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정 아무개 씨는 연예계에 별로 관심이 없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지도 않고,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는 채널이 머문 적도 없다. 하지만 주요 뉴스를 챙겨보는 정 씨도 요즘은 연예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꽤 많이 알고 있다. 연예 뉴스가 주로 꼭지로 다뤄지거나 연예인들이 직접 뉴스룸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 보긴 하지만 뉴스가 너무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는 정 씨의 말은 연성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요즘 뉴스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뉴스 프로그램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KBS 1TV <뉴스9>은 지난달 30일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인 배우 송중기를 초대했다. 그가 <뉴스9>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방송 전부터 각종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이에 뉴스 제작진은 그가 뉴스룸에 들어서는 과정을 비롯해 앵커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 등도 일일이 보여주며 부각시켰다.
이날 <뉴스9>의 전국 시청률은 23.3%(닐슨 코리아 기준)로 전날에 비해 3.6%p 상승했다. 또한 뉴스 출연 장면이 캡처돼 수많은 인터넷 기사들까지 양산됐으니 이보다 더한 홍보 수단도 없었다. 분명한 ‘송중기 효과’라 볼 수 있다.
3월 30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송중기. 이날 시청률은 전날에 비해 3.6%p 상승했다.
이에 질세라 SBS는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 시즌5>가 끝난 후 우승자 이수정과 준우승자 안예은을 11일 방송된 <나이트라인>에 초대했다. SBS를 대표하는 뉴스프로그램인 <8뉴스>에 출연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뉴스에 출연해 좌담을 나눴다는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역전 우승을 이끈 이수정은 “그동안 계속 연습만 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제가 우승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고 우승자가 발표된 뒤에 너무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고 안예은은 “한국에서 못 본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SBS는 20여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한밤의 TV연예>가 폐지돼 연예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룰 마땅한 포맷이 없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나이트라인>에 출연시켜 주목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뉴스가 연예인 출연에 대한 빗장을 풀게 된 가장 큰 계기는 JTBC <뉴스룸>의 약진이라 할 수 있다. 손석희 앵커와 유명 연예인들의 대담은 <뉴스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SBS ‘나이트라인’에 출연한 ‘K팝 스타 시즌5’ 우승자 이수정과 준우승자 안예은.
최근에는 영화 <시간이탈자>의 개봉을 앞두고 배우 임수정이 <뉴스룸>을 찾았고 정우성, 강동원, 유해진 등도 영화 개봉에 앞서 <뉴스룸>을 노크했다.
좀처럼 TV에 출연하지 않는 서태지, 한석규, 안성기를 비롯해 할리우드 외화 <독수리 에디>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태런 에저튼과 휴 잭맨도 <뉴스룸>에 출연했다.
그 저변에는 <뉴스룸>을 진행하는 손석희 앵커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 천변일률적이고 사생활 관련 토크에 관심을 쏟는 다른 토크쇼와 달리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룸>은 적당히 고급스러우면서도 사생활의 영역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 대화로 진솔함을 이끌어 내리라는 신뢰를 받는다.
한 방송 관계자는 “연예 프로그램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중장년층이 즐겨보는 뉴스 프로그램이 다양한 정보와 인물을 알리는 새로운 시도”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딱딱하다고 인식되는 뉴스 프로그램이 연예인을 통해 주목도를 높일 수 있지만 ‘지나친 홍보’로 흐르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KBS는 송중기 출연 분량으로 6분여를 할애했다. 한류에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지만 다른 아이템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부여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또한 이 인터뷰는 KBS <뉴스라인>에서 재방송됐고, 다음 날 아침 뉴스에도 활용됐다. 자사 여러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노출된 송중기의 인터뷰 분량은 30분에 육박한다.
결국 이는 KBS의 자사 프로그램 홍보다. KBS는 <뉴스9>에서 송중기 인터뷰뿐만 아니라 <태양의 후예>에 관한 아이템을 다수 다뤘기 때문에 피로감이 더 컸다.
SBS <K팝 스타 시즌5> 우승자, 준우승자 인터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자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두각을 보인 이들을 자사 뉴스를 통해 재차 홍보해준 셈이다.
강동원이 출연한 JTBC ‘뉴스룸’ 방송 화면.
뉴스 프로그램의 본질상 진지한 질문이 오가니 스타뿐만 아니라 윤제균, 류승완 감독 등도 부담 없이 출연하며 <뉴스룸>의 위상은 높아졌다. 하지만 이 역시 반복되다 보니 부정적 시선이 불거지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뛰어난 외모를 가진 배우들이 손석희 앵커와 ‘동안(童顔)이시네요’라며 서로의 외모를 칭찬하는 장면은 <뉴스룸>의 단골 멘트”라며 “날카로운 질문으로 차별화된 이야기를 끌어내던 예봉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쉬워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