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 얘기 한 지가 불과 몇 개월 전이다. 지난 5월 ‘콘도 생활’을 청산하고 소원하던 클럽하우스 준공과 함께 ‘하우스 생활’을 시작했다고 자랑하는 제주유나이티드의 정해성 감독(49)은 무엇보다 선수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감회에 젖었었다. 그런데 정 감독은 지난 3일 재충전을 이유로 더 이상 감독을 하지 않겠다며 느닷없이 ‘방’을 빼버렸다. “남은 계약 기간을 채우는 건 의미가 없다. 재충전을 위해 유럽으로 떠나겠다”는 게 그의 사임 일성이었다.
정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에 대해 축구계에선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했다. 성적부진과 구단과의 갈등에 따른 중도 퇴진이라는 것과 ‘자진 사퇴’가 아닌 ‘밀퇴’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미뤄둔 ‘집들이’도 못하고 사임 기념(?) 인터뷰를 하게 된 정 감독을 지난 6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만났다.
중도 퇴진 이유
가을 정취가 물씬한 한낮의 공원에서 인터뷰를 하는 기분이 남달랐다. 운동장이나 커피숍 또는 ‘취중토크’를 빌미삼아 자욱한 연기와 침침한 조명이 깔린 곱창집, 고깃집 등에서 주로 인터뷰가 이뤄진 데 반해 단풍을 배경으로 한 대낮의 공원 데이트는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해성 감독도 츄리닝 대신 정장을 하고 나타났는데 정 감독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니, 정말 그만두신 거예요?“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가짜로 그만뒀을까봐? 진짜야. 더 이상 달리기가 힘들어서 포기한 거지. 더 달렸다간 죽을 것 같았거든. 항간에는 갈 데 정해 놓고 나왔다느니, 대표팀을 노리고 있다느니, 정말 말도 많더라. 만약 그렇다면 내가 얼마나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겠어. 선수들, 스태프들 다 두고 혼자 나온 건데, 다른 팀으로 가려고 중도에 사표 썼겠어?”
정 감독은 새로운 시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잘 버텨왔는데 시즌 마치고 대학 축구 보러 다니면서 조금씩 회의가 물밀 듯 밀려왔다고 털어 놓는다.
“부천에서 2년, 제주에서 2년을 보냈어. 2004년 처음 감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프로팀을 맡았는데 코치 생활을 13년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또 다르더라구.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리그 4위까지 올라 한창 상승세를 타다가 터키 전지훈련지에서 연고지가 제주로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선수들 다독거리는 게 정말 힘들었어. 오십이 다 된 나도 적응하기 힘든데 걔네들은 얼마나 황당하겠어. 그 뿐이 아니야. 매년 선수들 잘 만들어 놓으면 3명씩 다른 팀으로 빼앗겼어. 그 기분 알아? 선수도 없어 허덕이는데 어린 애들 열심히 키워서 좀 쓸만하다 싶으면 다른 데서 쏙 빼가는 거. 애들 장래 생각해서 무조건 막을 수 없잖아. 보내주면서도 너무 쓸쓸했지.”
정신적인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정 감독은 그동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감독이 지고 갈 짐과 몫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고 토로했다.
“올해 제주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목표였어. 제주도민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성적밖에 없거든. 그래서 가능성을 가지고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경기를 풀어나갔지.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악재들이 잇따르더라구. 가뜩이나 선수층도 얇은데 부상 당하는 선수들이 속출하니까 마지막에 치고 올라갈 타임에 힘을 쓰지 못한 거야. ‘아! 여기까지인가? 이게 내 한계인가? 여기서 멈춰야 하는가?’ 이런 갈등이 끊이질 않았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코치들한테 말도 못하고 정말 괴로웠지.”
정 감독은 자신의 사임 이유를 똑 부러지게 밝히진 못했지만 SK와 함께한 4년의 시간을 떠올리며 결국은 성적 부진 때문에, 성적을 내지 못한 자책감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 중도 사퇴한 정해성 전 감독은 재충전을 위해 유학을 다녀온 후 재기를 기약했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 ||
“터키 전지훈련 끝내고 귀국해선 곧장 제주로 내려갔어. 밤에 숙소인 콘도를 찾아가는데 서귀포에서도 한참 외진 곳이었고 콘도 주변은 적막강산이더라구. 아침에 창문을 여니까 앞은 바다요, 뒤는 한라산이지, 경치 감상할 여유보단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보내나 싶었지. 한창 나이의 선수들한테 콘도 생활이 마치 요양소같았을 거야.”
