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4월 23일 <국제신문>에 난 기사의 내용이다. 10년 전, 정확히 조광제가 경남체고 시절이던 1997년, 평영 100m(1분02초95)와 50m(28초60)에서 거푸 한국신기록을 작성할 당시 인터뷰를 통해 인연을 맺었던 기자는 그 기사를 보며 선수 이름을 거듭 확인했다. 이미 은퇴했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사회 생활을 했을 거라 예상했던 조광제가 코치도, 감독도 아닌 선수로 수영장에 나타나 은메달을 땄다는 게 아닌가.
98년 방콕아시안게임 선수단 출국 전 무단 이탈로 대한수영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했던 조광제였다. 193cm, 86kg의 완벽한 체격에다 세계 정상급의 파워를 보유했다고 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떼어논 당상이었고 올림픽까지 기대케 했던 ‘천재’ 수영 선수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제도권의 ‘어르신’들이 감당하지 못했던 것. 절치부심 후 2002년부산아시안게임에 재도전했던 그는 대표팀 선발전에서 랭킹 1위에 오르고도 탈락하는 또 한 차례의 아픔을 겪게 된다. 그리고 군 입대 후 수영계에서 자취를 감췄던 조광제가 어느날 갑자기 예고편도 ‘때리지 않고’ ‘짠’하고 나타난 것이다.
● 도전과 재기
“20일 연습했어요. 그런데 20일을 온전히 연습했습니다. 단 하루도 도망가지 않고(웃음). 5년 만에 물에 들어갔더니 마구 설레더라구요. 수영장 특유의 냄새가 마치 고향 냄새 같았어요. 고맙죠. 문제투성이였던 절 다시 받아주신 선생님이.”
지난 4월 25일 부산에서 만난 조광제는 수영 선수로 5년 만에 복귀한 소감을 덤덤히 털어 놓았다. 10년 전 고등학교 3학년이던 선수가 어느덧 스물여덟 살 청년이 됐고 아직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세 살 난 아들과 의대생 아내를 둔 가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지나온 인생살이가 결코 녹록지 않았던 조광제는 동아대 시절 사제지간이었던 이정숙 코치(전 동아대 수영부 코치)의 강권과 이끌림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수영장에 발을 들여 놓게 됐지만 어렵게 시작한 만큼 조광제란 이름을 다시 한 번 알리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군 제대 후 이 코치님께 취직 자리 좀 알아봐달라고 전화를 드렸어요. 아이는 태어났고 먹고 살 길은 막막하고 수영만 한 놈이라 달리 할 게 없더라구요. 강사라도 하려고 취업을 부탁드렸는데 여기저기 알아보시다가 절 부르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다시 선수로 복귀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보시대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거든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탈락한 이후 다시는 선수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기 때문에 선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다면 다시 도전해보자고 마음을 바꾸게 됐어요. 어렸을 때처럼 하기 싫다고 도망다닐 만큼 제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거든요.”
의예과에 재학 중인 아내 뒷바라지와 아들의 양육을 위해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수영선수로의 복귀는 그의 인생 계획표에 존재치 않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가장 조광제로선 이것저것 따질 만한 형편이 안됐다.
지난 3월 1일 이정숙 코치의 발품과 노력 덕분에 어렵게 용인시청 소속이 된 조광제. 대우는 겨우 용돈 수준의 월급을 받는 정도다.
“5년 동안 운동을 안 한 사람에게 지원을 해주겠다면 더 이상한 거죠. 앞으로가 중요해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거니까요. 1년 후를 약속하고 싶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모습이 돼 있을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 사진제공=국제신문 | ||
조광제는 98년 방콕아시안게임 전까지만 해도 평영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그런데 선수단이 방콕으로 출국하는 날, 조광제는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수영 감독은 조광제의 ‘증발’에 대해 ‘조광제가 복통으로 공항에서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즉 선수단 출국일에 복통을 핑계로 조광제가 팀을 무단이탈했다는 것이었다.
매스컴이 발칵 뒤집혀졌고 이전부터 ‘방랑 물개’라 불리며 갖은 구설수에 올랐던 조광제는 그 즉시 수영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당했다. 그러나 조광제는 이미 감독은 물론 수영연맹 관계자에게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고향 통영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즉 무단이탈이 아닌 보고를 정확히 한 뒤 팀을 나왔는데 감독이 조광제를 무단이탈 선수로 몰고간 것이다.
