절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장기는 호쾌한 샷. 드라이버샷은 힘차게 구사하면 보통 300야드를 넘는다. 지난해 7월 가야오픈 때는 무려 350야드를 날려 화제를 모았고, 신한동해오픈 때 동반 라운딩을 한 최경주도 “당장 미PGA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극찬을 했다. 그래서 국내보다는 세계 최고봉인 미PGA 무대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홍순상의 잠재력은 SK텔레콤 등 다수의 스폰서들이 그를 택한 과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SK 측은 2006년 중순부터 그룹의 차세대 간판 골프 선수를 물색했다. 골프계는 물론이고, 광고계 정밀 분석까지 거친 검증 작업 끝에 지난해 유러피언투어에서 타이거 우즈를 이긴 양용은, 슬럼프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슈퍼스타 대열에 올라선 미LPGA 박지은, 그리고 홍순상 세 명이 최종 후보로 남았다. 그런데 무명의 홍순상으로 최종 결정이 떨어졌다. 이것만 봐도 홍순상의 상품성을 쉽게 알 수 있다. 홍순상은 SK텔레콤뿐 아니라 도요타자동차, 타이틀리스트, 퓨마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후원을 추가로 받고 있다. 미PGA Q스쿨 도전 비용과 통과시 보너스 등 계약 조건도 아주 좋다(SK텔레콤 3년간 4억 5000만 원).
지난해 중흥골드레이크오픈 마지막홀에서 50cm짜리 버디 퍼팅을 실패, 생애 첫 승을 놓쳤다. 이때 홍순상은 “남들은 운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순전히 나의 기량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순상이 골프에서의, 그리고 남자로서 안나 쿠르니코바가 될지 아니면 마리아 샤라포바가 될지 아직 결과를 장담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한국 남자골프계에 정말이지 큼직한 기대주가 하나 등장한 것은 확실하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