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 발표에 의하면 트윈스 역사상 5번째 장거리 홈런포라고 한다. 비거리가 141미터. 이틀 후인 19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1차전에선 3호 홈런을 쏘아 올린다. 그것도 미네소타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은 ‘박병호 발코니 데이’ 때 말이다. 어느덧 시즌 4호 홈런까지 내달리며 메이저리그에 안착하고 있는 박병호와 개별 인터뷰를 가졌다.
시즌 초 힘든 시기를 보내던 박병호가 어느덧 시즌 4호 홈런까지 내달리며 메이저리그에 안착하고 있다.
기자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영구 결번자(6번)이자 세 차례나 아메리칸리그 타격왕과 다섯 번의 최다 안타 타이틀을 갖고 있는 토니 올리바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팀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면서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박병호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한국에서 온 ‘홈런왕’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돼줬다.
토니 올리바는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박병호에게 너무 긴장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편하게 메이저리그를 즐기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서 인상적인 얘기를 남겼다.
“분명한 사실은 박병호만 매일 새로운 투수를 만나는 게 아니라 상대 투수들도 박병호가 처음인 건 마찬가지다. 똑같은 상황에서의 승자는 두려워하지 않고 들이대는 선수다. 여기서 10년 이상을 뛴 베테랑들도 매 타석이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삼진당했다고, 안타가 없다고 기죽을 것 없다. 다음 경기에서 잘하면 된다. 다음 경기에서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 다음, 또 그 다음을 기다린다.”
토니 올리바의 얘기는 단순한 립 서비스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박병호를 아꼈다. 메이저리거로 살고 싶어 쿠바를 도망쳐 나왔던 그로선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은 모양이다.
박병호와 인터뷰를 하기 전, 토니 올리바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슬쩍 미소를 짓고선 “토니 올리바뿐만 아니라 구단 관계자들 대부분이 내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준다”면서 “그런 관심과 배려가 고맙기도 하지만 성적을 내지 못할 때는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박병호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이제야 미네소타 트윈스 유니폼이 어울린다. 완전한 트윈스 선수가 된 것 같다. 원정 경기 다니는 데 어려움은 없나.
“우리나라에서도 원정 경기는 다녔잖아요. 물론 한국에선 대부분 버스로 이동한 반면 여긴 무조건 비행기로 이동한다는 차이가 있겠죠. 또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분들(‘클러비’라고 부른다)이 선수들 짐을 모두 챙겨주기 때문에 선수는 몸만 가면 돼서 편하긴 편하더라고요. 활주로까지 버스가 들어가는 것도 신기했고요.”
―그래서 메이저리그에선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얘기도 있다.
“야구만 잘하라고 이렇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는데, 그걸 잘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박병호 선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오랫동안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해왔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생활을 기대했고, 그게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혹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로 당황한 적이 있었나.
“야구는 어디서 하든 다 똑같잖아요. 그래서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생활환경이나 선수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 분위기에 적응하는 부분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 부분은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야구선수가 야구를 잘해야 하는데 이곳 투수들을 상대하는 게 어려워요. 불펜 투수들까지 만만하게 넘길 수 있는 선수가 한 명도 없더라고요. 가뜩이나 시즌 초반이라 투수들의 몸에 힘이 비축돼 있는 상태라 그들의 스피드에 내가 잘 대응할 수 있는지도 여전히 숙제입니다. 매일 새로운 투수를 상대하면서 그걸 이겨내고, 좋은 타격을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미네소타 트윈스 박병호로 야구인생의 2막을 올리며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가 있을 것 같다.
