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왼쪽), 이명박 전 시장 | ||
하지만 항상 잘나가던 한나라당이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역전패’ 한 것처럼 “여권발 정계개편에 적극 대응하지 않다가 또 당하는 것 아닌가”라며 걱정 섞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더욱이 여권의 정계개편이 ‘김대중-노무현 빅딜설’로 주춤해지면서 진정한 정계개편은 한나라당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리고 그 빅뱅의 시발점은 박근혜-이명박의 균열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여권발 정계 개편 와중에서도 끊이지 않고 소곤거림이 들려오는 한나라당발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짚어봤다.
최근 한나라당 내 이명박 전 서울시장 그룹의 좌장격인 A 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의 술자리 횟수를 늘리면서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 핵심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집권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 대한 오해들을 조목조목 해명한다는 것이다. 그와 술자리를 가진 기자들은 오프임을 전제로 들었던 내용이라 기사화하지는 않고 있지만 “A 의원이 뭔가 단단히 작심하고 박 전 대표를 비난하고 다니는 것 같다”고 판단하고 있다.
모임의 한 참석자는 “친박 그룹과 친이 그룹이 점점 더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 같다. 내년 대선 후보 경선 뒤 후유증이 정말 심각할 것으로 본다. 이인제 학습 효과 때문에 경선 불복은 하지 않을 것 같지만 경선 전 어느 한 쪽에서 무리하게 당내 개혁을 요구하며 탈당 명분을 만든 뒤 당을 뛰쳐나간다면 한나라당이 갑자기 두 동강 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여권은 정계개편이 한창 진행 중인데 비해 한나라당은 높은 지지율과 확실한 대권 주자들을 가지고 있어 정계개편의 무풍지대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게 뒷짐 지고 있다가 여당이 획기적인 정계개편으로 정국 이슈를 선점할 경우 또 다시 차기 대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그리고 그 경고음은 당내 빅2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사이의 분열점에서 터져 나올 것이란 게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친박-친이 그룹은 물밑에서 끊임없이 권력 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누가 대선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2008년 총선 공천도 결정되기 때문에 더욱 치열한 세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 이런 점에서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여권의 분열 및 재통합에 따른 정계개편의 파장보다 오히려 ‘한나라당발’ 정계개편의 파급력을 더 주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한나라당 내부는 ‘당심 우위’의 박근혜 전 대표와 ‘민심 우위’의 이명박 전 시장이 균열의 양 축을 이루고 있는데 경선 방식 문제로 1차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최근 지지율이 올라감에 따라 경선 방식에 따를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지만 본격적인 경선 국면에 들어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중대 결심을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의원은 “이 전 시장은 철저한 장사꾼이다. 자신의 이익이 정점에 달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가 정치 명분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할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한다.
양측 갈등의 또 다른 포인트는 두 사람의 지지기반이 다르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50%에 육박하는 한나라당 지지율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혐오감을 매개로 두 개의 유권자 집단이 불안정하게 동거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은 영남 보수층에 기반한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이다. 반면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층은 열린우리당 이탈층과 무당파층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정치성향이 상이한 이 두 그룹이 화학적 융합을 이루기는 어렵기 때문에 두 대권 주자는 결국 등을 돌릴 것이라는 해석이다. 최근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의 지지율 상승에 대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전 시장을 지지하고 저는 많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봤다”고 언급한 것만 보더라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양측의 균열은 새로운 보수신당의 출현까지도 예측 가능하게 한다. 현재의 당 구조에선 경선 승리가 어려운 손학규 전 지사, 박근혜 전 대표 진영과 근본적인 노선적 긴장관계에 있는 소장파 그룹,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뉴라이트 진영이 이 전 시장과 연대하면서 새로운 보수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이명박 전 시장의 움직임을 동력으로 1996년 신한국당과 유사한 정치적 색채를 지닌 보수신당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엔 정당을 초월해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제 정파가 가세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럴 경우 대선은 한나라당 후보와 보수신당의 후보, 범여권의 후보 및 민주노동당 후보의 4파전 구도로 치러지게 된다. 그밖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 중심이 아니더라도 당내 보수적 의원들을 뺀 나머지 무계파 의원들이 외부 건전 보수 정치세력과 연합하는 방식 등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한나라당 의원들은 ‘잘나가는’ 집안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것 같지는 않다고 확신한다. 한나라당 기획위원장인 정진섭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은 한나라당에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절대적 권위가 없는 상태다. 의원들이 ‘보스’의 말을 따라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또한 이인제 학습효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당 분위기도 탈당이나 분당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쪽으로 가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이 전 시장이 탈당해도 정두언 의원마저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또한 정 의원은 “열린우리당은 통합신당과 친노그룹이 분화돼 대선 직전 다시 합쳐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이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지만 여당의 정계개편이 여의치 않을 경우 오히려 여권 인사들을 적극 영입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과의 합당 문제도 50 대 50까지 권력 지분을 나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당내 주자들의 경선 불복이나 경선 전 탈당 가능성을 양측이 지금이라도 ‘정권교체 이후의 권력 분점’을 합의한다면 충분히 분열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도 나누지 않는다는 권력에 대한 의지를 과연 누가 ‘청와대 입성’ 8부 능선 바로 앞에서 접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