이뿐이 아니었다. 다른 팀에서 트레이드돼 제주로 온 선수들은 하나같이 ‘귀향살이’를 하는 표정이었다. 제주행 자체가 자신의 신분 하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제주도가 여행이 아닌 삶의 터전이 된다는 걸 쉽게 허락하지 못했다. 여자친구가 있는 선수들은 줄줄이 이별의 쓴맛을 맛봤다.
“더 큰 문제는 도민들의 무관심이었어. 한 번 불만 붙으면 열정적인 응원과 관심을 보이지만 그렇게 하기까지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거든. 지난 번 태풍 ‘나리’로 제주도가 전쟁통이 됐을 때 난 선수들 이끌고 수해복구현장으로 나갔어. 선수들 입장에선 ‘우리가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 싶었겠지만 난 그렇게 해서라도 도민들에게 우리도 ‘가족’이란 걸 인식시키고 싶었거든. 아침이면 조기축구회를 찾아가고 선수들과 팬들을 일대일 연결도 시켜주고, 목욕탕 가서 사람들 등만 안 밀었을 뿐이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다닌 것 같아. 내가 이러고 다니니까 친구 한 놈이 이렇게 말하더라구. ‘해성아, 너 거기서 말뚝 박으려고 하냐? 팬 서비스가 아니라 마치 선거운동 하러 다니는 것 같다 야.’”
‘메이저’ 팀이 부러웠다
정 감독은 시즌 내내 선수 부족으로 애를 태웠다. 선수가 있어도 즉시 전력감이 많지 않아 출전 명단에 올릴 이름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런 가운데 경기에 앞서 상대팀의 출전 선수 명단을 받으면 아주 ‘잠시’ 혼란스러웠다.
“출전 선수 명단을 코치들에게 보여주면 그 친구들도 할 말을 못하는 거야. 수원의 경우 조원희, 송종국, 김남일, 이런 애들이 리저브에 포함된 거야. 모두 대표팀 선수들이잖아. 그런 선수를 리저브로 데리고 있는 팀이 무지하게 부러웠지. 몸값만 해도 한 쪽은 4억~5억 원 받는 선수들이고 우리는 연봉 몇 천만 원 짜린데 비교가 안 되는 거야.”
이장수 감독이 FC서울에 있을 당시 2군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임대해 달라고 몇 차례 요청도 했다고 한다. 2군에서 뛰게 할 바에 제주로 보내주면 1군에서 기량 성장시킨 뒤 되돌려주겠다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줄 듯 줄 듯하면서 결국 없던 일로 하자는 연락이 왔을 땐 심적인 부대낌이 컸다고.
“그래도 2000만 원 받고 연습생으로 들어온 선수가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을 때는 정말 보람 느껴. 김한윤(FC서울)이 봐봐. 대표팀에서도 뛰잖아. 태어날 때부터 주전으로 뛰는 선수는 없는 거야.”
아내의 응원이 큰 힘 돼
정 감독은 ‘축구의 나라’ 브라질의 속담 중 ‘축구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3가지가 첫째 감독, 둘째 심판, 셋째 골키퍼’라는 말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감독은 너무나 매력있는 직업이지만 너무나 고통스런 직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독 4년 해보고 이런 말 한다고 욕하는 분들이 계실 거야. 하지만 부천과 제주에서 보낸 4년은 오기로 보냈던 세월이었어”라고 풀어냈다.
중도 퇴진을 결심하기 직전 정 감독은 가족들이 충격 받을 것을 우려해 아내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서 계산기를 두드려 본 다음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한 2년까진 괜찮을 것 같아. 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 봐요.”
정 감독은 오는 16일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설기현이 뛰고 있는 풀럼에 들어가 프리미어리그의 시스템을 가까이 경험하고 조만간 네덜란드로 이동해 이천수의 경기도 지켜볼 계획이다. 공원 데이트가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을 무렵 정 감독은 자신의 결정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시 돌아와야지. 그 다음 대표팀에도(감독) 도전해 볼 거야. 물론 지금은 아니구. 이 기자, 그때 소주 한 잔 하자구! 하하”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