“분명 있었죠. 언젠가는 힘든 시기가 올 텐데 그걸 얼마만큼 짧은 시간동안 극복해내는지를 떠올렸습니다. 즉 슬럼프를 길게 끌고 가지 않는 부분이 관건이 될 거라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팀이 개막전부터 패하기 시작하더니 9연패를 하니까 나 스스로 어떤 책임감 같은 게 느껴지면서 심적 괴로움이 컸어요. 아마 시작부터 좋은 출발을 했더라면 제 표정이 좀 더 밝았겠죠. 개인 성적보다 팀이 계속 지니까 저도 모르게 위축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해도, 메이저리그 신인이라 그런지 조금 신경이 쓰였어요.”
박병호는 16일 역전 결승 2루타를 때린 후 연패를 끊은 소감을 전하는 자리에서 기자에게 “확실히 시범경기와 정규시즌은 투수의 공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를 꺼낸 바 있다. 그 차이를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했다.
―지난 인터뷰 때 시범경기와 정규시즌에 상대하는 투수들 공의 차이를 거론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시범경기 때는 투수들이 자기 구위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공을 던지기 때문에 전력 투구를 하지 않아요. 그 부분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조금 당황스런 면도 있더라고요. 시범경기 때의 투수들이 구위 점검 차 빠른 볼 위주로 승부했다면 지금은 변화구 위주의 공을 던집니다. 타자 입장에선 그 차이가 클 수밖에 없어요.”
―폭스스포츠 노스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미네소타 트윈스 레전드이자 현역 선수 때 최고의 커브볼을 구사했던 버트 블라일레븐의 말에 의하면 “이곳 투수들은 패스트볼을 던져도 공 끝이 심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공략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더라. 공감하는 부분인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타석에서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임하는 겁니다. 홈런의 임팩트가 강하긴 해도 안타가 더 많이 나와야 해요. 좋은 타구가 계속 보이면 타석에 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아요. 10년 동안 한국에서 야구하며 봐왔던 구질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당연히 생소하게 느껴지죠. 시범경기 때부터 이미 그런 걸 느꼈습니다. 이제 와서 볼 끝이 더 움직여 보인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타석에서 편안하게 임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 팬들이 미네소타 유니폼을 입고 태극기를 들고 박병호를 응원하고 있다.
―투수의 볼 배합이 보이는 편인가.
“아직은 아니에요. 메이저리그 경력이 조금 더 쌓여야죠. 시즌 중반 정도 지나면 감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제가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면 초반에라도 깨닫게 되겠죠.”
―처음 이곳에서 박병호 선수를 만났을 때 생각보다 표정이 밝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당시엔 연패 때문에 그랬어요. 내가 못해도 팀이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지만 팀이 어려움에 빠지면 선수들도 마음이 불편해져요. 그런 부분이 얼굴에 나타났나보네요.”
―메이저리그로 오면서 한국에서 이룬 모든 타이틀을 두고 와야만 했다. 억울하진 않았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이곳에선 메이저리그 커리어만 인정하니까요. 이 친구들은 메이저리그 외엔 ‘쳐주지’ 않아요. 받아들여야죠. 그래야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 와보니까 이들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이해가 돼요. 대부분 마이너리그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해서 올라온 거잖아요.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거든요. 한국에서 온 제가 ‘홈런왕’ 등의 타이틀이 있다고 해서 이 친구들한테 자랑하거나 거들먹거린다면 이들은 절 어떻게 생각할까요? ‘루키’라는 신분을 잊고 베테랑 선수처럼 제 목소리를 높인다면 이들은 절 인정해줄까요? 전혀요. 아마 ‘왕따’ 시킬지도 몰라요. 전 이곳에선 신인이고, 신인이면 신인답게 행동하는 게 맞아요. 그래야 이 선수들과 어울릴 수 있어요. 스스로 밑으로 들어가야 이들도 절 받아줍니다. 제가 낮은 자세로 다가갔기 때문에 선수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모두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박병호는 추신수 얘기를 꺼냈다.