“그 감독님과는 그 전부터 마찰이 있었어요. 수능 시험을 치르러 집에 내려갔다가 복귀 날짜를 어기면서 불화가 생겼거든요. 선수촌으로 호출당해 들어갔는데 감독님이 ‘그만둘래 아니면 몽둥이로 백 대를 맞을래’하시더라구요. 백 대를 맞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맞다 보니까 사람이 죽을 것 같았어요. 도저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곳을 뛰쳐나왔습니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연맹 측에서도 난리가 났었죠. 하지만 전 그렇게 매 맞아가면서 운동하고 싶지 않았고 제 의사를 분명히 감독님께 전달드리고 나왔는데 또다시 ‘또라이 짓’ 한 조광제가 되고 말았어요.”
그 후로 2년 뒤 조광제의 영구제명이 풀렸고 그의 탁월한 재능을 아까워한 이정숙 코치의 지도로 동아대에서 재기를 꿈꾸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2002부산아시안게임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미 4년 전 방콕행을 앞두고 판을 뒤엎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조광제는 죽기살기로 훈련에 매달렸다고 한다. 특히 당시 아시안게임은 병역면제 혜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인 데다 연고지인 부산에서 개최된다는 점 때문에 조광제는 희망을 부풀렸다. 그러나 마지막 선발전에서 결국 조광제는 탈락하고 말았다.
“제 프로필이 감점 요인이었던 거죠. 동점자가 3명인데 그중에서 2명을 뽑아야 한다면 ‘문제아’보단 ‘모범생’에게 기회를 주게 되잖아요. 결국 전 도태됐고 그 후유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군에 입대했는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군 생활이 선수 생활보다 더 편했어요. 인간적으로 대접받았거든요. 체력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게, 그렇게 군 생활을 보냈습니다.”
2005년 군에서 제대한 조광제는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나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김나리 씨(22)와 불같은 연애를 하게 된다. 당시 I대 의예과 1년생이었던 김 씨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 것. 김 씨는 뜻밖의 임신을 하게 됐고 아직 학생 신분인 데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험난한 환경에서 출산을 했다.
“군대 있을 때 임신 사실을 알았어요. 결혼을 한다면 그 사람이랑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임신 소식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지만 제 형편이 가정을 꾸릴 상황이 아니잖아요. 처가의 반대가 엄청났죠. 왜 아니겠어요. 제대한다고 해도 뚜렷한 직업조차 없는 군인에게 딸을 보내주실 부모님이 누가 있겠어요. 더욱이 그 사람은 전문의를 꿈꾸는 의대생인데요. 그래도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많은 시련을 감당해냈습니다. 저보단 그 사람이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기자님, 제 결혼 얘기는 기사에서 빼주시면 안 될까요? 수영 관계자 분들이 이런 내용을 알게 되면 조광제가 또 다시 사고 쳤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결혼식을 미루고 혼인신고만 한 채 가정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조광제는 선수들 사이에서 ‘마녀’로 불리는 이정숙 코치에 대해 무한한 고마움과 신뢰를 나타냈다. 사회에선 ‘어리버리한’ 아빠이고 능력 없는 남편인 자신을 수영장으로 다시 불러들여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선수로 재기할 수 있게 해준 스승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안 하는 동안 체중이 20㎏이나 불었어요. 지금까지 6㎏ 정도는 빠졌는데 오는 8월까지 15㎏은 빼려구요. 그래서 식사를 할 때마다 이 코치님으로부터 심하게 잔소리를 들어요. ‘하라’는 소리보다 ‘하지 말라’는 소리가 훨씬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저같이 별 볼일 없는 놈에게 포기보단 기대와 희망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세상에서 절 수영 선수로 인정해주시고 이전에 채 발휘하지 못했던 제 실력을 끄집어내고 계신 분이기에 표현은 못해도 너무 너무 감사하죠.”
조광제는 5년 만에 훈련을 재개하면서 처음으로 물 속에 있는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방황과 번민으로 헤맸던 어린 시절을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뒤덮이지만, 다시는 수영장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며 세상을 원망하고 수영 관계자들에 대한 미움을 키워왔지만, 물 속에서 조광제는 새삼 수영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 코치님은 지금처럼 열심히 한다면 2008베이징올림픽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하세요. 하지만 전 근사하게 올림픽 운운하면서 폼 내고 싶진 않아요. 지금 그보다 더 급한 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쁜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들 녀석이 절 다시 수영선수로 재기하게끔 동기 부여를 해준 사람들일지도 몰라요. 돈을 벌기 위해서든 제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든 제 목표는 제가 세운 한국신기록을 깨는 것입니다. 그렇게 단계를 밟다보면 돈도 벌고 베이징에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죠.”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