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 아름다운 청년
4년 전 문대성이 아테네올림픽에서 ‘세계를 돌려 차 버린’ 짜릿한 금메달을 땄을 때 그의 가정사가 화제가 됐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극심한 협심증에 뇌졸중으로 쓰러지기도 한 어머니 오은자 씨(67), 문대성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에서 탈락될 무렵 불의사고로 검지 손가락을 잃은 아버지 문광춘 씨(71), 여기에 암 선고를 받은 누이 등 돌봐야만 하는 남매들.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이라는 역사에 남을 장외 금메달을 딴 문대성에게 가족은 가장 소중한 존재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 가족들을 보살피느라 돈을 모으지 못했고 지금도 가족 사랑이 대단하다. 특히 어머니에게는 더 없는 효자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오은자 씨는 치매를 앓고 있다. 처음에는 가족들 몰래 외출했다가 길을 잃어버린 어머니를 파출소에서 찾아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이젠 경찰이나 주민들이 알아서 집으로 모시고 온다. 심지어 문대성은 지금도 가끔 어머니의 몸을 직접 씻겨드리고, 함께 부둥켜안고 잠을 잘 정도로 어머니에 대해 극진하다.
“집에 일찍 들어오면 어머니 손을 잡고 구덕운동장 주변으로 산책을 나가요. 이럴 때마다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문 모델 뺨치는 외모로 연예계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한 문대성은 외면의 화려함과는 달리 지극히 검소하고, 또 겸손하다.
“돈이 많고, 높은 데 있는 사람일수록 비싼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해가 안가요. 저는 지금도 집에서 잘 익은 김치에 김, 뭐 잘 익은 깻잎 같은 게 있으면 더 좋고요. 이렇게 반찬 3가지랑 따끈한 밥을 먹는 게 가장 맛있어요. 실제로 우리 누님이 그렇게 많이 해주세요.”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후 언론에서 워낙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바람에 잠시 동안 매니저격인 동생이 휴대폰을 대신 받았어요. 그랬는데 나중에 대한체육회와 몇몇 기자분들한테 볼멘소리를 들었어요. ‘지가 무슨 연예인인 줄 안다’ ‘건방져졌다’ 등의 뒷담화는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 후로 아무리 바빠도 전화는 직접 받고, 아예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결혼도 그렇다. 돈이 많은 집안의 예쁜 아가씨들로부터 중매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착한 여자친구와 조용히 좋은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담배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나쁜 것과는 거리를 둔다.
# 공부하는 위원
문대성은 대학교수다. 모교인 동아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태권도 실력이나 인품에는 이견이 없지만 학식은 어떨까.
“솔직히 영어도 짧고, 젊은 시절 운동하는 동안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어요. 후배들을 가르치다 보니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직함만 교수라고 그냥 폼 잡고 살지는 않아요. 나름대로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부족한 실력을 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요.”
제법 솔직하다. 문대성은 지난 7월 말 베이징으로 떠나기에 앞서 가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유학 계획을 공개했다. IOC 선수위원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여러 대학과 접촉 중으로 명문 스탠퍼드 대학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 포스트 김운용
문대성은 정도(正道)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테네올림픽 직후 K-1으로부터 엄청난 액수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일고도 하지 않고 거절한 것이 대표적인 일화다. 그저 그들의 실력이 궁금해서 일본까지 날아가 직접 K-1을 봤지만 ‘세계 정상급 태권전사에 비하면 K-1의 발차기는 유치하다’는 신념만 더 강하게 갖게 됐다.
그럼 향후 문대성은 어떤 IOC 위원이 될까.
“22일 선수위원 당선자들과 함께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을 만났어요. 근데 IOC 내부적으로도 제가 1등으로 당선된 것에 크게 놀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는 뭐 별 볼일 없는 동양인이 쟁쟁한 서양의 스타플레이어를 큰 표 차로 제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한대요. 혹시라도 무슨 부정이 있을까. 당분간 저와 관련된 한국 미디어의 보도를 일일이 다 모니터링한다고 하더군요. 워낙에 IOC가 서양 중심이고, 제가 또 신참이다 보니 앞으로 한계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다 이겨낼 겁니다.”
한국 스포츠외교의 가장 큰 문제는 김운용 전 IOC위원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 전 위원이 이번 베이징올림픽기간 중 복권이 됐고, 또 IOC 위원직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지만 물리적인 여건(고령) 등으로 인해 ‘포스트 김운용’을 발굴하는 것이 한국 스포츠 외교의 숙제였다.
“스포츠외교관은 키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크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줬지만 이를 소화해낸 사람이 없었다”는 김 전 위원의 말처럼 문대성은 스스로 커 버렸다.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한국 스포츠외교의 미래가 된 것이다.
문대성은 김운용 전 위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IOC를 가장 잘 아시는 어른이고,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선수위원 선거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크게 격려를 받았어요. IOC 내부 정치적인 사안이 걸려있기에 신참으로 함부로 말하기 어렵지만 귀국 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제가 좋은 IOC 위원으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달라고 부탁드릴 겁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김운용 전IOC 위원에게도 ‘문대성 쾌거’에 대해 물었다. 김 전 위원은 “너무 기쁜 일이다.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본인 스스로 모든 것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진정한 태권도인 출신으로 IOC위원이 돼 더욱 뜻 깊다. 문대성 위원이 IOC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답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