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철 당 대표 권한대행. 그 뒤로 김태호 서청원 전 최고위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하지만 여권에선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비듯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는 식으로 친박계의 저항이 있을 것이라 내다본다. 당장 청와대 하명이 없어 관망 중인 것이지 친박계의 반격 첫 스테이지는 신임 원내대표 경선이고, 그 다음은 차기 전당대회의 시기와 후보군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봐야 한다는 말로 모아지고 있다.
친박계 사정을 잘 아는 여권의 한 관계자는 “원내대표 경선을 준비 중인 친박계 두 명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원내대표 경선은 당선자들만 1인 1표로 뽑는다. 당원이 배제돼 있어 변수가 별로 없다. 수적으로 친박계가 우위에 있기 때문에 친박계는 나서기만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총선 참패 책임론 속에서 친박계가 차기 원내권력까지 쥐려고 할 때 언론에서 어떻게 나올지, 여론이 어떤 모양으로 요동칠지가 문제이지 나서기만 하면 당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 관계자는 특히 “비례대표 17명이 친박계 말고 다른 후보를 뽑아주기는 어렵다”며 “일단 122명 중 17명을 먹고 들어가고, 살아남은 친박계가 몰표를 몰아주면 질 수 없는 싸움”이라는 근거를 댔다.
지난 19일 친박계 핵심실세인 최경환 의원이 자신이 원내대표를 역임했던 19대 국회 초반부의 원내부대표단 의원과 보좌진을 모아 만찬을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조용히 칩거하면 언론에 보도될 일도 없는데 이렇게 최 의원이 직접 움직인다는 것은 후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참석자들 전언으로는 최 의원이 “지금은 자숙해야 할 때다” “당 대표 출마는 아직 공식화할 때가 아니다” “친박계는 자중하고 당선자들은 지역구에서 올라올 생각도 말아야 한다”는 등의 반성 모드였다지만, 회동 자체가 최근의 정치권 분위기를 파악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었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 의원은 지난 14일 대구경북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선거를 통해 시민들이 회초리를 드신 것,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힌 뒤 공식석상에서는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최 의원이 지역구인 경산에 칩거하고 있으면서도 간헐적으로 상경해 소그룹별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친박계가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다면 후보군은 8명이 된다. 4선급에서는 홍문종 유기준 조경태 정우택 의원이고 3선급에선 이학재 유재중 조원진 김광림 의원이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만약 이들 중 출마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BH(청와대)에서 모종의 시그널을 준 것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쇄신파들은 당장 경선을 하자고 했지만 다음달 3일로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도 당내 분위기를 좀 더 파악하려는 친박계 요구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그러면서 친박계 원내대표 후보가 나온다면 계파 안배 차원에서 비박계 정책위의장을 찾을 것이고, 이 경우 쇄신파의 극렬한 반대만 없다면 합의 추대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당내에서 치고받을 때가 아니라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화합해야 할 때라는 논리를 내세우면 먹힐 것이란 게 친박계의 판단이다.
친박계는 원내대표에 이어 비대위원장직까지 겸임하게 될 경우 차기 전당대회를 최대한 늦추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당내 쇄신파가 외부영입 비대위원장을 말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지 않아서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쇄신파도 세력이 결집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며 “맞는 소리라도 함께 목소리를 내야지 지금 보면 불이 확 타올랐다가 그냥 사그라지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18대 국회에서 정두언 의원 등이 ‘55인 서명’을 통해 만사형통이라던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를 이끌어냈듯, 새누리당 쇄신파도 친박계의 2선 후퇴를 도모하기 위해선 힘을 크게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 소식통은 “청와대 눈치 보는 이, 어디에 줄을 설지 망설이는 이들이 많은 통에 쇄신 동력이 그렇게 쉽게 모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유철 당대표 권한대행이 신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궤가 같다. 친박계 원내대표가 합의추대되거나 선출돼 비대위원장을 맡고, 6개월 가까이 전당대회를 끌면 자연히 ‘친박계 책임론’이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 본다는 얘기다.
게다가 친박계가 당권이든 원내권력이든 맡아야만 유승민 무소속 의원의 복당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당내 선거에 참여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우리가 솔직히 할 말이 별로 없다. 어쩔 수 없이 자숙해야 할 시간”이라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유승민 사건이 우리에게 입힌 해악이 크다고 본다”며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친박계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친박계에 우호적인 후보를 내세울 것이란 얘기가 플랜B로 꼽힌다. 친박계 2선 후퇴를 주장하는 비박계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수렴청정’이 가능한 의원을 등장시킬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참에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당을 리셋(reset)하는 이벤트를 통해 쇄신을 알리면서 친박계가 후일을 도모할 것이란 말도 들린다. 어찌됐든 현 여권에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며 박 대통령의 지원 없이는 정권재창출도 힘들 것이란 이유에서다. 물론 이 같은 견해가 나온 데에는 언제든지 재결집할 수 있다는 친박계 특유의 자신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친박계가 일부의 판단대로 결집력 있게 행동에 나설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낙선하거나 낙천한 일부 친박계에서는 분노 내지는 적개심이 비등한 상황이다. 최근 통화가 된 친박계 의원은 술이 좀 취해 있었다. 지인들과 맥주 한잔 했다는 그는 지난 총선에서 낙천해 곧 백수 신분이 될 터였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하라는 대로 했고 하지 말라면 안 했고…. 솔직히 나만큼 충성한 의원도 없다”며 “○○ 형님이랑 △△형님이랑 다 통화했는데 ‘좀 기다려라’ ‘지켜보자’는 말 뿐이다. 정작 믿음도 가지 않는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