“전 신수 형이랑 신분이 달라요. 신수 형은 거액의 몸값을 받는 베테랑이고, 전 루키고. 선수들이 보는 시선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골치 아픈 거고, 저처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선수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것이고요. 전 이 팀에서 제 장점을 꾸준히 보여줘야 해요. 제 장점이 뭐냐고요? 장타죠. 저도 그렇고 우리 팀도 제게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예요. 장타입니다. 구단도 저도 한국에서 온 ‘루키’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있진 않지만, 제가 잘하는 모습 보여주면 한국 야구의 기록들도 인정해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 구단도 선수도 루키임을 인정하지만 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싶어 하는 건 박병호의 본심이다. 그래도 출전 기회를 자주 얻지 못하는 이대호(시애틀), 김현수(볼티모어)를 떠올리면 박병호는 행복한 선수이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피츠버그 트리플A 팀인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에서 뛰고 있는 강정호. 여전했다. 그가 있는 곳이 메이저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였지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강정호는 씩씩했다. 4개월 보름가량 플로리다에 위치한 피츠버그 훈련장에서 재활에 몰두한 강정호. 지난 4월 18일 플로리다를 떠나 피츠버그의 트리플A 팀이 있는 인디애나폴리스로 이동하며 그는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플로리다에서 재활 캠프를 가진 것도, 지금의 이곳 생활도 (길게 봤을 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약 4개월 반 가량 플로리다에서 벗어났다. 플로리다 있을 때만 해도 계속 캠프를 소화하는 느낌이었는데 여기 와 보니까 시즌을 치르는 기분이 난다.” 기자가 인디애나폴리스를 찾은 날, 트리플 A팀인 인디언스의 경기는 전날 오전 11시, 이날은 오후 1시30분에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를 앞두고 오전 10시부터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모인 인디언스 선수들. 그 틈에 등번호 29번을 단 강정호가 눈에 띄었다(피츠버그에선 27번 착용). 플로리다에서 재활하며 친해진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많은 듯했다. 모든 선수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강정호를 보면서 새삼 그의 남다른 친화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기자의 관심은 강정호가 슬라이딩과 주루 플레이가 가능한지였다. 지난해 9월 시카고 컵스의 크리스 코글란의 과격한 태클 때문에 왼쪽 무릎을 다쳤던 강정호는 곧장 수술을 받았고 귀국을 미룬 채 재활에만 몰두했다. 걷기 달리기 타격 훈련은 무리 없이 진행했지만 무릎에 충격이 가는 슬라이딩과 주루 플레이는 예상보다 더딘 속도를 보였다. 그로 인해 플로리다에 남아 재활의 마지막 단계를 밟아온 것이다. “지금은 전혀 문제없다. 플로리다에서 모든 부분에 대해 여러 차례 체크를 받았고,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마이너리그에서 재활 경기를 갖게 된 것이다. 지금 상황이 재활의 마지막 단계라고 보면 된다.” 그런 와중에 강정호는 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김현수를 걱정했다. “나도 작년 4월엔 거의 뛰지 못했다. 아주 가끔 대타나 선발로 나간 게 전부였다. 조디 머서 선수 부상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상황의 연속이었다. 현수랑 통화해보니까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연습은 다른 선수들이랑 똑같이 하고, 무더운 여름을 생각해서 체력을 비축해두라고 말했다. (현수의) 승부는 여름이다. 여름이 되면 구단마다 부상 선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준비 잘하고 있다가 그때 보여주면 된다.” 강정호가 피츠버그에 복귀하면 재미있는 양상이 펼쳐진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라이벌 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오승환과 맞대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피츠버그는 번번이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세인트루이스에 발목이 잡혀 지구 우승을 내줘야만 했다. 강정호는 이런 두 팀의 경기를 ‘피를 튀기는 경쟁’이라고 표현했다. “스케줄을 보니까 세인트루이스랑은 1년에 서너 차례 붙을 예정이다. 세 번 정도 나가서 한 번만 잘 치면 된다. 그게 어렵긴 하지만 괜찮다.” 강정호는 언론에 알려진 대로 4월 말에서 5월 초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