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장면1
5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첫 새누리당 의원총회장. 단상 앞쪽에 앉아 있던 서청원 전 최고위원이 회의가 진행되던 중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으로 걸어 나왔다. 8선으로 국회 최다선인 서 전 최고위원은 친박계 좌장으로 불려왔고 실제 그 역할을 해왔다. 몇 계단을 올라 뒤쪽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있던 최경환 의원과 눈이 마주쳤다. 최 의원이 엉거주춤하며 일어서려 하던 찰나, 서 전 최고위원은 고개만 까닥하며 스쳐 지나갔다. 서 전 최고위원은 최 의원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이정현 의원에게는 손을 내밀어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최 의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정치권 소식통 말을 종합하면 서 전 최고위원은 최 의원의 요즘 행보를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대 국회 하반기 서 전 최고위원이 김무성 전 대표와 공식 회의석상에서 사사건건 부딪쳤던 주요 이유는 “왜 사전에 상의를 하지 않고 대표가 일방적으로 최고위에 통보하느냐”였다. 서 전 최고위원은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과 상의해주길 바라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안이 결정되거나 추진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전언이 많다.
서 전 최고위원이 막역했던 최 의원과 틀어진 것은 5월 24일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요청해 최 의원이 김 전 대표와 3자 ‘오찬 회동’에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김 전 대표는 비박계, 최 의원은 친박계 대표이자 대주주 자격으로 모였고 그 자리에서 3시간 가까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향후 비대위 활동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그렇게 결정된 것이 외부에서 명망가를 영입해 당 비상대책위원회를 맡기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 전 최고위원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 최 의원도 그런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서 전 최고위원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 뒤 둘은 공·사석에서 마주치지 않았는데 의총이 있던 그 날, 서먹해진 관계가 드러난 셈이 됐다.
#장면2
같은 날 의원총회 자리에선 친박계 내부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음이 연출되기도 했다. 친박계 핵심이었던 유기준 의원이 의원들이 앉는 중앙 자리가 아니라 단상을 중심으로 왼쪽 끝자리에 앉았다. 해당 자리는 의총을 취재하는 기자들 자리였다. 의총에 늦은 김세연 의원 옆으로 다가온 유 의원은 한참 대화를 이어간 후에도 의원들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김 의원은 대표적인 친유승민계로 친박계 입장에선 정적과도 같은 존재다. 유 의원은 “김 의원이 부산시당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부산 현안과 관련한 대화를 했다”고 했지만 친박계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 의원은 친박계 반대 속에서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고 119명의 표 중 7표를 얻어 참패했다. 당시 최경환 의원은 “유 의원 출마는 친박계 대표 자격이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결국 친박계 다수는 정진석 원내대표를 밀었다. 친박계가 유 의원을 비토한 셈이다. 유 의원은 최 의원이 못마땅하고, 최 의원은 유 의원이 마뜩찮다는 것이다. 둘은 의총장 계단 통로를 사이로 불과 몇 미터 옆자리였지만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면3
총선 참패 뒤 지역구에서 칩거하며 정중동했던 최경환 의원은 국회가 개원하자 ‘식사정치’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1일에는 여의도 한 식당에서 경북 지역 초선 의원 6명 전원과 오찬 회동을 가졌고, 이튿날인 2일엔 대구의 초선 6명과 점심을 함께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선 ‘본인의 지역구가 있는 TK 초선부터 줄세우기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위의 3가지 장면의 꼬인 방정식을 풀어보면 이렇다. 서 전 최고위원은 현재 차기 국회의장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차기 당권을 겨누고 있는 최 의원에게는 작지 않은 걸림돌이다. 입법부 수장도 친박계가 하고, 집권 여당 대표도 친박계가 차지한다면 국민들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가뜩이나 오만했던 친박계의 공천 파동으로 원내1당 자리를 내준 상태다.
최 의원이 원내대표직에 도전하려던 유기준 의원을 말린 것도 본인의 당권 가도에 차질을 예상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있었다. 당권도 친박이, 원내사령탑도 친박이 한다면 총선 참패의 책임이 큰 친박계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는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란 논리였다.
게다가 5선으로 대표적 친박계인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은 국회의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 정 전 부의장은 당초 서 전 최고위원이 국회의장직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최근 태도를 바꾼 것을 두고 못마땅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듯 현재 친박계는 서로의 자리싸움으로 균열의 폭이 커지는 형국이다. 박근혜 정부를 돕자는 이구동성 속에서 자기의 자리를 두고선 동상이몽인 셈이다.
이러는 와중에 김무성 전 대표는 ‘마이웨이’를 선언하며 자신의 대권 시간표를 앞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다수의 정가 인사들은 모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조기 등판에 따라 대권 스케줄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김 전 대표는 최 의원이 경북 의원들과 오찬을 한 날, 자신을 따르는 대표적 비박계 의원 6명과 만찬 회동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표는 “대통령을 만나 대화하고 싶었는데 (친박계 비토로)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현 정부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온 건 공천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란 딱지였다” 등으로 상처 입은 속내를 드러냈다고 한다.
다음 날 최 의원이 대구 의원들을 만나고 있을 때 김 전 대표는 충북 단양 구인사에서 열린 상월원각대조사 열반대재에 참석,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연꽃이 핀다’는 법어를 인용해 대권 행보의 서막을 열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때를 맞춰 김 전 대표 비서실장이었던 김학용 의원은 비박계 의원들을 죄다 끌어 모아 ‘미래혁신포럼’이란 연구단체를 만들기로 했다. 또 오는 7월에는 대선전에 꼭 필요한 싱크탱크를 발족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로지 민생만을 주제로 각종 정책과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참 다른 길을 열고 있는 셈이다.
이정필 언론인